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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
  • 힐러리 맨틀
  • 11,700원 (10%650)
  • 2018-10-19
  • :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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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프 홀>과 <시체를 끌어내라>로 남들은 살아생전 한 번 받기도 힘든 부커상을 2009년과 2012년, 3년 터울로 두 번이나 받은 작가, 라는 걸 나는 두 작품을 읽을 때야 알았다. 그리고 뭐 남의 나라 발정한 왕의 허리하학적 이야기, 원래는 가톨릭에 충성했던 영국 국왕이 이혼하고 싶어서 종교개혁을 단행했다는 것도 그리 아름답지 않아 별 관심도 없던 터여서 별로 재미있게 읽지도 않았다. 그래, 그래. 설마 오직 이혼 문제 하나 때문에 종교개혁을 하지는 않았겠지. 내가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이리 말하는 것이니 그냥 그렇거니 해 주시라.

  정말 20세기를 산 사람인지, 아니면 누백년 동안 죽지 못하는 삶을 이어온 연금술사 혹은 악마인지 정체가 아리송한 플러드라는 야매, 가라 신부神父 이야기인 <플러드>까지, 내가 읽은 힐러리 맨틀은 하여간 조금은 중세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터, 도서관 개가실을 거닐다가 맨틀 여사가 난데없이 마거릿 대처 수상이자 남작부인의 암살 사건에 대한 소설을 쓴 책을 발견했으니 어찌 혹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지. 올해 탄생 백년을 맞는 마거릿 대처 남작부인이 아마 늙어 죽었을 걸? 그럼에도 “암살 사건”이라고 했으니까 틀림없이 암살 ‘미수’ 사건에 관한 픽션이겠지? 이렇게 감을 잡았다. 우스운 것이 한 국가, 그것도 20세기 말에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극점을 찍은 영국 총리의 암살 사건을 소설화한 책이니까 당연히 장편소설이겠지, 했지만, 단편집이었다는 거. 힐러리 맨틀의 단편소설집이 딱 두 권 있는데,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은 2014년에 출간한 두 번째 책이다. 말미에 책에 실린 작품이 언제, 어느 매체에 발표한 것인지 밝혔지만 표제 작품은 예외다.


  돌아보니 영국 작가가 쓴 소설책도 꽤나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까, 숱한 영국 소설가 가운데 마거릿 대처 전 수상을 좋게 묘사한 사람이 1도 없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 동안, 20세기 들어 가장 오래 영국 총리를 해먹은 인물이기도 하고 최초의 여성 영국 총리이기도 한 대처 남작부인이라면 다른 건 모르겠고 대중적 인기가 대단했으리라 싶은데, 보수당 출신이어서 그런지 작가들한테는 1급 비추였던 모양이다. 하기는 내가 아는 보수 지지 작가라고는 오노레 드 발자크와 <파운틴 헤드>를 쓴 애인 랜드밖에 없기는 하다. 뭐 대개 그렇지. 진보주의자로 불리고 싶지만 사는 건 부르주아로 살고 싶은 게 요즘 인지상정이니까. 대강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스스로도 그렇게 불리기 바라고 자신을 그렇게 정의하기도 했던 바, “강남 좌파”라고 하는 거 아니겠나. 인생 목표가 강남 건물주인 "자칭" 진보주의자들.

  단편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은 1984년 런던 남쪽에 있는 도시 브라이튼의 그랜드 호텔에서 IRA에 의해 저질러진 폭탄 테러를 말하는 건 아니다. 아예 정확한 제목도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 1983년 8월 6일>이니까 실제 암살 미수 사건이 생기기 1년 2개월 전이다. 작 중에서 대처 수상은 가벼운 안과 시술 차 런던 시내의 병원에 갔고, 시술을 마치고 나올 때, 의사와 간호사, 기타 관계자가 도열한 가운데 한 명씩 악수를 나누며 병원문을 나설 것이고, 이때 병원 현관이 잘 보이는 민간 아파트에 들어가 창문에서 저격용 소총으로 암살한 다음, 암살범은 총을 든 채 아파트에서 빠져나오다가 경호원과 교전 중에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시나리오이다. 잡혀봤자 그래도 20세기 잉글랜드니까 심하지는 않겠지만 고문 또는 고문에 준하는 신문을 당할 것이고, 신문 끝에 관계자 여러분의 명단을 줄줄 읊을 수밖에 없을 터이니 암살자 한 명 때문에 IRA 조직이 와해되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게 여러모로 영웅답다, 이거다.

  이 작품을 읽는 영국인, 아일랜드 사람들은 동아시아 독자들과는 달리 암살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고 있다. 그러면 이 단편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궁금하기는 궁금한데 어떤 방식으로 궁금한지 알아내기 위하여 한 번 더 읽을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힐러리 맨틀은 20대 젊은 시절부터 심신이 건강하지 못했다. 신경정신과 적으로 질환이 있어 약물을 복용해야 했고, 산부인과적으로도 질환이 있어 27세에 조기 폐경을 해 평생 “고통과 함께 살아야 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빨리는 아니고 2022년에 70세의 나이로, 마거릿 대처 남작부인과 비슷한 질환인 뇌졸중 합병증으로 세상을 접었다.

  가볍지 않은 질환을 가진 채, 달리 말해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태로 늘 약을 복용하며 살았던 맨틀은 죽음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등장한다. 이를 미디어의 서평에서는 “유머러스하고 잔인한 세계가 펼쳐진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내 생각으로 말하자면 좀 과한 평가 아닐까 싶었다. 작가 입장에서는 그렇게 당하고 싶지 않은 반어법적 그로테스크, 이것을 묘사하는 마음이 즐겁지 않았을 것 같아서. 하여간 뭐 그렇다.

  부커상을 두 번이나 탄 힐러리 맨틀이지만 단편들이 그리 즐길 만하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스토리의 적절한 반전도 그냥 그렇고, 문장이나 구성이 눈에 차지도 않았다. 늘 얘기하는 것이지만 나는 “단편소설의 나라”에 사는 독자라서 단편 소설에 관해서는 눈이 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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