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Value Investing

 

시간 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 토마스 만, 『마의 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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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글을 쓴 세월이 어언 20년이 넘었다. 시간에는 눈금이 없다고 하지만 지니의 요술램프가 작동하는 알라딘에서만큼은 사정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알라딘에 들어오면 내가 쓴 글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연·월·일·시·분 단위까지 정확하게 박제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알라딘에서는 내가 해마다 얼마만큼의 글을 썼는지를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정확하게 세고 있다. 세상에 이토록 정확한 글쓰기 통계자료를 알려주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




문득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때때로 알라딘이 몹시 야속하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온갖 정성을 기울여 리뷰나 페이퍼를 폭풍처럼 작성해 올려봐도 땡전 한 푼 보상이 없을 때 서운한 감정이 더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한 때는 알라딘 서재지수를 끌어올리려고 글을 더 열심히 쓰기도 했었다. 일부러 태그도 더 열심히 달고. 그넘의 알라딘 서재지수가 뭐라고.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동그란 하늘이 세상의 전부로 보이는 것처럼 알라디너라면 누구나 일단 알라딘 서재지수부터 쳐다보기 마련이다. 마치 자동차를 아끼는 사람이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누적 주행거리를 힐끔힐끔 살펴보는 것처럼.


한때는 알라딘 서재 활동이 마치 퇴근 후의 필수적인 방과 활동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가 올린 글에 대한 반응도 궁금했고, 그에 못지 않게 다른 알라디너들이 무슨 새롭고 흥미로운 글들을 올렸는지도 몹시 궁금했다. 내 글에 달린 묵직한 댓글 때문에 답글을 어떻게 달아야 좋을까를 고민한 적도 많았고, 다른 알라디너의 글에 남긴 댓글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토록 심한 감정의 기복을 겪었던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다들 너무 젋어서(!) 그랬었나 싶기도 하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다.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아주 능숙하게 처리하는 일꾼 또한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든 게 잊혀지니까. 아주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시간'을 위대하다고 말했다. 애덤 스미스는 '저 위대한 판관'이라고까지 극찬할 정도였다. 시간이 결국 누가 옳고 그른지를 밝혀주니까. 

 

그렇지만 인간은 지나간 과거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오늘날과 같은 극히 복잡다단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만 '기록'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절해고도에서 홀로 십수 년을 살았던 로빈슨 크루소도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무인도에서는 조금만 방심하더라도 날짜뿐 아니라 자신의 나이조차 잊어버리기 십상이니까.


섬에 온 지 열흘 내지 열이틀이 지났을 때 책과 펜, 잉크가 없으니 날짜 계산을 못하고 심지어 평일과 안식일도 구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을 방지하려고 나이프로 커다란 나무 기둥에 대문자로 도착한 날짜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 기둥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서 내가 처음 착륙했던 해변에 세워 놓았다. 나는 거기에 <1659년 9월 30일 처음 섬에 도착하다>라고 새겼다. 그리고 이 네모난 기둥 양 옆면에 매일 칼로 금을 새겨 날짜를 기록했다. 일주일때 되는 날은 다른 날보다 좀 더 길게 금을 새겼고, 매달 초하루도 그날만큼 길게 새겼다.

 

 -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다니엘 디포)


월든 호숫가에서 몇 년 동안 홀로 살았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도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도 로빈슨을 모방했다. 로빈슨 크루소야말로 '외딴 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그에게는 온갖 훌륭한 지침을 제공해줄 '인생 선배'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씨에나, 낮이나 밤 어떤 시간에나 나는 시간의 홈을 활용하고 그 순간을 내 지팡이86에도 표시해두고 싶었다. 달리 말하면,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만나는 점, 요컨대 현재의 순간에 서고 싶었고, 현재라는 출발선에 발끝을 대고 서고 싶었다. (52쪽)

주석

86. 소로는 측량하기 위해 눈금이 새겨진 막대를 갖고 다녔지만, 여기에서는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를 빗댄 표현이다. 크루소는 나무 기둥에 눈금을 새겨 시간을 기록했다. 소로는 일기에서도 "로빈슨 크루소가 막대기에 매일 표식을 했듯이, 우리는 매일 우리의 품성에 눈금을 매겨야 한다"(일기 1:220)라고 썼다. 소로는 자급자족하며 독립된 삶을 살았던 크루소에게 매력을 느꼈던지 「커타딘 산」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거듭 크루소에 대해 언급했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 중에서



