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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멀리서
  • 푸른 들판을 걷다
  • 클레어 키건
  • 15,120원 (10%840)
  • 2024-08-21
  • : 44,135

가끔 궁금하다. 돌아가신 엄마는 아버지와 결혼해서 행복했을까. 행복이 뭔지도 몰랐을 엄마에게 기쁨은 무엇이었을지 말이다.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 살았지만 기억 속 어디에도 엄마에게 다정함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나의 아버지. 그러나 막내딸인 내게는 다정했던 아버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고모가 들려준 말은 내가 모르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업고 집을 나갔지만 곧 돌아왔다는 엄마. 등에 업힌 아이는 누구였을까. 나는 아니었을 것이다.


가끔 궁금하다. 큰언니는 왜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후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가 결혼은 천천히 해도 된다며 반대를 했다고 하는데 진짜일까. 나는 왜 한 번도 언니에게 남자친구에 대해 묻지 않았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큰언니의 든든한 돌봄을 받았지만 큰언니의 외로움이나 상처는 알지 못했다. 오히려 내게 했던 아픈 말들을 곱씹기만 했다. 엄마와 큰언니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이며 의미였을까.


클레어 키건의 단편집 『푸른 들판을 걷다』를 읽으면서 아이를 업고 집 앞에서 서성였을 젊은 엄마의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정작 나는 알지 못할 슬픔으로 가득 찼을 얼굴. 속상한 마음을 터놓을 이가 없었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엄마는 어디로 가고 싶었을까. 정해진 곳이 있었다면 엄마는 떠날 수 있었을까. 그곳이 어디든 그냥 떠나도 괜찮다고 나는 말해주고 싶다. 손을 내밀어 젊은 엄마를 데리고 나오고 싶다.


그러니 나는 아무렇지 않게 폭력과 학대를 지속하는 아버지를 방관하는 어머니를 떠나는 「작별 선물」 속 ‘당신’을 응원하다. 낯선 뉴욕의 삶이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향한다는 것만으로 당신은 괜찮아지고 있으니까. 혼자서 모든 농사를 감당할 오빠에게 고맙고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당신은 더 빨리 떠났어야 했다. 따뜻한 울타리가 아닌 족쇄였던 부모로부터 말이다.


클레어 키건은 구체적인 묘사로 불편함을 전하는 대신 작은 몸짓과 시선이 닿는 공간과 배경으로 마음의 상처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상처는 더 크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처음엔 상황을 바꾸려 시도하고 노력했을 마음이 어떻게 무너져 무기력으로 변하는지 말이다. 젊은 엄마를 다시 생각한다. 엄마가 바랐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서른 살의 나이 때문에 결혼 이야기를 꺼낼 남자가 없을 것 같아 디건의 제안을 받아들인 「삼림 관리인의 딸」 속 마사에게 다시 젊은 엄마를 본다. 마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마사를 사랑한 디건.


가끔 헛간에 서서 씨앗을 쪼는 닭들을 바라보며 행복감을 느끼다가도 이내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삼림 관리인의 딸」, 87쪽」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녀는 감정이 점점 크고 깊어져서 사랑이 될 줄 알았다. 지금 마사는 친밀함을, 오해를 뛰어넘는 대화를 간절히 원했다. 일을 찾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조금 있으면 아이가 태어날 참이었다. (「삼림 관리인의 딸」, 89~90쪽)


주변 시선이 중요하고 땅과 집을 지킨 후 찾아올 미래의 삶이 중요했던 디건, 지금의 행복이 중요했던 마사. 마사를 배려하지 않는 디건의 말과 행동은 폭력인 줄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역시 폭력이다. 화해의 타이밍은 지나갔다. 마사는 집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디건은 그 계획을 모르지만 마사가 떠날까 두렵다. 문득 궁금하다. 젊은 아버지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디건처럼 두렵기는커녕 관심조차 없었지 않을까.


클레어 키건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아일랜드의 삶은 권위를 내세우는 남성 중심의 사회를 꿰뚫는 동시에 고요하고 정확하게 비판한다. 그 삶이 우리의 그것과 닮아서 아프고 쓰라리고 고통스럽다. 상처로 얼룩진 시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작별 선물」의 ‘당신’, 과거를 잊고 원하던 아이와 함께 떠나는 「퀴큰 나무 숲의 밤」의 ‘마거릿’의 선택은 멋지고 눈부시다.


그러나 나를 오래 붙잡는 건 「물가 가까이」였다. 소설 속 아들은 새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생일을 원하지 않는 리조트에서 보내야 한다. 새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는 엄마가 싫지만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아들은 바다를 보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아버지와 결혼했을 때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한 할머니는 정작 바다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고 가 버린 할아버지를 떠나지 못했다.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할머니는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몰라서” (160쪽) 그랬다고 대답한다.


엄마도 그랬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등에 업은 아이 때문에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엄마가 가고 싶은 곳으로 원하는 대로 어디든 한 걸음 나가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젊고 어린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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