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로서 평가가 되는 영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다.
최근에 본 두 편의 영화가 각각 위의 경우를 대표했는데, 하나는 <주홍글씨>이며 또 하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우선 두 영화 모두 재미있게 봤다.
<주홍글씨>를 보고는 영화에 대해 말을 많이 했다. 한석규의 연기가 어떻고 이은주의 연기가 어떻고... 연출은 세련되나 장치가 다소 진부하다는 둥... 주인공의 캐릭터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레즈비언 코드가 <원초적 본능>과 비슷하다는 둥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엊그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고 난 '그 영화'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하기가 싫었다. 그 영화의 공식 사이트를 방문했던 것도 후회할만큼. 난 다만 '조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한참을 '조제'에 대해 생각했다.
다시 해저와 같은 심연 속으로 들어간 조제. 그녀는 츠요네를 붙잡지 않는 최소한의 쿨함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 한밤중에 잠이 깬 조제는 얼마나 무섭고 외로울까? 한줄기 빛도 미동도 없는 해저에서 아무리 팔을 휘저어 보아도 저곳, 물살이 있고 태양이 부서지고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노니는 바다의 표면에는 닿지 않겠지.
생선 반토막을 구울 때 조제는 생각하겠지. 책을 읽다 호랑이만 나와도 조제는 또 생각할 것이다.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릴때 조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뛸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년을, 어쩌면 평생 조제는 그가 남긴 추억과 아픔을 되새김질하게 될 것이다.
떠난 사람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의존하는 관계라면 대개 그렇게 끝이 나기 마련이니까. 그냥 자꾸만 조제가 걸린다. 남겨진 그녀가 감당해야 할 외로움의 무게를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영화를 영화로 볼 수 없게 만들었던 특별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