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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 되면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곳의 마당 있는 집에서 고양이들 뛰놀게 하면서 사는 게 어떻겠느냐고 집사2가 말한 적이 있다. 어차피 나는 책만 있으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 삶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데, 나는 조금 망설였다. “그럼 영화 보러 가기가 너무 어려워지는 거 아니야?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그런 데선 잘 안 할 텐데.....”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다는 듯 집사2가 아하, 맞다 그렇지, 그렇다 한다. 직장만 아니면 서울의 이 번잡함을 벗어나고 싶다가도 끝내 망설이는 것은 영화관을 비롯한 문화/예술 시설에서 서울을 떠나기 어렵다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도시에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는 서울이 아닌 곳에도 영화관은 존재하고 또 누군가는 OTT 서비스가 이토록 발달한 때, 굳이 영화관 때문에 서울을 떠나지 못한다는 소리는 억지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으리라. 그래,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서울에‘만’ 있는 영화관들이 있었고, 있으며 그곳에서 나는 대부분의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영화들을 만났다. 그 영화관들이 책과 함께 나를 키운 8할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수전 손택의 <영화에 관하여>는 이렇게 영화에 관한 사랑을, 기억을, 추억을, 뜨거움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를 사랑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게 하고, 극장을 찾게 하고, 늦은 밤 불 꺼진 거실에서 TV를 켜고 영화로 몰입하게 한다. 그때의 영화는 오래된, 옛날 영화가 어울릴 것이다.

처음 영화관을 찾은 것은 미취학 아동 때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찾아간 동네의 허름한 동시상영관이다. 극장 안에는 내 또래의 아이들만 가득했다. 조그맣고 조악한 화면에서는 <로보트 태권브이> <마징가>또는 <스페이스 간담 브이> 같은 주로 로봇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이 상영 중이었고 그 이후는 아마도 그 시절의 영웅 심형래가 나오는 우뢰매 시리즈였을 것이다. 엄마가 내 손을 이끌고 이곳에 나를 넣어두고 당신은 그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던 것은 내가 이런  류의 영화들을 좋아했기도 했지만(언니는 좋아하지 않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는 동안 당신 자신만의 시간을 오롯이 보낼 수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 어린 날에도 불이 꺼지고 화면에서 색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을 참 좋아했다.




그러니까 이런 장면들.......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나 스스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고, 극장에 가게 된 것은 열네 살 때이다. 시험이 끝난 때라 친구 둘과 학교 근처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이 녀석들이 둘 다 그날 펑크를 낸 것이다. 이럴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른 날로 약속을 바꾸거나 자기도 가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나는 갔다. 혼자서. 그리고 나는 그때 진심으로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구나 느꼈다. 그날의 영화는 <시네마 천국>. 지금도 내 인생 영화 중 하나로 꼽는다. 하필이면 영화를 좋아하는 꼬마 토토의 이야기. 청년이 된 토토가 엘레나와 쏟아지는 빗속에서면서 키스하는 장면, 어른이 된 토토, 영화감독이 된 토토가 주세페 할아버지가 남긴, 검열 때문에 잘린 키스 장면만 모은 필름을 스크린 위로 재생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열네 살의 나를 울리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도, 지금도 여전히 나를 울린다. 





이 친구들과는 그해 여름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 본격적으로 도심 진출. 한 녀석이 꼭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비 오는 날의 수채화>였다. 이때도 나는 한국 로맨스물을 좋아하지 않아서(아 미쳐ㅋㅋㅋ 취향 확고한 중딩 어린이 중2병 어린이 자냥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 투덜댔는데 친구 두 녀석이 둘 다 너무 원하기도 하고(얘들은 로맨스빠...순이), 집 근처가 아닌 도심의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서 따라나섰다. 지금은 사라진 국도극장인가 그랬는데, 이 극장의 분위기는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들하고 다들 좀 놀랐다. “여기 왜 근데 아저씨들이 이렇게 많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저씨들이 왜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보러 옴?”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실도 좀 이상해! 구멍이 막 뚫려 있어! (현대의 불법카메라용 구멍과 크기가 다르다).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추적60분>인가 이런 방송을 보면서 알았다. 당시 충무로나 종로의 몇몇 극장은 게이들의 성지였다는 것을(ex 허리우드 극장의 기형도)...... 그리고 그 구멍은............  지금 생각해보면 좀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들이 게이였다는 것이. 아니었다면 이 아저씨들이 중학생 소녀들을..... 헌데 그 시절 나는 소년스럽게 생겨서 아저씨들이 좀 뚫어져라 쳐다 본 것도 같다. 소년이 아니어서 천만다행.

