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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갈증
  • 미시마 유키오
  • 15,120원 (10%840)
  • 2024-06-24
  • : 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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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마 유키오. 처음엔 군국주의자라서 미운 털이 조금 박였다가 시절이 그랬으니까, 하고 조금 봐줬다. 탐미적 문장이 색달라 자살을 감행할 당시의 울퉁불퉁한 근육과 조금 어울리지 않기도 했다. 근데 점점 정나미가 떨어졌다. 1925년에 태어나 1970년 마흔다섯 살 나이에 스스로 삶을 접은 군국주의자. 당시에 전쟁하기 좋은 나이였던 10대 후반에 징집 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 쪽팔려 더욱 군국주의에 경도되었는 지도 모른다. 그게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으니까. 그래도 정나미가 떨어진 건 시대가 어느 시대라고 탐미주의 문학을 그리 오래 했는지. 말이 탐미주의이지 미시마의 주요 작품에는 벽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과부 엄마가 선원과 침대에서 벌이는 짓을 훔쳐보고, 예순이 넘은 늙은이의 무릎에 앉아 열아홉 살 먹은 처녀애가 갖은 아양을 떨고, 잘 생긴 청년에게 그 여자애를 꼬드겨 결혼을 하라고 강제하는 등, 마치 위스망스나 폰 카이절링을 읽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한다. 이들보다 욕망과 환상에 더욱 집중해서 변태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사조는 1920년대에 이미 석양을 맞았음에도. 즉 스타일이 뒤져도 많이 뒤졌다는 건데, 그리하여 미시마의 욕망과 성적 환상은 더 역겹다. 게다가….


  에쓰코. 무사 집안의 딸로 도쿄에서 태어난 번듯한 집안 출신의 과부. 이이가 오사카에 있는 한큐 백화점에서 양말 두 켤레를 산다. 지금 있는 곳은 오사카 근방 도요나카의 마이덴 마을. 시아버지 스기모토 야키치가 1934년에 마이덴 마을에 1만평의 땅을 산다. 그는 도쿄 인근의 소작농 아들로 태어나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간사이 상선 오사카 본사에서 오래 근무해 34년에 전무이사, 38년에 사장을 역임한 후 39년에 은퇴를 하고 곧바로 마이덴 마을로 내려와 과수원 등을 가꾸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야키치한테는 아들만 셋 있었는데, 첫째가 서른여덟 살 먹은 겐스케요, 둘째가 료스케이며 막내가 유스케이다. 첫째는 천식으로 징집 면제 판정을 받아 아버지 집에 빌붙어 살고 있다. 입 터는 재주만 있는 한량이라 게으르기가 짝이 없다. 그것도 능력이다. 게으르면서 어째저째 잘 먹고 사는 거. 셋째는 시베리아에서 아직 귀국을 하지 않았다고만 해, 전쟁중에 징집당해 아직 안 온 것인지, 회사에서 그쪽으로 출장을 보낸 것인지 끝날 때까지 헷갈리는데, 아마 일하러 간 거 같다.

  둘째 료스케가 에쓰코의 죽은 남편이다. 죽고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장티푸스. 결혼생활 내내 아내에게 SM을 비롯한 갖은 방법의 잠자리 방식을 교육시킨 것도 모자라 혼외 수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상대 여자의 사진을 죽 늘어놓기도 하는 등, 이를테면 건장하고 정력 좋은 변태다. 근데 죽었다. 사는 내내 며칠 간의 신혼여행 기간을 빼고 세상의 모든 방법으로 에쓰코로 하여금 질투와 고통만 안기다가 장티푸스에 걸려서. 도쿄에서 혼자 살기가 팍팍했는지 에쓰코는 오사카 마이덴의 시아버지 야키치 집으로 들어왔다. 남편 죽고 3년 탈상도 하지 않아서, 홀아비 시아버지가 큰아들 내외, 막내 며느리와 아이들이 사는 집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시댁에 들어가게 되면 시아버지의 잠자리 당번도 해야 될 것임을 눈치로 알았으면서도. 시아버지는 이제 늙어 수면모자를 쓰고 잔다. 에쓰코와 한 이부자리에서. 수면모자를 쓰지 않는 날도 있는데, 그날은 손가락으로 며느리를 더듬다가, 가능하면 위로 올라가는 날이다.

