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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멀리서
  • 한낮의 불운
  • 베로니크 오발데
  • 15,300원 (10%850)
  • 2026-03-06
  • : 1,153

운이 좋은 편인가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면 처음에 가졌던 시선이 안쓰러운 쪽으로 급격하게 변할 테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이제 나는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선택할 안목이 조금 생겼다. 인생은 알 수 없고, 그래서 신비로우며 생을 살아가는 일은 대단하다. 그러니 대놓고 『한낮의 불운』이란 제목의 소설에도 크게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인 베로니크 오발데의 『한낮의 불운』은 그런 불운이 가득하다. 불운으로 치닫기 쉬운 기질은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는 「오귀스트 바라카가 겪은 낭패들」의 주인공 ‘오귀스트’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열여덟 번째 생일 전날 아버지가 죽었다. 사고는 때와 장소를 가리자 않고 방법도 가리지 않고 찾아오니까. 그렇다 해도 아버지가 죽었으면 어머니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우리의 주인공 오귀스트의 어머니는 진즉 그의 곁에 없었다. 당연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고 아들에게는 과일 바구니를 보냈다. 폭탄을 받은 기분이라는 오귀스트의 마음이 알 것 같다. 세상에는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세상에는 다양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 있으니.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그의 삶이 있었으니라.


아무튼 그래도 아버지가 남긴 유산과 어머니가 보내준 약간의 돈이 있었다. 사실 오귀스트의 불운은 차고 넘쳤는데 자잘한 것은 설명하기도 입 아프다. 가장 큰 불운을 꼽자면 음향 기사 국가고시를 낙방이었다. 근데 동명이인이 있어 합격이 바뀐 것으로 6개월이 걸려 정정되었다. 사소한 일상이나 연애의 불운은 오죽했겠는가. 이쯤 되면 내 인생은 왜 이런가 한탄하고 세상과 단절하고 싶을 수 있겠지만 오귀스트는 익숙해진 탓인지 인간에게 큰 기대를 하지고 실망을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소리에 매진할 준비가 되었고 스튜디오를 위한 건물을 보려고 부동산 중개인과 만났다. 오귀스트보다 연상이며 딸이 있는 그녀가 바로 ‘에바 코파’로 이 소설집의 중심에 있다. 여기까지만 하자. 딸을 부양해야 하는 에바는 어떻게든 이 계약을 성사시켜야 했고 오귀스트는 건물의 자세한 정보가 아닌 에바에게 이미 반해버렸으니. 그의 불운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상상해도 나쁘지 않다.


이제 「“당신은 성공으로 빛나고 있네요”」 속 주인공 에바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파리에서 운전면허 없이 지내는 에바는 지하철, 버스 파업에 퇴근길이 지옥이다. 낮에 지상층에 습기 많은 집을 보고 간 남자 때문에 슬프기도 했다. 맞다. 그 남자는 오귀스트다. 그러나 남의 슬픔을 봐 줄 여유가 없다. 원하지 않고 꿈꾸지 않았던 부동산 중개인으로 생활해야 한다. 이해할 수도 없고 무대에 올릴 수도 없는 희곡을 쓰는 전 남편이 양육비를 보내주지도 않으니까.





거기다 딸의 문제도 머리 아프다. 딸 ‘마르그리트’가 자신의 이름을 남자 이름 ‘보브’라고 불러달라고 하질 않나. 공부에 관심도 없으니. 그나마 딸이 요리를 좋아하고 재능을 보여 요리학교에 진학하고 대형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하게 됐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집에 들어오자 마주한 소식은 잘렸다는 딸의 이야기. 딸의 설명을 들으면 충분히 그럴만한 사정인데 매니저는 복귀시킬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속상해하는 에바에게 딸은 내가 알아서 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여 엄마를 위로한다. 그리고 에바는 딸을 믿는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에바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고 기대할 수 있는 운 인지도 모른다.

에바의 딸 마르그리트는 왜 이름을 보브로 바꾸고 싶었을까. 그 이유는 「자기에게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데 다른 독자를 위해 말을 삼가기로. 이처럼 『한낮의 불운』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연작 소설집이다. 여덟 편의 소설에서 모두가 주연이자 조연인 것이다. 마지막 「동네의 여왕」 속 ‘릴리’와 ‘조’를 보자면 특히 그렇다. 릴리와 조는 단짝 친구다. 예쁜 릴리는 모두가 좋아하고 추앙하는 소녀, 조는 그런 릴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그녀를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릴리이므로. 어느 날 동네를 촬영할 일이 생기고 영화감독이 오디션을 보기로 한다. 릴리와 조는 오디션에 참가하고 당연 릴리가 뽑힐 거라 생각하는데 결과는 릴리가 아닌 조였다. 그 일로 조와 릴리는 결별한다. 그 뒤로 사람 사귀는 일은 어려웠고 결혼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은 에바와 카페를 하며 동네의 여왕으로 살고 있다. 조 자신만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각각의 소설에서 죽음, 상실, 해고, 이별, 사기 등 굵직한 불운이 등장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소설 속 인물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건 아니다. 운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대단한 운이라고 저렇게 보면 별거 아닌 운에 불과하고. 그러니 운 만 쫓는다면 불행한 나날이 될 것이다. 운은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까. 좋다가도 나쁘고 나쁘다가도 좋은 것,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에바의 말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찾기를 반복하는 일 말이다.


살면서 잃는 것은 하나뿐인데 그 하나를 끊임없이 잃어가는 거지. 그게 뭐가 됐든. 어떤 느낌일 수도 있고 작은 기쁨이나 희망일 수도 있는 그것을 되찾고는 해. 그것의 메아리라도 되찾았다가 또다시 잃어버리기를 무한 반복하는 거야. (「“당신은 성공으로 빛나고 있네요”」,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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