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다른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 외계인이나 미확인 우주 물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귀신 혹은 영혼이라고 하면 맞을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괴담을 넘어 기이하고 신비한 일이 일어나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다만 그들을 모른 척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니 여기 판타지를 넘어 호러와 공포 미스터리의 합체라 할 수 있는 『너머의 세계』는 낯설게 다가온다.
우선 책의 형식과 구성이 독특하다. 표지만 봐도 기묘하지 않은가. 그 수상함은 삽화로 더욱 증폭된다. 수년 전 웹에서 인기 있던 시리즈를 연재했던 작가 유린을 아는 이라면 반갑고 기대가 클 책이다. 단순한 공포 소설이 아닌 나폴리탄 괴담(출처를 알 수 없고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을 취재한 결과물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전단지, 인터뷰, 일기, 녹취록 같은 증거들을 모아 사건을 상상하게 만든다. 목차도 침투, 사냥, 잠식으로 의심스럽다.
괴담이 발생하는 장소는 우리에 익숙하고 친근한 공간이다. 매일 등교하는 학교, 아파트, 극장, 서점, 놀이공원 같은 일상 공간에서 괴담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아파트 복도의 표식, 안내문, 꼼꼼하게 읽지 않는 사용 설명서, 사실은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무섭다.
산장에서 사라진 손님,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자리를 이탈한 후 돌아오지 않은 학생, 영화관 B동 근무자가 긴급 호출 시 마주한 이상한 형체, A동의 이상한 소문, 한옥마을에서 반인반귀(半人半鬼)상태로 인간을 잡는 사냥하는 귀잡기 놀이, 입주민 봄 소풍에서 사라진 세대, 모든 게 의심스럽지만 사건의 정황이나 증거도 찾기 어렵다.
6층 8관에 대해 떠도는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직원 여러분은 고객들에게 사실을 안내하시기 바랍니다. 상영관 내에서는 사망자 또는 실종자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바닥 청결 상태를 점검하다 D11 좌석에서 물기 어린 발자국을 발견했다면 매점으로 가십시오. 매점에서 사탕을 받아 놓아둔다면 발자국은 사라질 것입니다. (54쪽, 「영화관 근무자를 위한 업무 매뉴얼」)
공식적인 관리자가 아닌 다른 이가 배포한 유인물, 존재하지 않는 호수,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존재, 무엇을 믿어야 할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만약 그 공간에 내가 있다면 어떨까. 아니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상한 산장 안내문을 발견했거나 특별한 서점에 방문했거나 새벽에 자꾸 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당장 그 공간을 벗어나는 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공포가 스며든 몸은 통제 불가한 상태가 될 테니까.
세 번째 안내입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 아파트 복도나 중앙 현관에서 물웅덩이를 밟는 듯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도 절대 다가가거나 직접 확인하려 하지 마십시오. 만일 우연히 그곳을 지난다 해도 절대 쳐다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아이 컨텍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 (131쪽, 「그 아파트의 축제」)
○○아파트에서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도대체 무엇이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을까요? 취재 팀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계속 취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길 바라며 오늘의 뉴스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63쪽, 「그 아파트의 축제」)
읽는 내내 불안과 긴장감이 더해지는 책이다. 뭔가 책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공포물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미 나폴리탄 괴담을 즐기는 이라면 흠뻑 빠져들 책이다. 길고 지독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의 입구가 아닌 더위의 한복판에서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책이다. 추리 스릴러의 계절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살짝 팁을 공개하자면 눈치가 빠른 이는 책 속의 모든 괴담이 연결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