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진주의 야문콩 천천히 씹기

 

 

 

신문지로 돌돌 싸서 서늘한 뒷베란다에 두었던 배추 한 포기를 꺼낸다.

신문지를 벗기니 바싹 말라 부서러지는 겉잎을 조심스레 벗겨낸다.

그 다음엔 먹을만한 시든 잎이 나온다. 이렇게 삐들빼들한 잎은

된장 풀고 시원한 우거지국을 끓이기 마치 맞으니 따로 골라둔다.

아파트 살림하면서 시래기 만들기란 힘든데 아쉬운데로 시래기 대용으로

써도 괜찮다. 한번은 데쳐서 쭉쭉 찢은 것을 양념에 조물조물 무쳐서

감자탕 끓일 때 무청시래기 대신 넣었더니 맛있었다.

 

 

 

시래깃국 끓여 먹기에도 좀 많다 싶으면 배추전을 부쳐 먹어도 된다.

서울 사람들은 배추전은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그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냐고 신기해하지만 나는 부추전이나 파전보다 배추전이 더 좋다.

배추 이파리 줄기 퉁퉁 부분을 마늘 찧듯이 칼자루 뒷통수로 툭툭툭 두드려

소금을 슬쩍 뿌렸다가 부침개로 부치면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지난 설 때 만두 만들고 남았던 만두소가 생각나 냉동실을 뒤져 찾아낸다.

데친 배춧잎에 만두소를 소복하게 떠놓고 동그랗게 또르륵 싼 다음

납작한 전골냄비에 동그랗게 예쁘게 앉힌 다음 육수를 부어 끓이기만 하면

궁중요리 부럽지 않은 만두배춧잎전골-내맘대로 지어붙인 이름이지만-이 된다.

 

 

 

데친 배춧잎을 가늘게 찢어서 된장 조금에 참기름 넣고 무쳐도 맛있다.

 

 

 

배추가 저장성이 얼마나 좋은지 지금까지도 그 속잎은 탱탱하다.

노오란 속잎은 등겨장이나 쌈장에 그냥 찍어먹어도 맛있다.

달고 고소하고 싱싱하다.

겨울철엔 상추같은 잎채소 값이 무서운데 배추 속잎은 우리집에선 그저다.

 

 

 

내일 아침엔 새파란 미나리와 배춧잎 종종 썰어서 겉절이 해먹어야 겠다.

싱그러운 맛이 그리워지는 겨울 끄트머리에 식초 한 방울 넣고 새콤 매콤하게

양념해서 밥에 비벼 먹을까?

 

 

 

 

지난 겨울 배추 농사가 풍년이라 배추가 흔지만지 널렸었다.

아는 분이 친환경 농법으로 정성들여 키웠는데 배춧값이 너무 하락하니 

울상이었다. 안타까워 다른 사람들한테 소개도 해주고, 나 역시 김장 서른 포기만

하면 될 걸 열 포기를 더 주문했었는데, 이 분이 또 열 댓 포기를 운개로 더 주셨다.

덕분에 넉넉하게 김장해서 몇 군데 나눠 주면서 모처럼 인심썼다.

그러고도 남은 건 이렇게 뒷베란다에 보관하면서 겨우내내 한 포기씩 꺼내 먹고 있는 중이다.

한 포기 꺼내면 머리를 짜내어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그야말로

구워 먹고 지져먹고 볶아 먹고 난리를 치지만 늘 배추 한 포기는 너무 푸짐하다.

20120225ㅌㅂㅊㅁ.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