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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속 30여 년 전에 사 놓은 시집 가운데 한 권. 즉 두고두고 읽는 시집이라는 뜻이다. 황동규는 뭐 말이 필요 없는 시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1번에 빛나는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부터 이 시인이 낸 시집의 오랜 독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근데 사실 요즘에 이이를 잘 읽지 않는다. 해서, 새삼스레 옛 시집을 꺼내게 된 것.
지금은 같은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처지이자 황시인보다 3년 선배인 유종호가 쓴 해설의 제목이 “낭만적 우울의 변모와 성숙”이다. 그러니까 이 시집의 주된 서정은 시인의 우울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괜찮을 듯하다. 평론가의 의견에 따르면 그 우울이 모습을 바꿔가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는 시집인데, 우울 자체가 낭만적 우울에서 시작한다. 시집에서 낭만적 우울의 시작점은 2부에 실린 “풍장風葬” 열여섯 수에서 극점을 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황동규의 대표 시로 뽑는 연작인 <풍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길더라도 전문을 인용한다.
풍장(風葬) 1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전문. p.43~44)
풍장의 매력은 사실 황동규가 가고 싶어하는 서해의 한 작고 버려진 작은 섬이 아니다. 건조한 고원이나 사막지대에 놓여 햇빛과 바람과 달과 별의 광선에 의하여 육신이 바싹 말라 비틀어진 미라 상태로 있다가 결국 하얀 백골만 남기게 되는 장례. 백골마저 가능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결국 풍화되어 모래로 돌아가는 길고 긴 과정이다. 사실 황시인이 바라는 것은 그가 평생동안 좋아하던 여행길을 나서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 바람과 놀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풍장>의 우울은 이후 2, 3, 4… 계속 농도가 진해지기도 하지만 시인은 함께 놀 바람에 실려 우리 국토의 방방곡곡을 떠다닌다. “소주가 소주에 취해 술의 숨길 되듯 / 바싹 마른 몸이 마름에 취해 색깔의 바람 속에 둥실 떠…” (<풍장 2> 부분 p.45) 가면서 인왕산, 남산, 낙산 그리고 밀주를 파는 도시의 골목을 배회하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 루카치를 만나면 루카칠 / 바슐라르 만나면 바슐라를 / 놀부 만나면 흥부를…”(<풍장 4> 부분. P.48) 죽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시집이 다 우울한 건 아니다. 그러면 황동규가 아니지. 1부의 시작은 오히려 생기에 충만하다. 제일 앞에 배치한 시를 읽어보자.
꽃
나는 나무들이 꽃을 잔뜩 피워놓고
열매가 생기기를
우두커니 서서 기다린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사방에서 벌이 잉잉거릴 때
꽃들은 먼발치서 달려오는 벌을 맞으러
하나씩 문을 열 것이다.
꽃송이 하나하나가
마침 파고든 벌을 힘껏 껴안는
이 팽팽함!
배나무나 벚나무 상공(上空)에서
새들은 땅 위에서 환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잠시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을 잊을 것이다. (전문. P.11)
이 시에서 읽을 수 있는 생기와 발랄함은 두번째, 세번째 시 <삶에 취해>, <별>에서도 계속된다. 그런데 이 시들은 1982년부터 85년까지 <풍장> 시리즈를 쓰고 난 다음인 1985년~86년에 지은 노래들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도 가장 폭력적이었던 5공화국 시절. <풍장>은 시가 갖고 있는 우울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이 시절에 <꽃>처럼 생명 가득하고 발랄한 시를 발표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때이다. 참여와 저항과 외침의 노래 아니면 백안시 당하던 비극의 시기였으니. 세월이 한참 지나 과거의 한 페이지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황시인 같은 모더니스트가 그 당시에도 노래하고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마음도 들게 된다. 이게 다 세월의 힘이겠지. 그걸 방에 틀어박혀 숨죽여 읽고 키득대며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었겠지. 내놓고 모더니즘 시를 읽는다는 말도 못하면서. 그러면서.
모더니스트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더 없는 서정시를 쓴 시인 가운데 한 명인 김종삼 시인이 죽었다. 1984년 겨울이다. 길음성당에서 있었던 장례미사에 황동규가 참석했다. 그날 하늘에서 점박이 눈이 내렸다.
점박이 눈이 내렸다.
가늘게 검정테 두르고
가운데 흰 점 박힌 눈송이들
머리와 어깨에 쌓였다.
성당 정문에서 천상병(千祥炳)씨 부인과 인사 나눴을 뿐
문학판 사람들은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그들은 그때 어디 있었는가, 오버?”
“프라이버시 침해하지 말라, 오버.”)
낯선 문학청년 하나가
눈 맞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사진에서 뵌 선생님이시죠?
저는 김종삼 시인을 사랑한 놈입니다.
발자국 따르다보니 예서 그만 끝이군요.
앞으로 무슨 맛에 살죠?”
내 장례식에 혹시
이런 허황되고 멋진 청년이 올까?
