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공허라면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날 나는 두 종류의 치욕을 경험했다. 선택받는 치욕과 계속 앉아 있는 치욕. 그래, 사제가 되리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26)
두 가지, 그러니까 선택받는 치욕과 계속 앉아 있는 치욕.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서도 안 되고. 하지만 계속 있어온 일. 이 주체성이 유별나다 싶게 태어난 별 위에 새겨진 인간일 경우 삶은 고달퍼지기 마련이다. 나혜석 언니가 순간 떠올랐다. 자존심 높게 세워봤자 네 신세만 고달퍼질 일이다, 라는 말을 누구누구한테 들었는지 헤아린 적 있다. 여왕이 되거나 걸인이 되거나 시체가 되기 마련이다. 애매하게 위치를 잡으면 애매하게 살아갈 확률은 그만큼 더 높아지는 거고. 계속 앉아 있다는 건 얼마나 심심하고 따분한 일인가. 세상은 드넓고 싸돌아다닐 곳은 이렇게나 많은데 만나야 할 이들도 많고 할 일은 더 많은데. 그냥 가만히 있어, 그럼 편하게 살 수 있잖아, 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 그럼 편하게 살 수 있어, 라고 하얀 날개를 단 내 분신이 날개를 부산스럽게 파닥거리면서 말했다. 가만히 있기 싫어, 편하게 산다는 건 어떤 건데? 대체? 라고 붉은 날개를 단 내 또다른 분신이 펄럭거리면서 말했다. 둘 다 꺼져,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라고 말하고 두 날개가 없는 걸 아쉬워하면서 미친듯 걸어다녔다. 그게 벌써 3년 전이다. 어쩌면 시간은 이토록 빨리 흐르는 걸까. 카산드라를 펼쳐서 아침에 운동을 하러 가기 전에 잠깐 읽었다가 마주한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선택을 하는 건 내가 되어야만 해. 선택을 받는 입장이라는 건 너무 끔찍해. 쥐죽은 듯 가만히 있어도 보았다. 그리고 남은 생의 나날들 햇수를 대충 헤아려보았다. 사십대 후반이니까 대략 마지막 숨을 헐떡거릴 날이 99세라고 칠 경우 남은 건 오십여 년. 헌데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한다고? 싫어. 단호하게 싫어, 라는 대답이 나올 줄은 나도 몰랐다. 이건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내가 봐온 타인들의 다양한 삶을 헤아릴 때부터였던 것도 같고 머리가 커지면서 찾아서 읽게 된 수많은 책들에서 봐온 문장들 때문일 수도 있고 만나서 함께 말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의 영향일 수도. 싫어, 나는. 엄마 승용차 안에서 그냥 살아, 라고 엄마가 말했을 때 싫어, 나는. 엄마처럼 안 살 거야, 라고 대답했다. 나는 내 딸에게 그냥 살아, 라고 말하지 않을 거야. 내 딸이 커서 성인이 되어 나는 엄마처럼 안 살 거야, 라고 말하는 걸 듣지 않을 거야. 나는 엄마처럼 살 거야, 라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게 될 거야. 덧붙여 말했다. 부들부들 떨면서 엄마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는 모습을 곁눈으로 바라보았다. 엄마가 생각하는 행복과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다르다고는 여기지 않아. 하지만 행복에는 다양한 무게가 있기 마련이고 나는 엄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행복이 이 경우 성립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더 이상 위선적으로 살지 않을 거야. 지겨워, 이렇게 사는 거. 지겨워서 미칠 거 같아. 이건 내 삶이 아니야. 내 인생이야.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해. 엄마한테 말한 건 엄마의 의견을 들으려고 한 거지 엄마 말대로 내가 살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난 더 이상 엄마 말을 잘 듣던 말이 적고 조용하고 착한 딸이 아니야. 그런 건 어릴 때부터 지겨웠어. 엄마의 착한 딸 노릇을 하면서도 지겨워, 이제 그만 하고 싶어, 이런 가면 놀이는. 그래, 그랬구나. 그래서 열넷 더 이상 난 엄마 말 듣기 싫어,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라고 했을 때 엄마한테 두들겨 맞았던 때가. 내 몸이야, 더 이상 때리지 마. 내 몸은 소중해. 라고 말했다. 엄마는 혈압이 올라가 뒷목을 부여잡고 당장 나가, 라고 소리 질렀고. 나는 정말 나가려 했었고 동생들은 내 사지를 붙잡고 울었다. 그날 밤에 엄마가 이제 우리 착한 수연이는 없어, 머리가 커버렸어. 말하니 아빠는 껄껄 웃으면서 고 얌전한 것이 대들기도 하고 정말 컸네, 커버렸어, 라고 말하는 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나는 클 거야. 쑥쑥 자랄 거야. 더 많이. 잠결에 그렇게 다짐했던 기억도. 아빠, 나는 더 클 거야. 그래서 내가 선택을 할 거야. 두 다리에서 힘이 풀려 더 이상 걸어다닐 수 없을 때까지 힘차게 걸어다닐 거야. 선택을 받는 것도 가만히 안온한 곳에 앉아 있는 것도 이제는 하지 않아. 하라는 대로 해, 그냥 있어, 좀 조용히 가만히 있어, 그럼 편해지잖아, 다른 여자들이 사는 것보다 더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고생길을 자처해, 라고 엄마가 거듭 당부할 때도 싫어, 더 이상 치욕스럽게 살지 않을 거야,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데 빛 속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연기하는 짓도 이제 지쳐. 더 이상 안 해. 빛 속에서 살 거야. 했다. 온실 안에서 가만히 자라. 주는 그대로 받아 먹고 주는 그대로 받아서 소중히 여기며 살면 돼. 엄마의 강한 보호 본능, 그리고 뒤이어 그 보호 본능이 계속 이어진다는 걸 알았다. 싫어,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라고 말했을 때 나는 네가 원하는 걸 주지 않을 거야, 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면서 그걸 주지 않겠다고 하는 건 무슨 뜻이지? 계속 생각했다. 네가 원하는 걸 줄 수는 없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걸 줄 수는 있어. 그럼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면서 살아가면 돼. 그게 네 운명이야.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이야기한다. 엄마고 아빠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도 애인들도 다. 아니 나는 내가 원하는 걸 받을 거야. 그걸 줄 수 없다면 그건 내게 필요 없는 거야. 그런데 왜 내게 그게 필요하다고 여기는 거지? 웃기는군, 한참 시니컬하게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나니 모든 것들이 환하게 보였다.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그 사람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사람이 왜 가만히 있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라고 했을 때 미친듯 소리를 지르면서 더 이상 그런 짓은 안 해, 불길이 내 살에 닿아 살갗을 지글지글 타오르는 느낌과 똑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부들부들 떨면서 다시는 당신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아, 왜 그랬는지 다 알겠네. 순한 얼굴 너머로 내 두 눈이 무엇을 다 볼 수 있는지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오히려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하면서 그냥 하라는 대로 해, 라고 할 때 내 뼈들이 덜그럭거리며 어떤 소리를 내는지 그 소리를 들을 길 없는 이들은 언제나 말한다. 하라는 대로 해, 그냥 가만히 있어, 그럼 편하게 해줄 테니까. 가만히 웃으면서 속으로 답한다. 너나 가만히 있어. 나는 나 하고싶은 대로 하고 살려고 이때까지 참고 살아왔어, 라고. 분노의 지점들은 언제나 한결같다. 언제나 거기였구나. 가르치려 하지 마. 너나 가만히 있어. 바로 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