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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내 남은 시간은
힘들거나 막막하거나 둘 중 하나일수밖에 없다고
녹녹하고 나른한 중간 따윈 없다고 자못 비장하게 생각했었다.

 

지금은 고달픈 시기..
막막한 시기가 얼마나 숨 막히는지 잊을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너무 힘이 든다고 말할 수도 없다.
또 조금만 견디면 순서를 기다리고 섰는 그 시간은
자기 차례를 어김없이 지킬 것이기 때문에
이 시간이 길다고 말하지 않겠다.

 

나에게 희망이 남아 있나..
나에게 지연을 제외한 희망이 남아 있을까?
내가 품었던 희망은 이제 모두 소멸 되었다고
나에게 남은 희망은 지연뿐이라고 결론짓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그 구질구질하고 비틀린 상실감의 파편들은
온통 지연에게로 가서 덕지덕지 달라붙어 버릴 것이고
우리 두 사람의 생은 그야말로
누리는 것이 아닌 견디는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막막한 시간 속에서는 차라리 이 고달픔을 원했으나
고달픈 시절엔 막막한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나는 구체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밥을 벌고, 책을 벌고, 학용품을 벌고, 커피를..
가방을 벌고, 음악을 벌고, 즐거운 외식과 나들이를..
어쩌면 이건 평생을 헤이하게
계산 없이 살아온 벌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이 마흔이 넘어 서투른 계산을 시작한다.
더디고 불편하고 위태롭고 불쾌하다..

 

아.. 오늘은 무슨 요일이었을까..
내일은.. 내일은 무슨 요일일까..
이 겨울 마지막 눈은 언제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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