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일들과 마주한다. 내가 원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게 삶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바로 수긍하고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다. 적응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안효원의 『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는 그런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기록은 일상이고, 기록은 삶이다. 그러니 이 책은 살아가는 이야기,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 란 제목에서 당신은 어디에 끌리는가? 아파본 사람은 아파서에 멈추고, 시골에 살거나 시골을 꿈꾸는 이들은 시골이란 단어가 그럴 것이다. 시골에 살기도 하고 튼튼하지도 않는 나는 읽기 전부터 조금 마음이 아렸다. 그렇다고 이 책이 투병기 혹은 회복기라는 착각은 하지 말길 바란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냥 사는 이야기. 웃고, 울고, 실수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시골 농부의 이야기다.
저자가 처음부터 귀농을 결정한 건 아니다. 수업이 끝난 토요일 버스를 기다리느니 2시간 걸어서 집에 오던 아이, 고등학교부터는 집을 떠나 자취를 하고 PD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국문과에 입학한 청년은 영화주간지의 기자가 되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소개하는 분야로 이직도 했다. 왕복 다섯 시간의 출근길이 무리였을까 몸이 신호를 보내왔고 수술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회복을 위해 고향 포천으로 돌아왔다. 충천을 위한 시간은 어느덧 토박이의 삶으로 변화했다. 우연한 계기로 초등학교 인턴 국어 교사를 시작했고 도시로 가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바람과는 다르게 저자의 선택은 결론적으로 귀농이었다.
농부의 딸이고 동생이기에 나는 농사를 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그래서 저자가 들려줄 농사 이야기가 시시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었다. 너무 재밌고 놀라웠다. 언제나 그렇듯 짐작은 경험이 아니니까. 초등학교 아이들과 수업을 하며 아버지를 도와 조금씩 농부가 되어가는 과정은 즐겁고 감동이었다. 저자에게는 힘겨운 과정이 더 많았을 수도 있겠지만.

농사는 힘겹다. 그냥 씨를 뿌리고 때 되면 수확하는 게 아니다. 하루하루 살피고 자연의 영향을 받고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적절한 비와 바람과 태양 같은 건 없다. 산에 심어놓은 더덕 넝쿨을 다 뜯어내고 옥수수를 뽑는 일은 귀여운 실수다. 아버지는 논에 제초제를 주는 일도 대충 주면 된다고 하지만 그 대충은 아버지만 알 수 있다. 그러니 적당히 논을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실패하고 실수하고 시간을 투자하면 보인다. 손을 놓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깨닫고 알게 된다.
오늘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일 한 시간 더 하고 망가진 거 고치면 그만이다. 고치면 논둑은 더욱 단단해진다. (69쪽)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그러하다. 어제와 똑같아서 지겨울 수도 있지만 어제와 똑같으니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살 수 있다.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시골이기에 도시에 가면 모든 게 맛있고 좋아 보인다. 일손이 부족해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친구와 친척의 도움을 받아 일을 하는 날은 신나고 즐거운 날도 기억된다. 혼자 사는 이웃 할머니께 아이들과 인사를 가면 과자가 수북이 반긴다. 작은 학교, 작은 동네에 보탬이 되고자 참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한 공동체의 10년 시간은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글쓰기가 된다.
저자의 하루를 상상한다. 매서운 추위로 가득한 겨울의 날들은 좋아하는 책과 둘러싸여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눈 내린 둔덕을 찾아 아이들과 눈썰매를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내 부천댁과 ‘밤나무 북스테이’ 공간을 위해 열심히 뭔가를 계획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아파서 시골에 왔지만 좋아서 시골에 살고 있다는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을지도.
어쩌면 우리는 기대하지 않았던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기대하는 삶을 위해 기대하지 않았던 삶을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어떤 이는 기대하지 않았던 삶에서 기대 이상의 것을 발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가야 할 삶은 알 수 없다. 미지의 날들이기에 희망을 꿈꾸기도 하고 반대로 불안을 버리지 못한다. 삶의 방향을 어디로 둘 것인지,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분명해질 것이다. 괜찮다는 위로와 함께.
봄이면 뒷산에서 상큼한 상아를 뜯어 먹고, 이제는 먹을 사람도 없어 동네 오디를 혼자 다 따 먹는다. 집 앞에 자라는 딸기는 작고 볼품없지만 제철 딸기의 향을 오롯이 품고 있어 좋다. 버드나무 꽃가루가 사방에 날리면 한상의 세계에 온 것 같고,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서산으로 지는 해를 보는 것도 좋다. (1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