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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자냥  2026-06-10 09:48  좋아요  l (3)
  • 향유의 쾌는 덧없고 헛된 것입니다. 이 덧없는 향유의 쾌를 소중히 여기는 일은 수단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적 지배에서는 ‘체스를 위해 체스를 두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그저 체스를 두는 경우에도 ‘전략적 사고를 익힌다’거나 ‘승부욕이 강해진다’와 같은 어떤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냥 체스를 즐기는 일은 전체주의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구성원의 삶 전부가 전체의 목적에 봉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렌트는 목적 개념을 철저하게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목적이라는 것은 설정되는 순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어떤 수단이든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동적’이라고 불리는 향유의 쾌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내몰리지 않는다. 기호품을 즐기고 있을 때 우리는 조금도 무언가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저 향유의 쾌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쾌적한 것을 즐길 때 우리는 목적-수단 연계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병적이지 않다. (...) 향유의 쾌를 받아들이는 법을 모르는 인간은 계속 병적인 존재로 남게 된다. 쾌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단을 그저 목적 달성을 위해서만 계속 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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