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 그저 작은 실수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을 잃게 하고 남은 생을 슬픔에 빠져 살게 하는 것. 의도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 순간으로 삶은 멈춘다.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살아간다. 실종된 어린 소녀 ‘시시 래들리’를 찾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나의 작은 무법자』에서 만난 이들이 그러하다.
실종된 소녀는 죽음으로 돌아온다. 누가 이런 잔혹한 짓을 했을까. 소녀를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을 기대했지만 그건 아니다. 범인은 공개되고 그는 감옥에 있고 소설은 30년 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은 소녀의 조카로 스스로를 무법자라 말하는 소녀 ‘더치스’와 소녀가 돌보는 남동생 ‘로빈’, 남매를 지키는 경찰서장 ‘워크’의 일상이다. 위크는 더치스의 엄마 ‘스타’와 범인 ‘빈센트 킹’의 친구로 30년 전 사건의 목격자다. 형제 같았던 친구를 신고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 일로 평생 그 사건에 갇혀 산다. 그리고 형량을 마친 빈센트 킹이 마을로 돌아온다.
술과 약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엄마 스타와 어린 동생 로빈을 지키는 무법자 더치스는 이제 빈센트도 주시해야 한다. 엄마 곁을 맴도는 수많은 남자들과는 다르다. 이모를 죽이고 래들리 집안을 망가트린 장본인이니까. 그래서 더치스는 자신을 돌볼 수 없다. 로빈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애쓰고 흔들리는 엄마를 붙잡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워크는 그런 더치스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열세 살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삶이라는 걸 알기에. 더치스의 주변을 살피고 도움을 준다. 그 사건으로 인해 워크의 삶도 멈춰지만 중요하지 않다. 친구인 스타와 그녀의 아이들과 빈센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중요할 뿐이다.
돌아온 빈센트는 마을을 떠날 생각이 없다. 부동산 업자가 집을 팔라고 거액을 제시했지만 낡은 집을 수리할 뿐이다. 빈센트가 시시를 죽인 건 사고였다. 어쩔 수 없는 실수로 시시 가족은 물로 모두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가해자가 맞지만 한 편으로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나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더치스의 엄마가 총에 맞았고 현장에 있던 빈센트는 범인이 되었다. 더치스와 로빈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정말 빈센트는 범인일까. 과거 연인이었던 스타를 죽였을까. 소문처럼 그녀가 여러 남자를 만나는 걸 질투하고 복수해서 그랬을까. 무법자 더치스는 로빈을 지켜낼 수 있을까. 소설은 점점 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삶으로 우리를 이끈다. 빈센트는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문다. ‘마사’가 자신을 변호해 주기를 바란다. 마사는 스타의 절친이고 워크의 여자친구였다. 워크와 헤어진 후 마을을 떠나 변호사가 되었다. 빈센트는 왜 마사를 지목한 것일까. 이 일을 계기로 다시 만난 워크와 마사는 빈센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증거를 살피고 사건 당일을 재구성한다.

어린 남매는 외할아버지 ‘핼’의 농장에서 생활한다. 더치스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 외할아버지에게 방어적이고 공격적이다. 당연하다. 이모 시시를 잃었지만 엄마인 스타를 방치했으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손주인 남매까지 모른척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핼은 엄마를 잃은 남매를 자신의 방식대로 돌본다. 농장 일을 알려주고 교회에 데리고 가고 더치스에게 운전을 가르친다. 더치스와 로빈은 그 시간에 스며들고 농장의 삶에서 웃음을 찾고 행복을 느낀다. 마침내 찾아온 남매의 평온은 곧 사라진다. 핼이 다크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다크는 스타의 주변을 맴돌던 남자로 그가 운영하는 클럽에 더치스가 불을 내고 가져간 보안 테이프를 찾으러 먼 농장까지 온 것이다.
유일한 보호자였던 핼의 죽음으로 남매는 위탁가정에서 입양을 기다린다.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부부를 만났지만 더치스의 나쁜 행동으로 무산되고 둘은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엄마를 죽인 빈센트가 석방되는 방송을 보기 되고 더치스는 로빈을 두고 떠난다. 자신이 없으면 로빈은 원하는 곳으로 입양될 수 있으므로. 빈센트를 만나기 위해 그를 죽이기 위해. 긴 여정의 끝에서 만난 빈센트는 스스로 생을 마친다. 그리고 밝혀진 진실은 모두를 울게 만든다.
더치스가 핼의 이웃인 돌리와 나누는 대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사람, 나와 같은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게 생인지도 모른다. 어린 더치스의 바람처럼 처음으로 돌아가 숨 쉬기부터 할 수 있다면 괜찮을까. 아닐 것이다. 어떤 기억은 평생 우리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니까. 숨 쉬기 이후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니까.
“우리는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될지 고를 수 없는 건지도 몰라. 어쩌면 그건 미리 정해진 건지도 몰라. 어떤 사람은 우리처럼 무법자야.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서로를 찾아내는 건지도 몰라.” (488쪽)
“끝맺음이요. 난 다 잊어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숨 쉬기부터 다시 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488쪽)
『나의 작은 무법자』는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일들로 채워진 생의 비밀을 발견하는 아름답고 놀라운 미스터리 소설이다. 돌이길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나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온통 절망뿐인 삶이 단 한 사람의 사랑과 볼살 핌으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다시 숨을 쉬고 그 이후를 채울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빈센트를 놓지 않고 그와 그가 사랑한 스타와 그녀의 아이들을 돌보는 워크, 서툴지만 더치스와 로빈에게 애정을 쏟는 핼, 평생 스타를 사랑한 빈센트를 통해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확인한다. 고통의 삶을 견딜 수 있는 건, 불행의 연속인 삶에서 나가갈 수 있게 하는 건 사랑이라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