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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멀리서
  • 달걀의 온기
  • 김혜진
  • 15,300원 (10%850)
  • 2026-04-08
  • : 10,685

저마다 사정이 있다. 그 사정을 듣고 헤아려줄 여유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어렵다. 내 사정에 더 급하니까. 나 살기도 급급하니까. 그래서 사건이 일어나야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제야 안타깝고 속상하고 미안하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누군가 대책을 세우겠지 생각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렇게 잊힌다. 어쩔 수 없다. 거들어봐야 좋은 소리도 못 듣고 오지랖이라는 책망만 돌아오니까. 관여하면 고소 고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쓰고 보니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그러나 자신 있게 나는 예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혜진의 『달걀의 온기』 엔 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갖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원하지 않지만 자꾸 말을 건다. 대단한 태도는 아니다. 그냥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거라 거절하거나 대놓고 무시하기도 어렵다.

「관종들」이란 제목에서 짐작하듯 소설 속 ‘정해’와 남편 ‘영기’는 주변 이웃에게 관심이 많다. 아파트 공용공간에 물건을 쌓아두는 이웃, 난간에 위험하게 놓인 화분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하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아파트 정자에서 계절감 없는 옷을 입고 혼자 있는 아이를 지나칠 수 없다. 부모가 의심스럽다. 결국 경찰에 신고한다. 아동학대가 의심되지만 경찰은 별일 아니라고 답한다. 아이의 부모는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건지 정해와 영기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그들이 원하는 건 사고가 발생하기 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함께 사는 세상, 그들의 행동은 정말 최소한의 것이었다.

최소한의 일. 그들은 자신들이 신경 쓰는 다른 문제들도 똑같이 대했다. 그건 선을 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관종들」, 29쪽)

「관종들」은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정해와 영기가 지나치다는 싶으면서도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실내 흡연을 하고 복도나 계단을 개인 공간인 양 사용하는 이들로 인한 고통이 경험한 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를 직접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걱정과 염려가 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정해와 영기처럼 쪽지를 받고 현관문에 불편한 메모를 발견해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까.

모임이나 공동체에 새로 들어온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다.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과 잘 지내기도 버겁기에 적당한 거리를 둔다. 언제부턴가 타인은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아내와 사별한 뒤 교회의 성경 모임에 나가게 된 「푸른색 루비콘」의 ‘나’도 그렇다. 아들의 걱정 때문에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여러 강좌를 수강하지만 길게 이어가지 못한다. 아내가 있을 때는 어렵지 않았던 일들을 혼자 마주하니 당혹스러웠다. 이 나이에 누군가를 알아가야 하나 싶고 뭔가 말할 준비가 돼 있어도 딱히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이도 없다. 그런데 한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온다. 입성이 별로인 남자의 부탁으로 양봉장에 데려다준다. 만날 때마다 그를 데려다주게 되는데 그와 보낸 시간이 묘하게 편하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의 공간에서 마주한 풍경이, 그가 내어준 꿀물이 오래 남는다. 모임의 마지막에 아무도 모르는 그의 이름을 자신이 기억하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 타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이처럼 별스럽지 않은 듯 보이지만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 아는 체하며 다가온 남자, 궁금하지 않았지만 실없이 건넨 말들, 그러니까 그는 곁을 내어준 것이다. 곁을 내어준다는 건 마음을 나눠준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루치의 말」의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의 이불 가게를 물려받는 ‘애실’의 고충을 들어주고 일상을 나눈 ‘현서’는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사기꾼만은 아니다. 처음 운영하는 가게의 어려움을 살갑게 들어주고 퇴근 후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가 계신 집이 아닌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 고마운 존재였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들을 꺼낼 수 있는 유일한 타인.


피해를 입은 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고소를 했지만 현서를 면회한 애실은 돈을 받아내겠다는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애실은 자신의 모든 말을 들어 준 현서가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현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접근했을지 모르지만 현서로 인해 애실은 자신의 상처나 실수를 말할 수 있었다. 부모의 이혼과 그로 인해 방치된 청소년기를 보낸 건 애실의 잘못이 아니라고 7년 만에 연락해 돈을 빌려 간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었다.




애실은 다 기억나지도 않는, 이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매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적응하는 일. 말들이 튀어나오거나 새어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한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일. (「하루치의 말」, 134쪽)

말이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가. 그저 호감일 뿐인데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주시한다. 그러니 어떤 말은 주저하고 어떤 말은 사라지고 상대의 말을 믿기도 어렵다. 남편과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나’가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의 부탁으로 그가 외국에서 사 온 빈티지 엽서를 읽어주는 「빈티지 엽서」, 아르바이트로 저명한 미술가의 전시실에서 관람객의 반응을 기록하며 표절 논란을 마주하는 「우연의 직조」,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가까운 이가 자신의 땅을 빼앗아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혼란스러운 아들의 이야기 「우리와 우리 아닌 것」의 말들은 그러하다. 진위를 구분할 수 없기에 힘들다. 섣불리 의견을 제시했다가 손해만 볼 수 있기에.

이처럼 김혜진은 관심이 병이 되고 선의의 마음조차 거부되어 돌아오는 시대에 최소한의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달걀의 온기」의 ‘선희’는 투자 사기를 당한 후 비어 있는 고향 집에 돌아온다. 요양원에 들어간 아버지가 돌아오실 것 같지 않아 그 집을 처분하기로 한다. 엿을 만들어 팔던 집안 내력 덕분에 ‘엿집’ 막내딸로 통했던 자신을 알아보는 어른들을 피해 다니지만 ‘민지’라는 어린아이와 자꾸 마주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조모에게 맡겨진 아이였다. 당찬 아이는 스스로 닭을 키우고 달걀을 팔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건넨 청란, 달걀을 안 좋아한다는 아버지가 그 아이의 달걀을 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희는 지갑을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가며 청란을, 그 청란이 품고 있는 온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왜 그것이 돌연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지, 왜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오는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달걀의 온기」, 233~234 쪽)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이제껏 자신의 불행을 아버지와 두 오빠 탓으로 돌리며 살아온 선희는 민지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여전하게 자신을 기억하고 보살펴준 손길을 생각한다. 한 알에 천 원인 청란이 하나도 비싸지 않다는걸. 표제작 「달걀의 온기」를 통해 우리는 실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온기와 다정함을 품은 말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최소한의 그것이 상처받은 우리를 어루만지고 살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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