이때 친했던 녀석 중 한 친구는 같은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어 그 이후로도 종로의 서울극장 등으로 몇 번 영화를 보려고 함께 갔다. 헌데 이 녀석이 고르는 영화는 하나 같이 로맨스물(<타이타닉>, <보디가드> 등)이어서 좀 힘들었다. <타이타닉> 보고 나와서 친구는 막 우는데 도대체 왜 우는지..... 사실 나도 좀 울기는 했다. 우는 지점이 달라서 그렇지. 내가 이 영화에서 운 지점은 배가 침몰하는데도, 자신들이 익사할 것을 알면서도 한 치의 동요 없이 음악을 연주하던 그 연주자들을 지켜볼 때였다. 지금도 이 장면은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껴안고 우는 장면이 아니라.... 하하하.

엄마가 어린 나를 극장에 넣어줬다면 아빠는 십 대의 나를 비디오의 세계로 이끌어줬다. 아버지와는 연락하지 않은 지 수십 년이지만 내가 그래도 아빠에게 고마워하는 부분은 영화의 세계를 확장해 준 점이다. 큰 상처를 주고 떠난 사람이라 좋은 아빠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이 사람에게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음주 못함, 폭력적이지 않음이었다. 단지 한량처럼 놀고먹으면서 엄마 외의 여자를 너무 좋아했을 뿐이었다는 것. 그 한량스러움에 영화가 한몫했다. 아빠의 취향은 <대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같은 느와르였는데 덕분에 나는 이 장르를 십 대 시절에 섭렵했다. 아빠가 빌려오고 반납은 내 담당이었는데 그런 중 대부분의 작품은 “너도 봐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아빠 기준에 외설스러운 작품은 안 되지만 폭력이 난무하는 갱스터 영화는 괜찮았나 보다. 하긴 내가 100% 장담하는데 울 아빠가 집에서 음란비디오 같은 거 봤을 인간은 절대 못 된다. 딱히 볼 욕구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가서 직접 하면 되니까(엥? 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그 시절 <대부> 시리즈 <스카페이스> <언터처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등 느와르 장르의 불멸의 고전들은 거의 다 본 것 같다. <스카페이스> 때문에 브라이언 드 팔마의 광팬이 되었는데, 드 팔마가 또 B급 영화의 A급 영화감독 아니겠는가! 드 팔마 때문에 나는 B급 감성 영화도 무척 좋아한다.

십 대의 나를 충격에 빠트린 영화는 <퐁네프의 연인들>이다. 이 영화에 관한 기억도 참 재미나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을 텐데 중간고사가 끝난 후였나?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갔다. 어떤 선생님이 이 영화를 골랐을까? 시험이 끝난 후이므로 아이들은 다들 졸려서 비몽사몽, 그런  데다가 하필이면 프랑스영화였으니 오죽했으랴. 그때 우리 반 아이들은 스크린을 보며 소리를 질러댔다. 남주가 저렇게 못생겨도 되는 것이냐! 드러워도 너무 드러운 거지다! 대체 뭔 소리야! ㅋㅋㅋㅋㅋㅋㅋ 시간이 흐를수록 자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나는 이날 이 영화와, 레오 까락스와, 프랑스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프랑스영화에 대한 열렬한 애정은 이날 생기지 않았을까?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제2외국어로 불어를 가르쳤는데 불어선생님이 이 영화를 고른 것일까? 


고등학생 때 데이트하듯이 보게 된 영화는 <써머스비>이다. 프랑스영화 <마틴 기어의 귀환>을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영화인데 ‘리처드 기어’와 ‘조디 포스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프랑스영화에서는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주인공이었는데 이 조합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데이트라고 하니 남학생하고 봤는가 싶을 텐데 그건 아니고 ㅋㅋㅋㅋ(엥?) 그 시절 나를 참 많이 좋아해주던 한 선배와 같이 본 영화이다. 중고등학생 때 나는 좀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보이시했던 외모 때문인가 싶기도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거 같고. 아무튼 책상 위에 선물이 많았던, 편지도 여기저기서 받았던 인기 많은 아이였다. 이 선배도 나를 참 좋아해 준 사람 중 하나였다.... 

