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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멀리서
  • 소란한 속삭임
  • 예소연
  • 11,700원 (10%650)
  • 2025-02-26
  • : 6,159


어떤 이는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큰 소리로 외친다. 정작 그 소리는 소음으로 분류되고 만다. 어떤 이는 상대가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아 침묵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해야 할 말이 있는데 듣는 이가 사라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 예소연의 『소란한 속삭임』은 말한다. 그럴 때 속삭여보라고 말이다. 그런데 소란한 속삭임은 가능한가?


소설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시작된다. 퇴근길 지하철,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피곤하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 동영상을 큰 소리로 시청하는 사람이 있다. 시끄러운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분란을 일으킬까 염려되고 잠깐 피하면 그만이니까. 그때 ‘시내’가 시끄럽다고 말하며 ‘모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모아는 주저하다 너무 시끄럽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시내는 모아에게 속삭이는 모임을 제안한다.


“비밀을 속삭이진 않으나 그것이 마치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속삭여야 해요.” (16쪽)

“중요하지 않아도 속삭임으로써 중요해져요.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허투루 하는 말은 없는 거죠.” (18쪽)


이상하게 시내의 말처럼 별거 아닌 일상을 속삭이니 비밀을 공유한 기분이다. 정말 시내의 말처럼 속삭임으로 중요해진 것이다. 속삭이는 모임은 결성되었고 둘은 가장 시끄러운 명동에서 다른 회원을 찾기로 한다. 시끄러운 곳에서 속삭이는 모임은 회원을 찾을 수 있을까. 둘은 그곳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심판의 날’을 외치는 ‘수자’를 만난다. 수자는 가입 조건으로 시끄럽게 구는 훈련도 번갈아 하자고 조건을 건다. 그래서 셋은 속삭이며 말하고 수자와 함께 시끄러운 소리도 내는 모임을 하게 된다. 그러다 시내의 집에 초대받게 되는 그곳에서 ‘두리’를 만난다.





시내의 아파트 위층에 사는 두리는 시내가 층간 소음으로 찾아온다고 말하며 자신은 소음을 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수자와 모아가 시내의 집에서 확인하기로 하는데 두리는 지저분하다면서 방문을 주저한다. 시내의 집은 온통 쓰레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두리의 말대로 시내가 듣는 층간 소음은 그곳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두리의 집을 치우고 넷은 저마다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숨겨왔던 마음을 꺼내 보이니 그간의 행동을 알 것 같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심판의 날’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속삭이는 일로, 세상과 단절하며 쓰레기와 살아가는 일은 슬픔을 달래는 각자의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어디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모르고 용기 내 도와달라고 말했지만 거절당해서.


이 매력적인 소설은 우리 시대 면면을 보여준다. 진실인 양 거짓을 외치는 동영상, 진실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믿게 되는 습관, 수많은 소음에 갇혀 듣지 못하는 간절함, 하루하루 살기 버거워 타인의 아픔은 들여다볼 생각조차 못 하는 일상.


어떤 면에서 뻔하다. 세대가 다른 인물의 상처와 그것을 보듬는 몸짓,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공감과 관계가 시작됨으로 연대하고 위로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특별하다. 소란할 수밖에 없는지 관심을 갖고 들어주면 그것은 더 이상 소란이 되지 않고 혼자만의 속삭임이 둘, 셋으로 이어져 아름다운 소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소란’과 ‘속삭임’처럼 양립하기 어려운 단어의 조합으로 가득한 게 우리 세상이며 둘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는 일은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외면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함께 살아가는 일은 중요하다고. 누군가 살리기 위한 속삭임이 필요하다고.


어쩌면 시내는 자신이 살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이 모임을 만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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