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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하면 괜히 빚을 진 거 같다.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예비치와 브루노 슐츠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읽을 수 있게 해준 것만 가지고도 그렇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이가 쓴 《저주 토끼》가 몇 년 전에 부커-인터내셔널 최종심까지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가로서의 정보라가 SF 소설을 쓴다고 오해하고 있었고, 그 분야를 별로 즐기지 않아 그동안 찾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걸 누군가 도서관 이용객이 희망도서 신청을 해 새 책이 들어와 읽어볼까 싶어 그렇게 했다. 아오, 괜히 읽었다. 꿈자리 사납겠다.
SF? 천만의 말씀. 누가 SF 작가라고 그랬어? 맞다. 그렇게 들은 적 없다. 내가 괜히 혼자 그렇게 짐작했을 뿐. 이런.
그동안 정보라, 하면 이이가 쓴 책이 《저주 토끼》인지 《엽기 토끼》인지 헛갈려 꼭 뭐였더라, 두 번 생각했다가 이번에 책 읽고 글 쓴 이에게는 안 된 말씀이지만 이젠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겠다. 꿈에 나올라…. 호러도 그냥 호러가 아니더라고.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특별하게 어린 아이 죽는 장면이 끔찍한데, 이이도 그런 모양이다. 독자한테 더 끔찍한 느낌을 주기 위하여 그래서 어린 아이가 죽거나 초현상적인 이상 생명체 혹은 비생명체로 변신하는 장면이 다른 작가에 비해 높은 빈도로 등장한다. 끔찍한 상상을 초래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나처럼 선량한 마음씨로 평생 산 독자들로서는 이거 뭐 도무지 감당이 안 될 수준이라서, 거 참.
표제작이자 소설집의 제일 앞에 실어 문패 역할을 한 <저주 토끼> 한 편만 그런 게 아니라 go go mountain, 갈수록 태산이다. <머리>, <차가운 손가락>, <몸하다> 등등. 도대체 이이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까? 이게 다 궁금하더라니까? 뭐 사는 거야 이이나 나나 별다른 게 있겠어? 하긴, 이러니까 사람의 곱창이 아스팔트 위에서 꼼지락 거리는 <브로츠와프의 쥐들>을 그렇게 실감나게 번역했겠지만. 그것도 읽으면서 곱창으로 줄넘기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야, 싶은 수준이었다.
정보라님. 앞으로 작품은 읽지 않더라도 폴란드나 러시아 사람이 쓴 숨어있는 좋은 작품 열심히 우리말로 바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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