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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아침 그리고 저녁
  • 욘 포세
  • 11,250원 (10%620)
  • 2019-07-26
  • : 15,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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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2년이 지나서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욘 포세 열광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긴, 바로 다음해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나라 작가 한강이 상을 받았으니 그 파도에 주저앉아 버린 게 당연하기는 하다. <아침 그리고 저녁>이 두 번째 읽은 포세의 책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속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포세 씨, 우리 다시 만나지 맙시다.” 속삭임, 속삭임.

  “ㅆㄴㄹ 소설.”

  잊으셨을 거다. ‘ㅆㄴㄹ’이 뭔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설이라는 뜻. 나, 이거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근데 완전히 ㅆㄴㄹ이니 어찌 또 만날 수 있으리.

  재미없느냐고? 아니, 재미없지는 않다.

  별 감흥이 없느냐고? 감흥이 있을 수도 있고, 감동 먹을 사람들은 감동 먹을 만하다.

  다 좋은데, 딱 하나, “ㅆㄴㄹ 소설”이어서 싫을 뿐.


  분위기도 익숙하다. 노르웨이 피오르 해역에 떠 있는 외딴 작은 섬에서의 출생이 아침. 피오르 만을 끼고 형성된 도시에서의 죽음이 저녁. 출생과 죽음, 아침과 저녁의 주인공은 요한네스.

  오래 전. 약 80년쯤 전에 노르웨이 피오르 해역 멀리 작고 외딴 홀멘섬에서 마르타가 진통을 하고 있다. 마르타와 어부 남편 올라이 사이에는 이제 곧 사춘기를 맞을 딸 마그다가 있고 이후 임신을 하지 못했다. 부부는 마그다가 어여쁘고 총명해 굳이 국영수 학원에 보내지 않더라도 담임선생의 칭찬이 대단해 딸 하나로 충분하고, 하느님의 축북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때는 20세기 초. 피오르 해역의 어부들은 어선에 절대 여자를 태우지 않았다. 액운이 닥칠 수도 있어서. 그렇게 믿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택시 운전수들이 재수 없다고 새벽 첫 손님으로 여자를 태우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고 자기 배를 물려받을 아들 하나가 없는 게 많이는 아니고 조금 섭섭했던 올라이한테 늦게라도 마르타가 임신을 한 게 얼마나 좋았는지. 이번에는 틀림없이 아들일 거야. 아들이 나오면 내 아버지의 이름 ‘요한네스’를 물려줘야지.

  올라이는 오래 전에 이 올멘섬을 샀다. 장가도 들지 않았고, 고기 잡아 파는 젊은 어부가 벌면 얼마나 벌었을까? 자신의 모든 돈을 다 긁어 섬을 샀다고 해도 얼마 안 되는 돈이었을 터이니 작고 험하고 외진 섬이겠지. 올라이는 바람이 제일 약하게 부는 따듯한 만의 중턱을 골라 자기 손으로 집을 짓고, 보트하우스와 부속 건물도 지었다. 물론 형들과 이웃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자기가 섬을 개척하고 집을 지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그래서 섬과 집과 배와 아내와 딸에 대해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보태 이제 마르타가 진통을 하고, 올라이는 늙은 산파 안나가 지시하는 대로 물을 끓여 방 앞에 대령하는 장면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이어서 본격적인 마르타의 진통과 분만이 이어진다. 포세의 특유한 문장. 같은 단어나 구절을 반복해 리듬감과 호소력까지 담아 독자가 훅 빠지게 만든다. 이 장면이 끝날 때까지 포세는 줄을 바꾸지 않고 계속 진술한다. 마침표도 없다. 아마 실수로 한두 번 찍은 것처럼 보이는 마침표 말고는 그 작고 새까만 점을 독자는 구경할 수 없다. 누구 생각나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문장은 저 뒤, 아주 먼 먼 뒤로 가면 그래도 마침표 하나는 찍혀 있다. 근데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에는 끝까지 작고 까만 점이 없다. 하지만 줄, 행은 띄어 있다. 다만 마침표만 없을 뿐. 이렇게.


  그래그래. 마르타가 말한다

  이 아이는 요한네스라고 부를 거야,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올라이가 말한다

  그래, 요한네스라고 부르자, 마르타가 말한다 (p.26)


  이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고? 작지 않은 글씨체의 널럴한 편집을 보태 본문을 무려 135쪽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분량을 만들 수 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처럼 마침표 없고 행 구분도 하지 않으면 편집을 아무리 풍성풍성하게 해도 1백쪽 미만에서 끝낼 수 있을 걸?

  하여간 이렇게 요한네스가 피오르 해역의 작고 외딴 홀멘섬에서 출생했다. 아침. 1부.


  이어지는 2부, 저녁. 요한네스의 아빠 올라이, 엄마 마르타, 누나 마그다. 다 죽었다. 마그다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갔다. 가족 모두 어떻게 갔는지는 설명도 없다. 그냥 갔다. 요한네스, 그동안 에르나와 결혼해 일곱 아이를 두고, 몇 명인지도 모르는 손주들의 재롱도 넘치게 받았다. 아이가 다섯 생기자 도무지 작은 홀맨섬에서 살 수 없어 피오르 해역에 접한 마을로 이사했다. 전에 읽은 포세의 <보트하우스>에서 본 그 동네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프로데 그뤼텐의 책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는 더 어울린다. 심지어 내용도 비슷하다. <닐스 비크…>를 그대로 <아침…>에 옮겨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정말이다.

  <닐스 비크…>는 주인공이자 선한 연락선 선장 닐스 비크가 죽는 날 하루 이야기이고, <아침…>은 새벽에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자다가 곱게 죽은 노인 요한네스의 귀신이 제일 친한 친구 페터스의 귀신을 만나 저승으로 안내를 받기까지 이야기라는 게 다른 뿐이지 어차피 똑 같은 ㅆㄴㄹ 소설. 분위기, 장소 같은 게 모두 판박이. 피오르 출신 작가들은 그 동네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라도 있는 걸까?

  뭐 이런 말 하지 말자. 내가 싫으면 안 읽으면 되는 것이지, 좋게, 공감하며, 심지어 감동 먹어가며 읽은 독자도 있을 터이니 괜히 떠들어 좋을 게 없다. 다만, 포세 씨, 우리 더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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