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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247의 모든 것
  • 김희선
  • 15,120원 (10%840)
  • 2024-05-10
  • :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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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7. 나는 정수를 발견하면 제일 먼저 그 수가 소수prime number인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거의 본능 같다. 2, 3, 5, 7, 11, 13. 13에서 걸렸다. 247÷13=19. 빙고. 247을 소인수분해하면 1, 13, 19, 147의 약수를 가지고 있다. 소수는 아니다. 이번에 김희선은 숫자 247, 1과 자기자신 247을 빼면 오직 두 소수 13과 19만 약수로 가지고 있는 수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펜데믹 이후 반드시 또다시 닥칠 미래의 펜데믹에 관한 이야기라고 광고글을 읽어, 책이 1년 전에 나왔음에도 읽을지 말지 머뭇거리다 세월만 보내고 결국 읽었다. 2백쪽이 살짝 넘는 가벼운 장편. 분량이 가볍다는 말이지 내용까지 가볍지는 않다.


  오래 전, 적어도 40년 세월이 흐르기 전의 어느 날. 강원도 W시의 한 초등학교 4학년 교실. 흰 구름이 몰려오고 습도가 높았다니 아마 여름철이었을 듯한 한낮. 곧 소나기가 쏟아질 거 같은데 교사는 칠판 가득 의미 없는 수식만 잔뜩 써넣고 있었고, 아이들은 졸고 있거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콧구멍을 후비고 있거나, 연필로 앞에 앉은 아이의 등을 아주 살짝 콕콕 찌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때 갑자기 작지 않은 검은 비행물체가 열어놓은 창문을 타고 빠른 속도로 날아 들어오더니 맞은편 복도쪽 유리에 강하게 부딪혀 철퍼덕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는데, 이 순간 가장 높은 음정과 가장 센 음량으로 비명을 지른 사람은 모르긴 몰라도 담임선생이었을 것이다. 담임은 제일 연장자이고 반에서 생기는 모든 책임을 지어야 하는 사람인 것은 까마득하게 모른 채, 어서 치워, 빨리 저 괴물을 치워버리란 말이야, 악을 쓰듯이, 비명을 지르듯이 마치 패닉에 빠진 신경정신과 적 이상이 있는 사람처럼 부르짖었다. 학생들도 함부로 검정 비행물체에 쉽게 접근하려고 하지 않아 마치 널부러진 듯 꼼짝 않는 검은 물체는 잠깐 동안 외로운 UFO 같기도 했는데, 평소 아무 존재감이 없어서 걔가 우리반이었는지 아니었는지도 별 관심이 없던 김홍섭, 나중에 247이라고 불릴 아이가 한 손에 날개 하나씩 들고 좌악 펼쳐 보이더니, 이거 박쥐인데요, 했었다.

  기가 넘어가기 바로 직전인 담임은 홍섭에게 얼른 가져다 버리라 지시했고, 홍섭은 한 손에 날개 하나씩을 든 채 쓰레기장 쪽으로 걷다가 버리려고 보니 아직 숨을 쉬고 있어서, 사용자가 거의 없어 뽀얗게 먼지만 쌓인 과학실로 데려가 줄로 다리를 매달아 놓았다. 집에 가서 동물도감을 찾아보니 생긴 건 그렇지만 과일만 먹고 사는 박쥐라고 써 있길래, 홍섭은 다음 날부터 박쥐에게 과일을 가져다주기 시작하지만 며칠 가지 않아 박쥐는 죽어버리고 만다. 홍섭도 관심이 멀어져 그냥 그대로 잊고 말았고. 몇 주일 후, 장마철이 지나가 본격적으로 높은 습도가 계속됐을 지도 모른다. 홍섭이네 반에 과학실습을 하는 날이 와서 여자 아이 하나가 기재를 가지러 과학실에 갔는데, 말도 못하게 역한 냄새가 나는 걸 참고, W시에 사는 40년 전 아이들이 경험상 알았듯이 냄새의 원인이 죽은 동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보니까, 새까만 박쥐가 거꾸로 줄에 매달려 이쪽을 향하고 있는데 복부가 일자 비슷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희고 포동포동한 벌레가 꼬물꼬물 기어 다녔고, 가끔 구더기라 불리는 애벌레가 박쥐의 복부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박쥐. 말레이시아가 원산인 커다란 검은 박쥐는 생김새와는 달리 과일을 주식으로 했고, 훗날 밝혀지듯 니파바이러스의 숙주가 되는 동물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 박쥐를 직접 손으로 만진 김홍섭, 이제부터 247이라고 부를 남자는 대학에 입학하려고 재수, 삼수를 했지만 실패를 해, 그래도 돈 좀 있는 시골부자 아버지 덕에 동남아시아에 있는 국가 P의 약학대학에 유학한다. 당시 법은 P의 약대를 졸업해도 다시 돌아와 약사시험에만 합격하면 약사면허증을 딸 수 있어서 그것을 노린 것이었지만 늘 있는 듯, 없는 듯했던 247은 졸업 후 돌아와 치른 약사 시험에 불합격하고 만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WCDC세계질병통제센터. 의사도 아니고, 수의사도 아니고, 약사도 아닌 일반 공무원. 그가 하는 일은 구제역, AI 등이 발생할 때마다 소, 돼지, 닭, 오리, 염소, 양 목장에 찾아가 살아 있는 동물을 살처분해 땅을 파 묻는 일이었다.