야간 자율 학습이 9시에 끝나고 다들 집에 가기 바쁜데 내가 탈 버스는 늘 늦게 오곤 했다.  한참 기다리고 있으려니 길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나처럼 버스를 타지 않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선배는 내가 몇 번 버스를 타고 가는지 알고 싶어서 늘 내가 먼저 타기를 지켜봤다는데 늘 너무 늦게까지 안 오더라는 것. 사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등하굣길이나 월요일 전교생 운동장 조회 시간 등등에서 이 선배의 시선을 눈치채고 저 사람도 나한테 반했네, 반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만방자함을 떨었는데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도 오는 버스는 타지 않고 늘 나만 쳐다보고 있어서 저 사람 중병이네 중병이야, 했던 기억이 난다. 선배는 결국 나와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하고(엥? ㅋㅋㅋㅋㅋ) 편지와 선물을 싸들고 내려왔고(그 시절 우리 학교는 1학년은 2층, 2학년은 3층, 3학년은 4층을 사용했다. 내가 2학년 때라 3층의 우리 반 교실로 4층에서 내려오심), 그 이후 가까워졌다. 그렇게 처음 같이 보러 간 영화가 서울극장에서 개봉한 <써머스비>였다. 전쟁이 끝난 후 한 농부(‘리처드 기어’)가 귀향한다. 이 남자는 원래의 그 남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남편인척 내내 연기하는데 아내(‘조디 포스터’)는 그가 사실 남편이 아닌 줄 알면서도 결국 사랑에 빠지고 만다는 내용이다.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선배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 시절에 나를 좋아했던, 내게 열광했던 아이들 중 얼마나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졌을까 싶다. 그 많은 애정을 받으면서도(5월호 '정희진의 공부'에서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네, 겸허해지겠습니다........) 다 지나가는 일이라고, 한때라고 생각했다. 사춘기 시절에 흔한 그런 애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선배는 좀 달랐다. 그때고 그랬고 그 이후에는 더더욱. 나는 타인의 애정에 익숙했던 오만방자한 시절이라  선배가 졸업한 이후로는 거의 잊어버렸는데 선배는 그렇지 않았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도 자기 나름대로 연락을 취해 왔다. 그러니까 아주 고전적 방법-자기네 학보를 편지와 함께 우리 학교 과 사무실로 보내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내가 입학한 대학교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렇게 해서 연락이 다시 닿기는 했는데 대학교에 간 이후로 나는 연애 중이라 이 선배한테는 대충 연락하고 잊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그때마다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해 온 이 사람.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건 이십 대 중반, 대학로의 어느 카페에서였다. 선배는 관련 학과를 나와서 승무원을 준비 중이었다(키가 크고 예뻤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반대한다고 고민 털어놓고는(하여간...-_-) 그 남자를 안 만날까 한다 뭐 이런 말을 하던 중에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반지를 빼서 나를 줬다(순금이었다!!!!!). 다시 만나고 싶다고, 어릴 때 그 마음이 그냥 그런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그 반지를 받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미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선배, 여기저기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나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꼭.

그렇게 스무 살, 대학생 때부터는 영화에 미친 나날을 보냈다. 역시 지금은 사라진 극장인데 종로의 코아아트홀에서는 대학생 모니터 요원을 선발해 운영했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 코아아트홀에서 상영할 신작 영화를 먼저 감상하고 모니터링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때 만난 영화들이 대박이었다. 홍상수도 왕가위도 테오 앙겔로풀로스도, 타르코프스키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도, 타란티노도 다 이곳에서 만났다. 심지어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도 이때 모니터요원으로 활동할 때 보았는데 이 영화는 페미니즘 공부한 이후에 다시 보니 진짜 페미니즘 영화의 정수이더라. 여러분? 페미니즘 공부하는 여러분? 이 영화를 보십시오. 웬만한 페미니즘 책 여러 권보다 페니미즘에 관해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코아아트홀-시네코아로 이어지는 대학생 모니터요원은 사실 1,2학년만 받아줬는데 나는 4학년 때까지 계속했다. 이 시절은 내 인생의 영화 황금기였다. 학교에서는 과내의 소모임으로 영화동아리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활동했다. 주로 술 마시고 영화 이야기하고 영화 공부하고, 구하기 어려운 영화들을 어찌어찌 구해서 강의실 하나 빌려놓고 영화 보고 또 술 마시고…. 국문학과 내에서도 국문학보다는 영화에 미친 애들이 모인 동아리였다고나 할까. 영화에 미친 자들 중에는 여자 선배들보다는 남자 선배들이 더 많았는데 (제길...-_-), 그들에게 지기 싫어서 더 미친 듯이 영화를 본 것 같다. 특히 후배 중에 한 녀석, 영화를 비롯해 록 음악 등 대중문화 전반에 특출난 놈이 있었는데 이 녀석한테는 더더욱 지기 싫어서 더 열심히 본 기억이 난다. 얘는 특히 공포영화 마니아였는데 내가 취약한 부분이 바로 이 장르란 말이지? 그래서 공포영화마저도 마구 섭렵하려고 애를 썼다(그래서 <이블데드>를 보게 된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녀석은 나중에 보니 그 특출난 재능을 살려 모 방송국의 대중문화 관련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활약 중이더라.
 
