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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멀리서
  • 미로 속 아이
  • 기욤 뮈소
  • 16,650원 (10%920)
  • 2024-12-17
  • : 32,375


한 여자가 요트에서 습격당한 채 발견된다. 숨을 거둔 상태는 아니지만 희망도 없다. 범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사건 현장에서 지문이 발견되었지만 해결 실마리는 아니다. 원한에 의한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잔혹한 짓을 벌인 것일까? 언론은 모두 이 사건에 주목하고 연일 기사를 쏟아낸다. 사건의 피해자는 이탈리아의 유명 기업가인 아버지의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상속녀다. 종군기자로 활동했고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뿐인가.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 남편과 두 아이의 엄마로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가던 중이다.


상속녀는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사망한다. 맨 처음 용의자로 의심받을 이는 누구인가? 맞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사람. 바로 남편이다. 하지만 알리바이가 명확하니 제외된다. 경찰청 강력반은 범인을 잡기 위해 다각도로 애를 쓰지만 1년이 지나도록 제자리다. 놀랍게도 1년이 지난 후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살해도구가 있는 장소를 안다는 제보를 받는다. 그곳은 피해자의 저택에 딸린 지하 보트 창고였다. 지문을 감식한 결과 남편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사건 당시 없었던 지문이 왜 이제야? 소설을 읽을 때는 들지 않았던 의문이 이제야 생긴다. 누군가 남편에게 누명을 씌우는 게 아닐까. 아니면 이 모든 게 남편의 치밀한 계획일까. 아내가 죽으면 그 많은 유산이 모두 자신의 몫이니까.


이제 사건을 지휘하고 풀어갈 경찰이 등장할 타이밍이다. 용의자 남편을 상대할 경찰 팀장은 중년의 여성이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상태지만 전 남편의 SNS를 훔쳐본다. 아이는 필요 없다던 남편이 원 아이를 낳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다. 마음을 다잡고 남편을 취조한다. 팀장은 자신의 일과 가정에 충실한 남편의 진술이 거짓이 없음을 알고 당황한다. 하지만 증거를 보면 범인은 남편이어야 한다. 거기다 남편에게 피해자 말고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남편은 모른다는 주장으로 일관한다. 남편의 연인이란 여자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누구일까?


작가는 네 명의 등장인물을 화자로 내세워 하나의 사건을 다양하게 풀어낸다. 네 명의 화자 중 하나인 상속녀가 요트에서 피습을 당하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이야기가 소설의 핵심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엄마를 잃고 오랜 시간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았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진료를 받았다. 사고가 남긴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뇌종양 4기 판정을 받는다. 어떤 치료도 불가한 상태로 남은 시간은 겨우 2달 정도다. 그녀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남은 시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사실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상속녀를 중심으로 등장인물 각각의 거침없는 욕망을 흥미롭게 펼쳐진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나 짜임새 있는 구성은 나쁘지 않다. 끝까지 다 읽어야만 제목인 『미로 속 아이』 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리게 되니까. 나 같은 독자는 그렇다. 그런 이유로 기욤 뮈소의 데뷔 20주년 기념작으로 대대적인 홍보에 비하면 아쉽다. 기욤 뮈소의 열열한 팬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인생은 뭘까 생각하게 된다. 영원을 약속했지만 배신과 증오만 남는 사랑.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 때문에 괴로운가. 인생은 알 수 없다는 허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니 과거에 미련을 두지 말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생각하는 지금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더한다.


비극적인 사건들은 지하나 바닷물 속을 흐르는 자연 발생 전류처럼 우리의 실존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사는 곳에는 항상 위험한 일들이 도사리고 있어 아무리 조심해도 모든 사고를 예방할 수는 없다. 그저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기도하고 바라는 수밖에 없다. 물 위에 떠다니는 한 줌의 지푸라기처럼.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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