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아프다. 심각하게 아프다. 오래 사용했으니 그럴만하다.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알면서도 결정은 쉽지 않다. 지금 이렇게 잘 쓰고 있지 않은가. 내가 필요한 것들은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으니. 고민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정작 써야 할 때 켜지지 않으면 곤란할 텐데, 알면서도 조금 미루기로 한다. 새로운 컴퓨터와의 만남을 미룬다.
다시 비가 온다. 폭염은 사라지지 않았고 습한 날들이 힘들다. 제법 선선해졌다고 생각한 것 오산이었다. 구름을 담았던 곳에서 비를 담았다. 비는 드러나지 않았고 나만이 비라는 걸 알 수 있다. 거기 비가 있다는 것, 그건 나만 아는 비밀처럼.


능숙한 여름은 없다. 어제 지난달 관리비 고지서를 확인하면서 전기 요금을 보고 놀랐다. 최고였다. 그만큼 이 여름이 더웠고, 그만큼 나는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라고.
어제는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추석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꿈에는 다른 친구가 나왔다. 모임을 하는 친구들과 다 같이 캠핑을 가자고 제안했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친구가 나오기도 했는데, 아마도 나는 그들이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이런 시가 눈에 밟힌다. 보름이 되면 나도 친구에게 달을 보라고 말해야지.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보름달 떴다고
나가서 보름달 보라고
남쪽 친구가 전화를 했다
전화기 들고 밖으로 나갔더니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 밤하늘
샛노란 밤의 눈동자
보름달 보이지?
그래, 보여!
그렇구나, 우리 눈빛이
지금 저 달에서 만나는 거로구나
폭풍 찌는 열대야 삼아
밤이 켜졌다, 밤이 켜졌다
(「밤이 켜졌다」, 전문)
밤이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이 도시에서는
밤이 부족하다
마음에게도 턱없이
저 키 큰 나무들
작은 모래알 한 알
새들 물고기에게도
밤하늘 저 높은 별들에게도
크고 많아아 할 것이 많지 않다
작고 적어야 할 것이 많지 않다
(「밤이 부족하다」, 전문)
너무 열심히 사느라 밤이 부족한 친구에게, 너무 바쁘게 사느라 밤인 줄도 모르고 지내는 친구에게.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밤이 내렸으면 한다. 밤이 내려와 밤을 느끼고 밤과 지내며 밤을 껴안고 고운 잠이 들기를. 수고한 이들에게 편안한 밤이 가득했으면 한다. 그 밤을 토닥여 줄 책을 고른다. 아, 읽고 싶은 책은 왜 이리 많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