  아무리 아들이 죽었다고 해도 좀 이상하지? 일본인이라서 그런가? 아니다. 일본인도 이건 이상한 일이다. 이상하다기보다 돼먹지 못한 일에 더 가깝다. 미시마 유키오 쓰는 게 다 그렇다.

  마이덴 집에는 소작인 가족과 과수원을 돌보는 정원사이자 일꾼이 세 명 있었는데, 전쟁 말기에 일꾼 셋 다 징집을 당해, 야키치는 히로시마에서 갓 소학교를 졸업한 소년 사부로를 데려왔다. 이 사부로가 집에 오게 된 내력이 작품 초기에 나온다. 그럼 다 끝났다. 에쓰코는 과부, 소년 사부로는 이제 나이가 차 열여덟 살의 건장한 청년. 아직 에쓰코가 시아버지의 잠자리 당번이란 건 확실하게 밝히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서른 살이 넘어 농익은 여성과 열여덟 살의 청년이 나왔는데, 제목이 <사랑의 갈증>이라면 에쓰코-사부로의 러브라인 혹은 애증의 관계가 이야기 줄거리가 될 것임을 딱 눈치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에쓰코가 오사카 한큐 백화점에서 사온 양말 두 켤레가 사부로한테 주려고 산 거였다.


  열여덟 살 사부로한테 과부 부인 에쓰코는 자신이 언감생심 상대로 생각할 수도 없고 생각해도 안 되는 인물. 하지만 에쓰코는 자기 혼자 열라 사부로를 짝사랑하면서 마치 사부로 역시 자신을 좋아하는 것처럼 오인하기 위해 애쓴다. 사부로는 평소 자기를 좋아하는 눈치를 주던 하녀 미오와 잤고, 미오는 임신했다. 에쓰코는 남편 료스케와 살 때처럼 질투의 불이 붙는다.

  오직 사랑에만 갈증이 타는 에쓰코는 사부로한테 미오를 사랑하는지 수없이 물어보고 물어본다. 사랑한다면 결혼시키려고? 천만의 말씀. 사랑하지 않으면 결혼시키려 한다. 그렇게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짝이 될 여자가 예전의 자신처럼 질투와 고통 속에서 평생을 보내라고. 사부로는 사랑이 뭔지 모른다. 그냥 옆에 미오가 있어서 저절로 몸을 만지게 되고, 몸을 만진 김에 함께 자서,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를 가졌으니, 그저 주인이 결혼을 하라면 하겠다는 것뿐이다. 다만 히로시마에 있는 어머니가 허락한다면.

  문제는 에쓰코가 시아버지 야키치의 주례로 둘을 결혼시키기로 했건만, 사부로와 미오가 (가을이 되어) 감 수확을 하다 둘이 그렇게나 재미있게 장난을 하는 걸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한다. 자기 생각에 둘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저리 친하게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사부로는 열여덟 살. 여전히 몸과 마음의 엔트로피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청춘 남녀가 감나무 위에서 장난을 치는 것 가지고 사랑, 사랑, 그리고 또 사랑, 사랑타령을 하는 것으로 오해한 거였다. 조현병 환자, 쉽게 말해 미친년이 틀림없는 것처럼 보이는 에쓰코는 진심으로 미오의 불행을 위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사부로가 다른 아가씨를 사랑하는데 그 상대라니 얼마나 열폭하겠는가는 알겠지만, 자신의 상태가 사랑이란 현상을 지극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건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은 비록 애정이 전혀 없는 시아버지 야키치의 잠자리 애완이면서도 불 같은 질투를 퍼부어, 사부로가 1년에 며칠씩 갖는 정기휴가를 내어 어머니에게 결혼승낙을 받으러 가는 며칠 사이에, 직접, 단칼에, 임신해 몸 속에 아이가 있는 여자애를 내쫓아 버린다.


