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1957년에 화자가 친구들과 이탈리아 시골 마을로 소풍을 가 오래된 고대 묘지를 둘러보는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몇 천 년 전에 살았던 고대인들의 가족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 준 안식처라는 점에서 화자는 그곳을 신성한 장소라고 느낀다. 그러나 곧 그는 우울한 감정에 잠기는데, 그것은 고향 페라라의 유대인 묘지 안에 있던 화려하고 거대한 핀치콘티니가의 묘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가문의 부를 일군 조상이 자손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만든 가족 묘지에는 화자가 알고 지내던 핀치콘티니가의 사람들 중 아들인 알베르토만이 1942년에 묻혔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은 1943년 독일로 강제 이송되어 그들의 죽음은 물론 무덤의 존재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이처럼 프롤로그에서부터 핀치콘티니가의 몰락과 죽음이 암시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소설이 암울한 역사, 즉 홀로코스트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소설은 그와는 조금 다른 지점을 이야기한다. 정말로 심각한 역사가 닥쳐오기 직전, 아직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일상이 유지되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어린 시절부터 페라라의 유대인 사회에서 귀족처럼 여겨지던 핀치콘티니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그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 그들의 부유함은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게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고, 대저택 안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폐쇄성 역시 거리감을 더했기 때문이다. 한 살 터울의 남매인 알베르토와 미콜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개인 교습을 받았고,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학교에 나오는 날이면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화자 역시 이들을 호기심과 동경이 뒤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핀치콘티니가의 저택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그 안에는 엄청나게 넓은 정원이 있었다. 온갖 나무들이 다 심어져 있는 마치 낙원 같은 공간이었다. 화자는 열세 살 때, 미콜의 권유로 담장을 넘어 그 정원에 들어갈 기회를 얻지만 끝내 넘지 못한다. 처음 시작부터 담장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닿지 못 하는 미콜과 화자의 상황은 앞으로 있을 관계에 대한 복선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서야 그는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에 들어가게 된다. 이번에는 알베르토의 초대였다. 1938년, 인종법이 시행되면서 유대인들이 사회에서 배제되기 시작하고, 테니스 클럽에서도 유대인들의 출입이 금지된다. 그러자 그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던 핀치콘티니가에서 유대인 청년들을 위해 정원의 테니스장을 개방한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화자는 마침내 그 낙원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화자는 정원의 테니스장을 방문하던 시절을 싱그러운 청춘의 한때로 기억한다. 테니스를 치고, 낙원 같은 정원을 산책하고,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날들 속에서 그는 열병 같은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간다. 그것은 예쁘고 똑똑한 미콜을 향한 감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원과 그 안의 세계 전체를 향한 사로잡힘이기도 했다. 바깥 세상에서는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었지만, 핀치콘티니가의 담장 안은 여전히 문학과 예술을 공부하고, 사상에 대해 논쟁하는 이상적인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시간들이 참 아름답게 묘사된다. 이루지 못 한 사랑은 청춘의 쓰라린 경험이라 그것대로 아름다웠다. 밤거리를 함께 헤매고 다니다가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동성 친구들의 우정은 또 얼마나 풋풋해보이던지.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시간이 곧 끝나버리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이야기는 청춘의 한 때, 실패한 첫사랑이나 질투와 동경이 혼합된 우정 같은 말랑말랑한 감정에 빠질 틈을 주지 않는다. 섬세하고 정밀하게 문장 곳곳에 콕콕 박아둔 비극의 조짐은 아름다운 묘사 속에서도 끊임없이 그 끝을 예감하게 만든다. 파괴되기 이전의 시간들을 붙잡아 보여주면서도, 그 시간들이 곧 사라질 것임을 알게 하기에, 살아 있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순간조차 이미 상실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울수록 슬퍼진달까...
홀로코스트를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사라져버린 삶과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결국 이 소설이 의도한 바는 파괴 그 자체가 아니라, 파괴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 세계에 대한 기억과 애도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