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검색
비코드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나의 계정
주문조회
보관함
0
알림
추천마법사
베스트셀러
새로나온책
굿즈총집합
분야별 보기
이벤트
중고매장 찾기
매입가 조회
알라딘에 팔기
회원에게 팔기
국내도서
전자책
외국도서
온라인중고
우주점
커피
음반
블루레이
알라딘 굿즈
자동슬라이드 멈춤
북펀드
오디오북
고객센터
알라디너TV
알라딘 서재
북플
소셜 속 알라딘
신간 소식과 다양한 이벤트 정보를 받아볼 수 있어요
알림센터
장바구니
메뉴 전체보기
검색
댓글 작성시 입력한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삭제
취소
지상의 다락방
글보기
서재 브리핑
방명록
닫기
공유하기
URL 복사
메뉴
차단
신고
[100자평] 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할까
잠자냥 2026/06/10 09:47
댓글 (
1
)
먼댓글 (
0
)
좋아요 (
11
)
닫기
잠자냥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취소
차단
잠자냥
2026-06-10 09:48
좋아요
l
(
3
)
향유의 쾌는 덧없고 헛된 것입니다. 이 덧없는 향유의 쾌를 소중히 여기는 일은 수단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적 지배에서는 ‘체스를 위해 체스를 두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그저 체스를 두는 경우에도 ‘전략적 사고를 익힌다’거나 ‘승부욕이 강해진다’와 같은 어떤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냥 체스를 즐기는 일은 전체주의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구성원의 삶 전부가 전체의 목적에 봉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렌트는 목적 개념을 철저하게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목적이라는 것은 설정되는 순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어떤 수단이든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동적’이라고 불리는 향유의 쾌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내몰리지 않는다. 기호품을 즐기고 있을 때 우리는 조금도 무언가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저 향유의 쾌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쾌적한 것을 즐길 때 우리는 목적-수단 연계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병적이지 않다. (...) 향유의 쾌를 받아들이는 법을 모르는 인간은 계속 병적인 존재로 남게 된다. 쾌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단을 그저 목적 달성을 위해서만 계속 좇게 된다.
비밀 댓글
트위터 보내기
소셜 링크 설정
트위터 계정을 알라딘 소셜링크로 설정하시면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상품정보와 나의 서재글을 내 트위터에 편리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소셜 링크 설정
페이스북 계정을 알라딘 소셜 링크로 설정하시면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상품정보와 나의 서재글을 내 페이스북에
편리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