  스기모토 집안의 누구도 불쌍한 미오한테 관심이 없다. 그저 단호하게 애를 밴 여자애를 쫓아낸 에쓰코의 결단에 놀랄 뿐. 사부로는 어머니한테 결혼 승낙을 얻지 못하고 혼자 돌아와서, 집안의 셋째 며느리를 통해 이야기 전말을 들었음에도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았거든.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거든. 사부로 이 개자식은 미오가 사랑은커녕 어여쁘지 않았으면서도 그냥 한 거다. 당연히 그걸로 끝이다. 애가 생겼건 말건. 임신중단을 하거나 말거나, 낳거나 말거나, 자기 아이를 밴 여자가 쫓겨나던 말던. 사부로 또는 이 청년 비슷한 하인 계급한테 사랑이란 것이 살면서 무슨 필요가 있는 지 잘 모르겠다는 건 알겠는데 그럼에도 사부로 같은 안면몰수를 어찌 볼 것인지. 작품을 읽으면서, 에잇, 괜히 나 혼자 미오가 불쌍해, 읽어가며 속이 상하고, 마음이 복잡하고 가슴이 미어져, 아이쿠, 이 드런 이야기를 계속 읽을까, 여기서 그냥 때려 치울까, 마구 망설였다는 거 아니냐는 말이지.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워낙 생겨 처먹은 것이 군국주의 꼴보수 부르주아라 그렇다 쳐도, 등장인물 가운데 누구 한 명, 독자 중에서 누구 하나 미오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걸 알고, 세상 참. 뭐 그랬다는 거다. 왜 그랬을까? 이들 눈에 미오는 무식하고, 못생기고, 철저하게 무산자, 프롤레타리아이고, 남의 집 드난살이 하는 신세라 아무 감정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마님과 마당쇠의 사랑 이야기에 귀싸대기만 얻어 터지는 배역을 맡아도, 그냥 우연히 사부로 옆에 있는 여자라 한 번 했던 것뿐이라고, 그렇다고 애를 배고 마는 칠칠치 못한 년이라서, 아무렇게 대해도 괜찮을 하잘것없는 인간, 그 중에서 특히, 재수 없이 애를 밴 여성이라서? 그래서 그렇게 해도 될 거 같아서 말이지? 계급은 철폐되어야 한다. 책임 없이 한 여자를 임신시킨 건장하고 잘 생긴 무산자 계급 피고용인이자 천한 하인 청년과 조금 나은 복지를 위하여 시아버지하고 기꺼이 “자발적으로” 붙어먹고 사는 미모의 부르주아 과부 장년 여성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계급은 철폐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미혼부인 동시에 강간미수범과 잠재적 살인범의 탐미적 사랑을 위하여 계급이 철폐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 이 개 같은 커플에 의하여, 성적 농락을 당해 아이를 뱄고, 그나마 생활의 방편인 식모라는 직장에서 추호의 잘못도 없이 쫓겨난, 세상이 뒤집혀도 의지가지 한 군데가 없는 하녀이자 식모이고, 못생기고, 무식하고, 가난한 어린 약자이면서 애까지 밴 미혼모, 여성, 미오를 위해 계급은 철폐되어야 한다. 늙은 남성이자 법적 시아버지와 30대 성인 여자가 대놓고, 자발적으로 그러나 사랑 없이 붙어먹는 건 언짢지만, 십대 미성년자 남성을 향한 장년 여성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그러나 당연히,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안타깝다고? 뭐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겠지. 그렇겠지.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적인 문장이 너무 많은 것을 가리고 있다.

  유미적이며 세기말적인 자극적 소재도, 다른 독자는 모르겠고, 내가 읽는 기준으로 말하자면, 이미 스타일이, 물이 갔음에도, 가도 많이 갔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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