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소설을 꽤 읽었다.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특별히 좋아하는 소설도 있다. 그런 이유로 짧은 소설 『꿈 목욕』을 읽었다. 짧은 소설이니 긴 이야기는 없다. 수록된 열네 편의 이야기는 대체로 꿈같다. 어떤 소설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 어떤 소설은 꿈이라 믿고 싶은 현실 이야기, 그 둘을 오가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작가가 실제로 꾼 꿈을 모티브로 한 표제작 「꿈 목욕」부터 꿈이 등장하는 소설이 많다. 어찌 보면 소설은 다 꿈같은 이야기는 아닐까.
나는 이 소설집에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기대한다는 게 우스운 말인지도 모른다. 어떤 책이든 읽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읽었다 해도 처음과 다르게 나중에 좋아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꿈 목욕』을 읽으면서 발터 벤야민의 『고독의 이야기들』가 생각났다. 김지연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그러니까 꿈을 꾸는 이는 작가 자신이고 이야기는 작가의 의식이 흐름은 그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 그러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아, 너무도 당연한 건가.
친구의 집을 찾아가다가 길을 잃고 만난 폭포에 정신을 잃고 폭포가 떨어져 생긴 샘으로 풍덩 뛰어든 「꿈 목욕」의 ‘나’는 물속을 떠다니며 죽은 친구도 만나고 사라진 친구도 만난다. 사라져가는 모든 것이 물속에 있었고 물을 펴내 찬찬히 들여다보니 밤마다 꾼 꿈들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꿈이란 잡을 수 없는 모든 것이며 반대로 꿈에서는 모든 존재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일까.
꿈에서는 그럴 수 있다 치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은 뭐라고 설명할까.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는 ‘솧희’를 위해 친구가 예약해 준 호텔에서의 시간을 들려주는 「맴맴」도 다르지 않다. 해변에 위치한 호텔은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곳으로 손님은 송희 혼자였다. 직원과 자신뿐인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송희는 직원이 감염병이 걸려서 격리를 해야 한다는 소식과 일주일간 호텔을 떠날 수 없다는 통보는 받는다. 관리인은 연락이 되지 않고 창밖으로 일정한 시간에 같은 옷의 남자와 개가 산책하는 걸 본다. 그러다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 어떤 히루에 갇혀 있다는 걸 자각한다.
어떤 하루에 갇혀 있다는 건 결국 반복되는 꿈을 꾸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렇다면 얼른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쓰고 면접에서 떨어진 송희는 꿈이든 시간이든 그곳에서 머물고 싶었다. 깨고 싶지 않은 달콤한 꿈을 꾸는 것처럼.

아직은 이 시간 언저리를 조금 더 맴돌고 싶었다. 물밀 듯이 쏟아져 내리는 시간에서 점점 떨어져 나와 멈춰 있고 싶었다. 유예일 수도, 모른 척 일 수도 있겠지만 그저 잠깐만 쉬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을 비워두고 내 기분만 살피면서. 그다음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때는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 나아가고 싶었다. (「맴맴」, 41쪽)
그런가 하면 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도 있다. 인류가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의 책을 만들지 않는, 종이책이 사라진 미래의 인간은 악어로 변해간다는 「나무 아래 악어」, 죽은 후 귀신이 되어 과거 연인을 따라 산책하는 「산책하는 귀신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영혼, 그러나 정작 과거 연인은 죽었는데 귀신끼리도 서로가 알아볼 수 없다는 걸 좀 슬프다.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설정이라면 어땠을까. 슬프거나 괴로울 때조차 눈물이 나지 않는 이들에게 비법을 알려준다는 ‘엉엉울음상담소’가 등장하는 이야기 「울음의 형식」. 3개월을 한꺼번에 결제하면 10퍼센트 디시를 해주겠다며 울음까지 상품이 되는 세상. 어쩌면 AI 시대에 이런 가능한 일일까.
『꿈 목욕』엔 허무맹랑한 꿈이라 치부하기엔 쓸쓸하고 외로운 이야기들. 꿈이 아니어도 진실을 알려는 노력보다는 그저 편한 대로 판단하고 받아들이려는 「사인」은 더 그랬다. 달동네 좁은 방에 살던 ‘복수’가 죽은 이유를 두고 자살이라 여기는 사람들. 왕래하는 가족이 없어 그렇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었다. 빚이 있어 이혼을 했고 떨어져 살았지만 아내 경호와 딸 미진과 자주 연락했고 만났다. 경호와 미진만이 그럴 리가 없다고 믿었다. 지방에 살고 있는 경호와 미진을 만나러 온 복수가 재벌 집 아들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며 나누는 대화를 기억하니까. 실제로도 그랬다. 그의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뒤늦은 발견이란 불운이 더해졌을 뿐이다.
“근데, 나는 그런 거 없어. 죽을 이유 같은 건 없어.”
단호히 말하는 복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미진은 생각했다. 인생은 장밋빛이 아니구나. 비단길도 꽃길도 아니고 가시밭길이구나. 마냥 행복하지도 않구나. 인생은 그런 것. 그러나 죽을 이유 같은 거 없고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사인」, 130쪽)
복수의 죽음이야말로 꿈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꿈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지독하고 현실이라면 좋을 황홀한 꿈은 금세 깨고 만다. 그럼에도 꿈꾸는 인생을 포기할 수 없다. 그조차도 포기하면 인생은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와 막막한 사막이나 마찬가지 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