  살처분? 그렇다고 일일이 총살을 집행하거나 멱을 따지는 않고, 일단 땅을 깊숙하게 판 다음 두꺼운 비닐을 여러 겹으로 깔고 웅덩이에 소면 소, 돼지면 돼지, 가금류면 가금류를 밀어 넣는다. 이후 이산화탄소를 집중 발사해 질식사를 시키는 건데 이산화탄소가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이 마신 가스와 비교하면 청정공기하고 비슷한 수준이라 동물들이 단박에 죽지 않아 거의 생매장을 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땅 속에 짐승을 묻어버리고 시간이 지나면 땅 속에서 박테리아들이 단백질과 지방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모든 죽은 짐승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크기로 부어오르다가 한 순간에 펑, 몸이 터져 골수와 혈장과 액체로 변한 단백질과 지방이, 비록 땅 속이지만 사방으로 분사되고, 매몰한 곳의 토지 역시 진흙 수렁 비슷하게 바뀐다. 죽음과 부패와 바이러스와 혐기성 세균만 득실거리는 수렁.

  어린 시절 니파바이러스가 몸 안에 가득 찼을 지도 모르는 박쥐를 죽을 때까지 만졌으며, 니파바이러스의 종주국이랄 수 있는 동남아에 유학해 공부하고, WCDC에 입사해 니파바이러스의 중간 숙주인 돼지 살처분에 적극적 개입을 한 247은 2020년 COVID-19의 종식 이후 과거의 펜데믹보다 훨씬 강력한 변종 니파바이러스가 다시 세상을 덮치자 국내의 가장 강력한 슈퍼전파자, 가장 강력한 인간 숙주로 밝혀졌다.


  그런데 247이 정말 그렇게 무서운 인간숙주라서 바이러스에 걸리기만 하면 제법 잘 지내다가도 갑작스러운 발병을 해 푹 고꾸라져 죽을 수 있고, 마침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몇십 명이 죽는 광경이 생방송으로 우연히 전국민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격리수용을 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을까? 247을 겨냥한 거의 모든 국민의 미움, 미움을 넘어선 증오는 하늘을 찔러, WCDC 관계자가 생각하기에, 국민의 증오가 다른 곳도 아니고 하늘을 찌른다는 말이지? 하여간 그리하여 247을 수천억 혹은 조 단위가 넘게 들지도 모르는 인공위성에 태워 지구 궤도를 돌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고 나면?

  과학저널에 실렸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어떻게 발생했을까? 우주 공간에서 서식하다가 운석에 붙은 상태로 지구에 떨어져도 생존할 수 있는 독한 생명이 바이러스. 이런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핵산 뭉치. 생명체라고도 함부로 말하기 거북한 골치 아픈 존재. 그리하여 세계질병통제센터는 247을 대기권 밖에서 지구 궤도를 하루에 열다섯 번씩 돌게 하다가, 물론 정기적으로 급양과 위생, 즉 먹고 싸는 일은 가능하게 해주고, 극히 좁은 공간에 격리시키다가, 드디어 심판의 날이 와 247이 숨을 거두면, 인공위성을 지구에 다시 추락시켜 재활용을 하는 대신 태양계 밖으로 추진시켜 영원히 바이러스가 지구에 도착하지 못하게 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드디어 247이 죽던 날. 그는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향해 무언가 메시지를 남긴다. 모스 부호를 통해.

  이미 극소수만 사용할 뿐인 모스 부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안전할 줄 알아? 꿈 깨라고. 영원한 격리는 없으니까.”

  아무도 모스 부호를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한다. 훗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247이 위성 안에서 지구인에게 남긴 최후의 메시지는 이랬다고 전한다.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라.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그리니치 표준시로 20XX년 4월 8일 오후 1시 20분에 마지막 생체 반응을 보인 247번 확진자는 WCDC가 인류를 대표하여 죽음을 애도하는 가운데 멀고 먼, 길고 긴 우주 항해를 떠난다. 그리고 며칠 후 247은 지루한 걸 견디지 못해 감히 해치를 열어 우주복도 입지 않고, 안전줄도 매지 않은 채 광활하고 어둡고 추운 우주 공간일 것인 우주선 밖으로 나와, 푸르지는 않지만 하여간 시든 풀이라도 있는 예전의 돼지 목장에 내려 죽은 자 가운데 삼일 만에 부활하는 데 성공한, 인간의 땅에 재림한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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