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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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야문콩 천천히 씹기

아버지,

 

천리향이 피었어요.

작년, 아버지 보내드리고 우리 집에 가족들 다 모였잖아요. 아버지 생전에 우리 교회에 그렇게 와보고 싶어하신 걸 끝내 걸음 못하셨다고 엄마가 우리라도 가보자고 하셔서요. 대전 현충원 갔다 온 다음 날 새벽에 거실에 나갔더니 무슨 좋은 향기가 난다 싶어 불 켜고 보니까 글쎄 천리향 쬐그만 한 송이가 팝콘처럼 벌어져 있는거예요. 꽃 봉우리가 입 다물고 있을 땐 쌀알만큼 조그만한데 그게 벌어졌다고 그렇게 막강한 향기를 내뿜다니 정말 신기했죠. 낮에 엄마가 오셔서 '느그 아부지 보셨으면 좋아 하셨겠다.'라고 하셨죠. 마음이 짠했어요. 아버지가 꽃나무를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그러고보니 어릴 적 우리집 마당에 천리향 한 포기가 있었던 게 생각나요. 학교 갔다 돌아올 때 우리집 들어오는 골목 모퉁이만 돌아도 그 향기가 진동했거든요. 오죽하면 큰언니는 치자나 마찬가지로 천리향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잖아요. 향기가 너무 진하다고요. 꽃 향기는 은은해야 고상한데 너무 대놓고 진하게 향기 내뿜는다고 천하다고 하던걸요. 그런데 아버지 요즘은 세상이 변하니까 꽃 향기도 변하나봐요. 예전같으면 이 좁은 거실에 천리향 화분을 넣고 살 생각도 못 했을걸요. 큰언니가 아니더라도 꽃향기가 너무 진해 실내에 가둬두기엔 향기가 너무 진해요. 머리가 아플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꽃향기가 예전만큼 나지 않는 것 같아요. 제 코가 둔해진건 아닐거예요. 꽃향기가 옅어졌다는 학계 보고가 없을까요?

 

 

 

 

 

꽃나무가 없는 친정은 상상이 잘 안 되지만........지금은 없어요.

아버지 하루 시작이 나무에 물 주는 일이었지요. 저는요, 부엌에서 엄마가 밥 하는 소리 들리고 마당에선 아버지가 나무 가꾼다고 부산하게 다니시는 소리에 부시시 눈 뜨던 어린 시절이 내 기억엔 아주 평화로운 풍경으로 박혀 있어요. 아버지 병원에 입원하시니까 나무 돌봐줄 사람 없다고 엄마가 여기저기 입양 보내셨어요. 화원에서 삼백 만원에 사들이고 싶다고 했던 그 황금소철 말예요. 그건 지금 생각해도 속상해요. 우리 딸들은 그 큰 화분을 들여놓을 곳이 없어서 종* 아지아 집으로 보냈대요. 아지아가 그 즈음에 큰 평수 아파트로 이사했잖아요. 핏덩이 키워준 은혜 모르고 아버지 가슴에 못 박은 사람에게 아버지가 그토록 아꼈던 나무를 보냈다니 화 날 일이죠. 그래도 엄마는 "화원에 돈 주고 파는 것보다야 낫지" 그렇게 말해요. 도대체 뭐가 더 낫다는건지. 화원에 팔면 그 돈으로 엄마 맛있는 거라도 사먹지라면서 우리가 앙앙거리니까, 아부지가 아침마다 쳐다보고 좋아하신 걸 어떻게 돈을 받고 파냐고 엄마가 되려 역정을 내시는 거예요. 엄마 논리가 다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의 황금소철은 돈 받고 파는 존재는 아닌가보다하는 정도로 이해해요. 그래도 종*아지아 형제는 미워요. 그 아지아들 보면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다'라는 옛말이 그러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니까요. 그래도 장래 일정 내내 휴가 내서 우리랑 같이 하더라구요. 그러면 뭐해요. 아버지 살아 생전에 가슴에 못이나 박지 말지. 

 

 

 

 

 

아버지 가시고 이내 엄마가 입원하더니 아직도 퇴원을 못하시네요. 아버지 서운하시겠지만 집은 부동산에 내놓았어요. 덩치가 큰 집이라 매매가 쉽지 않다고 하네요. 어떤 세입자들은 통장에 꼬박꼬박 세를 넣어주지만 골통 세입자들도 있어요. 몇 달치 밀려서 동생이 찾아가니까 정말로 "배 째라~"라고 했대요. 우리 집안에도 억센 사람이 있어서 저런 사람 상대 좀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입자 관리도 힘든데 하물며 꽃나무는....... 웬만한 건 엄마가 분양시켜 보내서 모진 겨울을 살아 남았겠지요. 우리 딸들은 각자 자기 살림하면서 엄마 병원 시중드는 것도 힘겨워 친정 꽃나무까지는 손이 닿질 않아요. 아버지 죄송해요. 얼마 전에 집에 잠시 들렀더니 땅에 심겨져 있는 것들은 이웃 집에서 간간이 물을 줘서 살아 있더라구요. 지금쯤 주인 없는 집에서 그 나무들은 홀로 싹을 틔우고 있을까요.  

 

 

 

 

 

아버지,

꽃이 피니까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요.

작년에 딸기만 봐도 눈물이 저절로 흘렀는데 지금은 천리향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하고 있어요. 아버지, 사람도 꽃나무 같아요. 나무는 제 자리에 붙박이로 가만히 서 있어도 향기로 주변을 물들이잖아요. 아버지께서 우리 곁에 오시지 못해도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추억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사소한 것도 지나고나면 이토록 간절히 그리워지는 것인지를요. 제가 어릴 적엔 오만불손하게도 부모님보다 더 멋지게 살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버지만큼도 살 자신이 없어요. 훗날에 저도 아버지처럼 향기로운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요. 그저 하루 눈 뜨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요. 엄마도 많이 좋아지셨고요, 우린 다들 잘 사니까 걱정 마시고....평안히 지내세요. 아버지 설마 그곳에서도 꽃나무를 가꾸시나요? 나중에 때가 되서 가 보면 알겠지요. 평안히 잘 지내세요.

 

 

 

 

120303ㅌ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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