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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멀리서
  • 소년 동주
  • 정도상
  • 15,300원 (10%850)
  • 2025-11-20
  • : 190


​윤동주의 시<별 헤는 밤>과 <서시>은 모두에게 익숙하다. 암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 구절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다. 나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해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나부터도 자세히 모른다. 부끄럽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게 맞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 서거 80주기를 맞은 올해 정도상의 소설로 만난 『소년 동주』를 만났던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소년 동주』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소설은 윤동주의 소년 시절을 조명한다. 저항 시인 윤동주가 아니라 무엇이 되고 싶은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부모님과 갈등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만난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암울한 분위기를 걷어낼 수 없지만 그 안에서 문학을 향한 윤동주의 열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정도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여고생 새봄이 꿈에서 윤동주를 만나 그와 함께 시간 여행을 하는 설정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청소년이 역사 속 인물 윤동주에게 접근하는 쉬운 방법을 제시한다고 할까. 실은 나 역시도 이런 과정이 흥미로웠다. 영화나 언론을 통해 볼 수 없었던 중학생 윤동주의 일과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도 빼놓을 수 없다. 윤동주의 곁에는 언제나 송몽규와 문익환이 있었다. 셋은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응원하는 사이였다.

소설에서 만난 동주의 모습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좋아하고 달리기를 하는 평범한 중학생의 모습이었다. 바느질 솜씨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건 동요였다. 동요를 분석하고 동시를 쓰던 시간이 미래 시인 동주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섬세한 감수성과 예술적 기질을 지닌 동주와 달리 몽규는 현실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동주와 대립한다.


동주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몽규의 문학적 재능이 부러웠다. 하지만 몽규에겐 독립군이라는 확실한 꿈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실행할 용기도 있었다. 만주의 군관학교로 떠나 학생 훈련소에서 생활한다. 부모의 응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익환도 다르지 않았다. 익환은 평양 숭실학교로 편입했다. 동주도 평양으로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반대했다. 아들이 어려운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동주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익환이 있는 평양에 도착한 동주는 숭실학교의 규모에 놀랐다. 편입 시험 결과도 좋지 않았다. 4학년 편입에 실패하고 3학년 입학증을 받았다. 아버지께 4학년 편입 합격증을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동주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의 기대와 자식의 희망은 늘 같은 게 아닌 것 같다. 숭실학교에서 동주는 학생회의 잡지를 만들며 문학을 배우고 더 깊게 빠져들었다. 그 시간 몽규도 군관학교에서 잡지 <신민>을 만들고 있었으니 둘의 운명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평양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숭실학교가 신사참배를 반대하자 총독부는 교장을 해임하고 교정에는 사복형사의 감시가 심해졌다. 학생들이 시위를 하자 사복형사들은 학생회 간부를 체포하고 학교는 휴교를 결정했다. 동주와 익환은 자퇴를 하고 집을 돌아온다. 얼마 후 문학 대신 총을 들고자 했던 몽규도 돌아온다. 동주의 앞에 다시 힘든 시간이 놓였다. 연희전문 문과에 가려는 동주를 아버지는 문학이 밥 먹여주냐며 의과에 가서 의사가 되라고 한다. 문학을 하고자 하는 동주의 굳은 의지는 단호했다. 지금 시대에 문학이 동주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아는 아버지의 가슴은 미어지는 고통이었다.

하고 싶은 일, 스스로 가장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일, 오래 꿈꾸던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삶’이라고 동주는 생각했다. 물론 때로는 고통과 희생이 따를 수도 있다. 고통과 희생이 두려워 꿈을 포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못 사는 삶’이 아닌가. (317쪽)

생활의 협박을 견디면서 생활 속에서 시대를 읽고, 순수를 읽고, 작고 사소한 몸짓과 슬픔에 감동하면서 시를 써야만 한다. 그것이 시인의 운명이다. (326쪽)


시인의 운명을 직감한 동주. 『소년 동주』를 통해 윤동주를 만나고 나니 그의 시가 어떤 고통을 안고 태어났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동요를 분석하고 동시를 쓰던 소년 동주가 자신의 시를 쓰기 위해 시집이란 시집은 모두 꺼내 읽고 시상을 찾기 위해 애쓰는 마음. 어느 시 하나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또한 책을 통해 동주, 익환, 몽규의 아름다운 우정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로 꿈을 찾아 방황하고 길을 헤매는 청소년에게 든든한 응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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