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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멀리서
  • 소설 보다 : 겨울 2018
  • 박민정 외
  • 3,150원 (10%170)
  • 2019-02-08
  • : 1,081

책을 정리하다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를 발견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었고 내용은 애틋했다.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이 났다. 그녀만의 언어였다.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녀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어떤 서운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그 메모를 바라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알게 되었고 안부를 주고받으며 속상한 일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을까. 한때는 영원을 약속했던 사이였지만 서로의 현재를 모르는 사이로 전락하기도 하는 이상한 관계.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는 영화 속 울부짖음처럼 묻게 될지도 모른다. 소설 안에서도 소설 밖에서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 당당하고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아이돌로 활동했던 사촌의 만나 그녀가 프리터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박민정의 「나의 사촌 리사」, 낯선 프랑스에서 만난 인연에 대해 그들이 보낸 시간과 그 안의 내밀한 감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 처음에는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지만 그 문장에 빠져들고 있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는 서이제의 「미신迷信」, 딸아이를 사고로 잃고 그 상실로 인해 점차 무너진 가족의 현재를 마주하는 정용준의 「사라지는 것들」. 

 

이별과 상실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지는 것일까. 네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헤어진 누군가, 사라진 존재를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 자주 연락을 하고 만남을 이어갈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안부만 전하는 사이로 변하는 사람들. 가족이란 울타리에 속하지만 그런 사이가 아니라 자신할 수 없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절망감을 백수린은 감각적인 표현으로 전달한다.

 

잿빛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짙푸른 물결이 이쪽으로 다가오다 부서지는 모습이 보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황금색으로 빛나던 장소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바람이 불면 파라솔의 몸체가 흔들렸고 이제 끝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고 옅은 슬픔 같은 것이 가슴 안에서 서서히 퍼졌다. (「시간의 궤적」중에서)

 

어찌할 수 없는 죽음 그 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서이제의 「미신迷信」과 정용준의 「사라지는 것들」에서는 소중한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참혹한 일상을 느낀다. 왜 그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나. 정용준의 소설에서 어린 딸의 죽음에 대한 부분은 특히 그러하다. 아이를 돌봐주던 어머니가 왜 그때 그랬을까. 아주 작은 실수였고, 불운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가족은 조금씩 와해된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죽기로 결심했고 그 사실을 아들에게 전한다. 정용준의 소설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할까 봐 내내 불안했다. 아들과의 불편한 여행, 그 짧은 시간 나누는 대화는 외롭고 쓸쓸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할까. 모르는 것 투성이인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때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아는 게 없다. 아무도 누구도 모르겠다.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애써 상상하면 떠오르는 건 온통 절망스럽고 나쁜 일들뿐이다. (「사라지는 것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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