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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멀리서
  • 인생은 소설이다
  • 기욤 뮈소
  • 13,500원 (10%750)
  • 2020-11-24
  • : 4,875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에게 “소설 쓰고 있네” 란 말을 한다. 하지만 그건 적절하지 않다. 허무맹랑하거나 기가 찬 일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나고 있으니까. 소설은 때로 누군가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고 소설은 누군가가 꿈꾸는 삶이니까. 기욤 뮈소의 『인생은 소설이다』은 그런 생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다소 복잡한 구성의 이 소설은 뭐랄까. 소설가의 고충을 들려주는 자기 고백서 같기도 하고 수많은 거장들을 위한 오마주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결국엔 소설로 귀결된다. 픽션의 세계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존재와 고독 같은 것들은 현실로 고스란히 이어지니까.


소설에는 두 명의 소설가가 등장한다. 한 명은 언론에 노출된 적이 없는 신비주의 작가 ‘플로라 콘웨이’,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로맹 오조르스키’. 소설은 플로가 콘웨이가 딸 캐리와 집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다 캐리가 실종된 사건으로 시작한다. 집안을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 없는 딸, 플로라 콘웨이는 절망한다. 캐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캐리를 데려간 범인은 누구일까.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대하게 만든 작가는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다. 로맹 오조르스키의 등장이다. 그는 이 소설의 진짜 화자다. 그의 현재는 고통 그 자체다. 전 부인 알민은 이혼 후 아들 테오의 양육권까지 빼앗았다. 테오만이 그에게 전부다. 소설은 답보상태다. 그렇다. 플로라는 로맹의 소설 속 주인공인 것이다. 소설 속에 소설이 등장하는 액자 소설. 하지만 보통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로맹이 소설 속 세계에 진입하고 인물들과 대화를 한다. 브루클린과 파리,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전개된다. 로맹은 알민이 테오를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다는 사실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도 정작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설정으로 주인공을 만들었지만 소설 속 캐리를 향한 플로라의 고통은 모른 척한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 실종된 캐리에 대한 행방까지 미스터리와 판타지의 결합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때문에 어떤 독자는 혼란스럽기 충분하다. 어떤 독자는 바로 나다. 소설 곳곳에서 고백하는 소설 쓰기의 괴로움은 작가 기욤 뮈소의 진심으로 다가온다. 소설가로의 삶과 고뇌, 한 권의 책을 발표할 때마다 견뎌야 하는 어떤 시간들, 출판사와 출판계, 비평, 언론을 언급한 부분이 그러하다. 창작의 고통과 새로운 것을 쓰고자 하는 욕망. 아마 대부분 작가들의 숙명일 것이다. ‘로맹가리’가 ‘에밀 아자르’로 활동하고 ‘페르난두 페소아’가 수많은 필명으로 존재한 이유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직시할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소설 쓰기를 통해 나의 세계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생을 마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55쪽)


글쓰기가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심심풀이로 하는 여가 활동이었던 적이 없었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했고, 열정과 노력을 쏟았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글쓰기에 대해 말하기를 ‘아주 특별한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98쪽)


우리는 종종 소설을 읽다 소설 속 인물에 동화된다. 그의 입장에서 소설이 전개되기를 원하고 그에게 닥친 불행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캐리를 빨리 찾기 바랐던 간절한 마음이 점차 플로라가 삶을 견딜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로맹과 테오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동한다. 예측하지 못했던 전개와 결말, 독자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하나의 완벽한 그림을 떠올릴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욤 뮈소의 팬이라면 즐겁게 빠져들 것이다. 팬이 아니더라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스스로에게 묻을 것이다. 왜 소설을 읽는가, 소설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소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그동안 읽은 소설에서 내가 붙잡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받은 위로, 때로는 함께 분노하고 절규하며 느끼는 카타르시스, 때로는 현실에서 도피하는 피난처가 된다. 그러니 『인생은 소설이다』란 제목은 적절하다. 어쩌면 소설 같은 인생, 인생 같은 소설로 둘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구별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토록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다고 생각해왔다. 픽션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건 없으니까. 인간이 현실 속에서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픽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마치 실존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결과적으로 실존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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