(온다면 깊이 잠들기 힘들리.) (<점박이 눈> 부분. p27~28)
84년 겨울. 제대하고 그동안 집구석은 한층 더 폭삭 망해버려 이부망천이라, 서울 사람이 이혼하면 부천가고, 쫄딱 망하면 가는 곳이라는 인천의 작고 작은 집으로 밀려간 시절이었구나. 그새 졸업해 병원 약사 일을 하던 사랑은 당연히 나를 철퍼덕 밟고 지나가버리고, 복학하려니 등록금 구하기가 죽을 맛이던 시절. 그래도 경애하는 김종삼 선생, 전화라도 한 통 하고 가시지. 나 졸업한 서라벌중학교, 대일고등학교에서 세느강만 건너면 바로 길음성당이었을 텐데. 혹시 알아? 잘 하면 내가 그 허황되고 멋진 청년이었을 지도?
(정말 이것까지 생각하고 쓴 독후감 아닌데, 오늘이 “나를 철퍼덕 밟고 지나가버”린 사랑의 꽤 묵은 생일이구나. 좋다, 해피 버스데이 투유. 우리, 다시는 기억도 하지 말자.)
그건 그거고, 황시인은 이렇게 서정시인, 모더니스트들에게 편지도 보내고(김정웅, 유평근, 마종기) 애도하기도 한다(김현). 그러나 딱 한 명 예외가 있으니 니힐의 아나키스트 김수영(金洙暎). 표제시 <악어를 조심하라고?>의 3부 “종묘 앞 싸락눈”에서다. <악어를 조심하라고?>가 워낙 길어 딱 이 부분만 따와보자.
《악어를 조심하라고?》
3. 종묘 앞 싸락눈
싸락눈 솔솔 뿌리는
종묘 앞 숯불돼지갈비집
단성사서 영화 보고 싸락눈 맞으며 걸어가
잠긴 문틈으로 저 낮고 긴 지붕의 집 종묘가
곱게 눈 맞으며 서 있는 것을 보고
동양의 파르테논 어쩌구 헛소리를 하며
겁먹은 듯 서 있는 조랑말들 사이를 지나
김수영(金洙暎)씨와 몇 번 들른 집
잘 모르는 소리 지껄이는 건
지금도 매양 마찬가지
“탈[mask] 이론은?”
(베아트리체를 사랑한 불한당 단테를 보라.)
“객관 상관물이란?”
(兩人對酌山花開 <李白>―둘이 서로 술 따르니 막 산꽃이 핀다,
혹은 OB잔 부딪칠 때 배호의 노랫소리)
모를 듯 알 듯 모를 순간
기도(氣道) 조이는 그 쾌감
가만!
지금 내 정신 상태 제대로 보여줄 객관 상관물은?
(아파트 계단을 도로 기어 내려가는 악어?)
하긴 텔레비나 영화에 등장하는 동물 가운데
그래도 제일 길 안 드는 게 악어더군
성(聖)타잔도 길들일 수 없는……
“황형, 혼자 술 드는 폼
여직 생생하군요.”
귀익은 목소리에 얼핏 뒤돌아보니
민음사판 전집 사진 속에서처럼
티셔츠에 앙상한 몰골로
김수영이 앉아 있다,
양복 윗도리를 술상에 걸쳐놓고
3센티쯤 자란 머리카락에
입웃음을 웃으며.
(하략) (<악어를 조심하라고?> “3. 종묘 앞 싸락눈”의 부분. p.22~24. 2연의"겁먹은 듯 서있는 조랑말들"은 당시 우리나라 수도 서울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던 택시, 현대 포니 자동차를 말하고 있다.)
이 시집 중에서도 긴 시들을 소개하는 바람에 독후감이 한없이 길어진다. 더 이상 쓰다가는 욕 먹겠다. 별로 한 말도 없이 이거 영 모양 안 나오는군. 하여간 하고 싶은 말은, 황동규, 이 양반을 괜히 대접하는 게 아니었다는 거. 어떻게 시편들이 길면서도 깔끔하고, 서늘하고, 공감이 가는지 말이지. 황동규 선생은 모르겠고, 나 사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황선생의 부친, 황순원 선생의 산소라도 한 번 가볼까? 아냐, 아니다. 내 부모 산소에도 자주 가지 않으면서 남의 부모 산소까지 들먹이기는 좀 그렇지.
아참. 잊고 따오지 않은 시 한 수가 있다. 그거 소개하면서 긴 독후감 끝내자.
풍장 9
바람이 어디로나 제 갈 데로 불 듯
서산 마애불을 만나러 갔다.
마을마다 댓잎 가장자리는
늦겨울 가뭄에 백동(白銅)색으로 익고
얼었던 길은 처음으로 녹으며
춤추는 봄눈을 대숲으로 날려주었다.
마른 오징어와 함께 가서
오징어는 먹고 소주는 몸 속에 뿌리고 왔다. (전문. p.56)
재미있지? 서산 마애불 기행도 인터넷 어느 한 곳에 쓴 적 있는데, 혹시 검색해보면 나올지 몰라? “그 미소 천년을 이어가시라”로 검색하니까 뜨네. 근데 그거보다 마지막 행, “오징어는 먹고 소주는 몸 속에 뿌리고 왔다.” 이 중에서도 “소주는 몸 속에 뿌리고 왔다.”가 얼마나 감개무량한지. 소주를 왜 뿌려? 죽은 사람한테나 뿌리는 게 술이다. 그래서 ‘나’가 이미 죽은 ‘나’한테 대한 풍장이 완성되는 것. 으아. 이러니 내가 황동규, 황동규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지. 물론 소주 이야기 나오니까 더 환장을 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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