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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노트










언니가 돈 벌면 은반지 말고 금반지 사줄게, 라고 속으로 소주잔 부딪치는 동안 그랬다. 언제 돈 벌지 모르겠지만 후후후. 훈이가 책 사진에 진심인지라 역시 데코에 신경씀. 오늘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아까 잠깐 탈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탈코하는 날은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나신으로 있을 때와 죽기 며칠 전, 그 동안뿐이겠다 싶은 감이 왔다. 인간은 끝없이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이 말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소설 속에서 한 말, 이라고 훈이 알려줬다. 이 말이 진리라는 걸 알 거 같았다. 눈 내리는 날 광화문 아웃백에서 뜻하지 않게 좋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작년 이즈음에도 광화문 아웃백에서 엄마와 딸아이와 식사를 하는 동안 눈이 내렸다는 게 기억났다. 고기는 질겼고 눈은 내렸고 하현설이 없어서 괴로웠던 기억이 났다. 오늘 아웃백에서 친구들과 딸아이와 식사를 하는 동안 끝없이 웃었고 곁에 누군가 없어서 괴로운가 하고 자문하니 그닥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아 아 더 이상 김씨도 내게는 그 존재감이 그닥 없구나 알았다. 김씨와 하현설과 전남편의 공통점을 나 혼자 헤아릴 때가 있다. 차이점도 뭐 다양하긴 하지만. 김씨는 자신을 이야기할 때, 나는 좀 답답한 사람_이라고 했는데 이제 그 세 남자를 한데 묶어 답답한 인간들, 카테고리에 넣기로 했다. 김씨와 전남편은 김씨와 전남편이란 호칭으로 명명하면서 하현설은 본명 그대로 쓰는 걸 보면 나란 인간도 참 단순무식하다 싶긴 한데 약속은 약속인지라 그의 이야기를 할 때는 반드시 본명을 써주기로 해서 그러기로. 한해 동안 두 남자를 마음에 품었던 걸 보면 나도 절개를 지키는 여자는 못되나 보다 알았다. 하현설과 김씨 이야기를 친구들과 하며 엄청 웃기도 웃었다. 쟝이의 말을 들으며 소주를 조금씩 입 안에 털어넣으면서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서로에게 하고 있는 말이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거로구나 우리가 가닿고 싶어하는 그곳이 있긴 있구나, 그런 생각을. 결국 그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도로 자신의 입 안으로 들어간다는 걸. 하여 그러하다면 앞으로 입조심을 꽤 하긴 하겠구나 싶으면서도 내가 할 말과 내가 할 사랑이 결국 내 욕망을 고스란히 보여주겠구나 이것도. 그리고 내가 하는 몸짓들에 모조리 다 나를 담기로 했다.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말랑하게. 합이란 건 맞춰가는 거다. 결국 내가 전남편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더 이상은 못 맞춰주겠다 너란 인간에게, 하여 그를 버린 거고 전남친들과도 뭐 비슷한 과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버렸던 게 아닌가 싶다. 만나는 동안 김씨가 언젠가 화를 버럭 내면서 왜 사람을 자꾸 고쳐쓰려고 하는 거냐고 한 적 있다.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는데 나는 그에 대한 마음이 커서 그에게 나를 맞춰가려고 애쓰고 애쓰고 애썼다. 그러다가 못해먹겠네, 시발, 하고 미친듯 화를 낸 적도 여럿이긴 하지만. 나는 너에게 맞춰가려고 애썼다, 그렇다면 너는 나에게 맞추려고 애를 쓰긴 했냐? 라고. 사람을 왜 고쳐써먹으려고 하냐고 그래서 고치지 않고 내가 바뀌려고 애를 쓰긴 썼다. 허나 이건 불가능하구나 라는 걸 알게 된 건 관계라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가는 것, 그러니까 합이라는 건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자신을 좀 내려놓을 줄 아는 것, 허나 그 관계가 상대방이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 인간은 인간에게 얼마나 야비하고 비열한가. 그러한 것들. 버리고 버림받고, 사람들 관계에서 이런 표현을 쓰는 걸 저어하긴 하는데 그 표현 방식은 직설적이면서도 적확하다. 더 이상은 합 맞추기 싫다, 그럼 이별이다. 이건 그대로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이 되는 거고. 오늘도 많이 배웠다. 내 스승들에게. 따라서 나는 이들에게, 이들은 나에게 서로 합을 맞춰가며 서로의 스승이 되어가는 거고. 지하철 타러 들어가기 전에 언니, 사랑해, 라는 말이 밤하늘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하는 말들이 다시 우리의 입 속으로 들어가 심장을 데피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너와 내가 존재하는 까닭 아닌가. 만일 사랑이라는 게 있어 그 속성들을 열거할 수 있다면 이것도 한 속성이겠다 싶은.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답답하고 속 터지는 사랑은 이제 하지 않는다. 김씨와 관계를 끝내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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