코아아트홀과 함께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던 영화관의 계보는 스폰지하우스, 동숭시네마텍(하이퍼텍나다), 씨네코드 선재, 필름포럼, 아트하우스 모모, 서울아트시네마로 이어진다. ‘동숭시네마텍(하이퍼텍나다), 씨네코드 선재’는 프랑스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했는데 이때가 나의 프랑스영화를 향한 열렬한 애정이 꽃을 피운 시기였다. 트뤼포의 그 많은 영화들….




헐... 조금만 더 보면 한국 영화 넘어설 판....



TV가 등장해 영화관이 텅 비게 되기 전에는 사람들이 매주 영화관에 가서 멋지게 걷는 법, 담배 피우는 법, 키스하는 법, 싸우는 법, 슬퍼하는 법을 배웠다(또는 배우려고 했다). 영화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에 대한 힌트도 주었다. 이를테면 비가 오지 않을 때도 레인코트를 입으면 멋져 보인다든가. 물론 영화를 보고 받아들인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더 큰 경험의 일부일 뿐이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얼굴과 삶에 빠져 자신을 잃는 경험. 무엇보다 강렬한 경험은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에 완전히 푹 빠지는 것,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이었다. 관객은 영화가 자신을 납치해주길 바랐다. (-수전 손택, <영화에 관하여>. p.13)



손택의 말처럼 나 또한 영화관에서 멋지게 걷는 법, 담배 피우는 법, 키스하는 법, 싸우는 법, 슬퍼하는 법을 배웠을까? 다른 건 모르겠지만 영화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얼굴과 삶에 빠져 자신을 잃는 경험” 때문에 “무엇보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에 완전히 푹 빠지는 것” 때문에 의도하지 않았어도 누군가를 매료시키기도 한다.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은 적어도 영화를 보는 나, 보고 싶은 영화는 꼭 가서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지지해줬다. <쥴 앤 짐> 때문에 사귀게 된 ‘동숭이’와 달리, 프랑스영화라면 죽을 만큼 괴로워해서(<아멜리에> 보고 나와서 싸움. 으아! 그래서 내가 이 영화는 아직까지도 싫어한다) 자기하고는 프랑스영화 보러 갈 생각, 하지도 말라던 사람도 있었는데(‘과메기’), 이 사람의 취향은 <해리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라서 내게 이런 영화의 지평을 열어준 사람으로도 기억한다. 그리고 사실은 그 덕분에 혼자서 오롯이 예술영화를 보러 다닐 수 있어서 더 좋았다.

X하고는 영화 취향은 잘 맞았다. 그래서 아트시네마나 씨네큐브, 미로스페이스, 심지어 한국영상자료원(영자원)을 찾아다니면서 알모도바르, 고다르, 브레송, 브뉘엘 등등의 영화를 함께 많이 본 기억. 그러고 보니 연애 초기에 이 사람이 당시로서는 구하기 어려운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을 구해서 CD로 구워주기도 했었구나. 그런데 너무 웃픈 게 이 인간 하고는 사랑 관련 영화를 같이 보면 늘 싸웠다는 것. 나를 만나기 전까진 누군가를 사귄 적이 없었던 사람이라 화려한 과거...(응?)의 내 연애가 너무 심기가 거슬려서 하........ 언제나 질투와 집착과 그렇게 촉발되는 싸움. 허진호 감독의 <행복>을 보고 온 날 대판 싸운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이날의 싸움은 자살소동으로까지 번져서.... 하......... 너무 힘들었다. X야, 지금은 누굴 만나든 그러지 않길 바라. 너도 이제 과거의 연인들이 있잖아. 그치? 

