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높은 꼭대기를 좋아하는 건 아래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 아래에 내가 두고 온 비참한 것들과 이별하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는 일도 지우고 싶은 과거에서 달아나고 싶은 욕망 때문은 아닐까. 우신영의 『시티 뷰』는 그런 욕망이 쌓아 올린 곳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헛헛한 마음이 느껴진다. 욕망을 따라 높이 올라갔는에 왜 허무할까. 추락할까 두려운 마음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영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살고 싶은 도시, 그게 이 도시의 다른 이름이다. 바다를 메워 만든 이 도시에는 없는 것이 많다. (9쪽)
신도시를 소개하는 소설의 첫 문장은 송도 국제도시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나와는 상관없지만 방송에 자주 등장해 익숙한 송도의 풍경이 겹쳐졌다. 소설은 뭐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신도시 삶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 어디서든 삶은 마찬가지라고 말하듯. 재력과 명예를 두루 갖춘 부모와 의사 남편, 자신의 필라테스 학원을 운영하는 수미도 그랬다. 모두가 부러워할 삶이었지만 그만큼 노력했다. 자기 관리를 넘은 다이어트와 운동은 그녀를 젊음이 아닌 늙음으로 인도했다. 그래서 남편이 아닌 어린 주니와의 만남을 끊을 수 없었다. 수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었으니까. 남편, 아이는 필요한 액세서리 같은 것이었다.
수미는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어떤 쾌락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인생 어차피 자기 팔 자기가 흔들며 사는 거지. 이런 내가 그에게 피해를 주나. 아니, 이익을 주지. 사소한 부도덕은 상냥한 부인이 되게 해주니까. 그렇지 않은가. 모두에겐 풀 곳이 필요하다. 풀고 와서 우아하게 처신할 곳도 필요하다. 필연적으로 두 개의 장소와 두 개의 자아가 필요하다. (42쪽)
그에 비해 가난한 의대생이었던 남편 석진은 덕적도에서 칼국숫집을 하는 아버지와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있다. 수미와 결혼해 곧 개원의가 된다. 석진의 욕망은 사소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니었다. 성공한 삶, 석진 역시 높은 곳을 갈망했다. 등산을 하고 가짜 암벽을 타고 클라이밍 취미의 내면엔 꼭대기에 오르겠다는 욕망이 있었다. 방식만 달랐을 뿐 수미와 석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미가 젊은 육체의 헬스 트레이너와 관계를 맺듯 석진도 면도날을 먹는 조선족 노동자 유화에게 끌렸다. 유화에게 석진은 저 밑 맨바닥에 자리 잡은 어머니를 보았다. 몸이 전부였던, 몸으로 모든 걸 받아내고 감당해야 하는 삶. 그런 몸에 내시경을 넣어 돈을 버는 석진.
칼을 먹는 유화가 섭식장애일까, 남의 시선을 먹는 수미가 섭식장애일까. (229쪽)
수미와 석진이 신도시의 중심이라면 주니와 유화는 변두리에 속한다. 수미와 석진에게 몸은 치장하고 관리하는 것이지만 주니와 유화에게는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소모하는 것이었다. 높은 빌딩을 닦다 추락한 유화의 남자친구. 그들의 몸은 아름다움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노동을 위한 몸이었다. 석진에게 화장한 얼굴만 보였던 수미가 주니에게 맨 얼굴을 보이고 수미의 취향에 맞추던 석진이 유화 앞에서는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 작가는 서로 대치되는 육체와 욕망을 적절하게 치밀하게 다뤄 잘 짜인 소설로 완성시켰다.
인간의 욕망을 위해 하찮게 버려지는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 하나의 꼭대기 아래 차곡차곡 깔린 수많은 아래. 하나를 위해 나머지 전부는 사라지는 세상. 거대한 도시의 실체를 모른 채 그곳을 향한 욕망은 타오르는 불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 같은 게 아닐는지. 그런 의미에서 유화의 질문은 이 소설의 상징처럼 들린다.
“이 도시는 불길해요. 바다를 메꿔서 육지로 만들었다죠? 얼마나 많은 것들이 죽었을까요?” (204쪽)
인간은 욕망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그 욕망은 만족이 있을까. 높은 꼭대기에서 위태롭게 흔들릴 욕망의 끝은 모른 채 인간은 욕망의 끝을 향해 오른다. 추락할 것을 안다면 적절한 높이에서 멈춰야 마땅하다. 어리석은 인간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꼭대기를 향해 오르고 오른다.
소설을 한 마디로 요약하지만 정말 재밌는 소설이다. 술술 읽힌다. 잡은 순간 끝까지 달리게 만든다. 그러나 재미와 만족은 별개다.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본 것 같은 기분을 감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