집사2하고 가까워진 계기는 테니스는 당연하고 책도 한몫했지만 영화도 빼놓을 수는 없다. 이 사람하고 처음 같이 본 영화는 의외로(응?)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다. 이건 내가 고른 것도 아니고 집사2가 고른 것도 아니다. 당시 테니스장에서 같이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영화 보러 가자고 말을 붙였는데 나는 당연히 보러 갈 생각이 없음에도 그냥 뭐 보실 건데요? 물었더니 요즘 <도둑들>이 재밌다나. 아.... 이 사람하고 이 영화를 보느니 집에 잔다... 싶은데 이 사람이 갑자기 00씨(집사2)도 보러 가기로 했어요! 한다. 이 말에 솔깃! 홀라당 넘어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급 태도 변화 “그럼 저도 갈게요!” 그래서 극장에 갔는데 영화를 보는 사람은 셋이잖아요? 저는 집사2 옆자리에 앉고 싶어서 머리를 굴려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맨 안쪽에 저 사람, 가운데 집사2 그리고 나. 이렇게 앉는 데 성공! 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는 그럭저럭 재밌었다.

영화를 본 후 셋이서 낮부터 치맥을 하는데 이 사람이 갑자기 극중 김혜수를 언급하며 ‘헤프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근데 이 표현이 너무 거슬리는 나. 참지 못하고는 그만 “그게 헤픈 건가요? 헤프다는 게 뭐예요? 똑같은 행동을 남자가 하면 괜찮고 여자가 하면 헤픈가요?” 따지듯 물었다. 이 사람은 급당황해서 말을 얼버무리고 있었고 얼마 후 먼저 일어났다....(내가 바라던 바 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알고 보니 집사2도 바라던 바였다고 엥?ㅋㅋㅋㅋ) 집사2도 이 사람이 가고 난 후 사실은 저도 그 헤프다는 발언 좀 싫었다고, 근데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좋았다고 ㅋㅋ 집사2는 이때 내가 좀 평범한 사람들하고 다른 사람인 거 같다고 느꼈다는데....(얘는 내가 책 선물해 줬을 때도 그러더니...) 아무튼 이날 집사2하고 새벽까지 술 마셨다.

집사2 하고는 씨네큐브, 아트시네마, 아트하우스 모모, 한국영상자료원 등에서 주로 영화를 본다. 언제였나, 혹여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인간적으로 씨네큐브, 아트시네마, 한국영상자료원에는 새로 만나는 사람 데려가지 말자..... 라고 서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아니 씨네큐브는 좀 어렵지 않냐? 했더니 그건 그렇네... 음 그럼 아트시네마, 한국영상자료원까진 좀 데려가지 말자, 콜! 한 적이 있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본 구절인데 빵 터진 적이 있다. <GV빌런 고태경>이라는 책의 한 구절로 시네필끼리 연애하다 헤어지면,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아트시네마 같은 예술영화관에서 마주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근데 진짜 내가 이거 경험했다는 거 아닙니까? X랑 헤어지고 얼마 안 된 때였다. 영상자료원에서 집사2와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헐 내 눈에 들어온 X, 물론 당연히 나는 못 본 척. 집사2도 보지 못했기를 바랐는데... 그날 술 마시던 중에 집사2가 묻더라. “아까, 거기 00씨 있었지?”(집사2와 X는 테니스장에서 만난 적이 있어서 서로 얼굴을 안다), “아.... 어....” “00씨도 우릴 봤을까?” “눈 나빠서 못 봤을 거야.” 또 마주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집사2의 바람은 이루어져서 그 이후 다시 마주친 적은 없다.


시네필리아란 단순한 영화 사랑이 아니라 찬란한 과거의 작품을 보고 또 보려는 광대한 욕망을 바탕으로 형성된, 영화에 특정한 취향을 지닌 애정이다. (…) 시네필리아가 죽는다면 영화는 죽는다··· 아무리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더라도, 심지어 좋은 영화가 계속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되살아나려면 새로운 종류의 영화 사랑이 태어나야만 한다. (p.22) 


집사2가 나를 만난 이후로 놀라움에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나보다 더 많이 본 사람은 내 주변에선 니가 처음이야!” “응, 그건 내가 너보다 7년 더 살아서 그래. 7년 더 살면 나만큼 보게 되지 않을까?” “글쎄... 그동안 너는 또 그만큼 더 보겠지!” “아.......” 하긴 요즘에도 내가 더 보긴 한다. 바쁜 집사2 두고 혼자 극장에 가기도 하고, 퇴근 후 같이 보려다가 집사2가 자긴 도저히 너무 피곤해서 집에 간다고 하면 그럼 나 혼자 보고 갈게! 하고 보고 집에서도 집사2가 피곤하다고 먼저 자러 들어가면 또 혼자 본다. 내 왓챠의 기록을 보면 내가 지금까지 영화를 본 시간만 3천300시간이라고 한다. 집사2는 궁금해 한다 그렇게 책을 많이 보는데 영화는 또 언제 그렇게 많이 봤느냐고. 나는 말한다. “학생 때 공부 안 하면 돼.” 

그런데 나를 깨갱, 겸허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수전 손택. 그는 틀림없이 나보다 더 많은 책들을 읽었을 텐데, 나보다 더 많은 영화를 봤다, 봤을 것이다. 심지어 벨라 타르의 <사탄탱고> 그 7시간짜리 영화를 무려 열여섯 번을 본 사람이며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는 평생 서른 번을 봤다고 자랑한다. 손택은 말한다. “<동경 이야기>에는 볼 때마다 가슴이 칼에 찔린 듯한 느낌이 드는 놀라운 순간이” 있노라고. 손택은 본 영화 또 보기를 즐겨한다. 헌데 나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도 본 영화를 또 보는 경우도 드물다. <동경 이야기>를 서른 번이나 봤다고? 그럴 만한 영화인가? 갸웃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오즈 야스지로는 일본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명감독이다. 그런데 나는 가끔 서양인들이 오즈에 열광하는 걸 보면서 일종의 오리엔탈리즘도 있지 않나 싶어진다. 오즈의 영화는 내가 보기엔 <동경 이야기>를 비롯해서 참 보수적이다. 이 보수적인 세계를 손택은 서른 번이나 봤다고?! 차라리 손택이 또 칭송한 나루세 미키오 쪽이 나는 더 좋다-이 책에서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을 언급해서 참 좋았다. 이 명작을 다들 몰라요. 손택이 말한 나루세의 <흐르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등등은 지금 보기에도 급진적인 면이 있다. 그에 비하면 오즈는 좀 갑갑하다.


저는 지금도 거의 날마다 영화를 보러 가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러면서 일도 많이 합니다. 제 나이쯤 되는 사람이 일주일에 다섯 번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건 젊고 혈기 넘칠 때 하는 일 아니냐고요. 하지만 어떤 열정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저는 영화에서 엄청난 즐거움을 얻습니다. 특히 여러 영화를 반복하여 보는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p.420)


나는 내가 시네필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시네필이라는 말을 들으면 도리어 간지러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책과 함께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손택처럼 일주일에 다섯 번 영화를 보러가지는 못하지만(손택은 분명히 직장인이 아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열정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그 말에는 지극히 공감한다. 그리고 내가 영원히 지속하는 열정의 대상으로 책과 영화가 내내 거기에 속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 공간들-씨네큐브, 아트시네마, 영상자료원 같은 지금도 여전히 특별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그 공간들이 이토록 OTT 서비스가 다양하게 넘쳐나고 이토록 수많은 숏츠 영상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오늘도 굳건히 버텨주기를 씨네키드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고 또 바라본다.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난 ‘모든 걸’ 바꿔 놓을 사람이나 예술 작품과 조우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던 수전 손택. 손택은 평생 그것을 찾아다닌 문화예술계의 굶주린 사냥꾼이었다. 그는 말한다. “질문하라. 이 사람이 뭔가 내게서 좋은 점을 끌어내는가? 아니면, 이 사람은 아름답고 선하고, 귀한가?”(수전 손택, <다시 태어나다>) 여기 ‘이 사람’이라는 구절에 나는 이런 것들을 대입해 본다. “질문하라. 이 책이 뭔가 내게서 좋은 점을 끌어내는가? 아니면, 이 책은 아름답고 선하고, 귀한가?” “질문하라. 이 영화가 뭔가 내게서 좋은 점을 끌어내는가? 아니면, 이 영화는 아름답고 선하고, 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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