알라딘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독서생활에 필요한 눈금들'을 너무나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을 확인할 때다.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까마득한 옛시절의 통계까지도 따박따박 알려준다. 심지어는 내가 해마다 작성한 글자수까지도 빼놓지 않고 알려준다. 그 글자를 소설책으로 환산하면 몇 권의 책이 되는지까지도. 이토록 친절한 알라딘이 아니라면 과연 어디서 이런 정직한 통계를 구할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알라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03년 무렵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쯤 전이다. 20년쯤 전에... 맨처음 내가 알라딘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때는 모든 게 두렵고 낯설었었지...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연간통계는 아쉽게도 2011년부터 제공된다. 알라딘에서 글을 쓴 지 21년차인데 통계는 최근 12년치밖에 알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어쨌든 지난 12년 동안 내가 무슨 내용으로 글을 썼던지에 상관없이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단행본으로 197.73권을 썼다는 사실이 내겐 중요하다. 21년째 글을 써왔다는 사실, 최근 12년 동안에만 소설책 200권에 가까운 글을 끄적거려왔다는 사실은 그저 누구라도 쉽게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닐 테니까. 더군다나 2019년부터는 유튜브 채널 운영 을 시작했기 때문에 예전 같은 서재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던 사정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알라딘으로부터 뚜렷하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 건 2019년 가을쯤이었다. 그 무렵에 탐독했던 책이 하필이면 사마천의 『사기』였다.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극한의 대립으로 몰아넣은 '조국 사태'가 마침 그때 터져나왔다. 나는 『사기』에 담긴 빛나는 문장들을 인용하면서까지 조국 사태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진영간의 갈등이 그토록 심한 줄도 모른 채. 그런 글들을 여럿 쓴 덕분에 상상 이상으로 거친 댓글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런 모진 댓글들을 마주하면서부터 알라딘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그런 날선 공격을 받으면서까지 소신껏 글을 쓸 이유도 없었다. 요즘의 언어로 말하자면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했다고나 할까. 나는 그 모진 댓글들을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서서히 알라딘을 벗어났고, 또다른 우연한 기회에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북튜버로 변신했다.




유튜버 생활에 몰두한 세월도 어느새 3년 반쯤 지났다. 영상을 만드는 작업이 너무 힘에 겨워 중도에 1년 정도 쉰 적도 있었다. 유튜브 채널 운영과 알라딘 서재 활동은 <책 읽기와 글쓰기>라는 공통 분모만 제외하면 실로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궁금한 분들이 계실까봐 이번 기회에 조금만 소개하면 이렇다.


<유튜브 채널 운영의 장점>


 - 알라딘 서재활동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폭넓은 구독자들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작품의 번역자나 권위자들이 직접 만들거나 해설하는 영상들을 통해 직접 소통하는 기회도 많다.)

 - 독서계의 특출난 유튜버들과도 쉽게 교류할 수 있고, 그들의 독서 세계를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다.

 - 영상을 만드는 동안 <알라딘 서재 글쓰기>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깊이 있게 작가와 작품을 공부한다.

 - 영상 기획 / 대본 작성 / 영상 제작 / 마케팅 등 <책 읽기와 글 쓰기> 말고도 다양한 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

 - 영상 조회수와 유튜브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채널 성장에 가속이 붙고 채널 수익도 뒤따른다.

 - 1인 크리에이터로서 다양한 활동 기회가 생긴다. 책 광고도 맡을 수 있고, 강연 기회도 얻을 수 있다.


대략 이 정도만 언급해도 충분할 듯하다. 유튜브 플랫폼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내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가장 후회하는 건 2,3년만 빨리 유튜브에 발을 들여놨더라면 하는 점이다. 무릇 그 어떤 세계든 새로운 장이 펼쳐지면 재빨리 뛰어드는 개척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남들보다 그리 늦지 않게 그 세계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낡은 세계에 고집스럽게 머무는 사람들도 있다. 선점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일찍 자리잡은 채널일수록 손쉽게 구독자를 끌어모으던 시절도 있었다. 날이 갈수록 텍스트보다는 영상이 각광받는 시대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집집마다 TV가 대형으로 변했고 OTT 플랫폼이 급부상했지만 유튜브 플랫폼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온갖 영역에서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나이, 직업, 학력 등등을 불문하고.


유튜브는 간단히 말해서 1인이 제작하고 운영하는 TV 방송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방송국에서 영상을 만들어 송출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장비와 시간과 비용이 드는가. 그 모든 걸 1인이 혼자서 하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가. 그러나 대규모 자본이나 설비 투자가 없어도 나홀로 <방송 영상>을 만들어 순식간에 전세계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강력한 <1인 미디어 채널>을 상상할 수 있을까? 잘 만든 동영상들은 시간이 지나도 끊임없이 재생된다. 멋진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 하나가 수십 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경우도 매우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알라딘에서는 지니의 요술램프가 아무리 막강한 요술을 부려도 그런 경지를 꿈꿀 순 없지 싶다.


알라딘 서재 활동과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덧붙일 얘기는 <글쓰기의 확장>에 관한 문제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라딘 서재 글쓰기 활동 등을 바탕으로 작가로 변신했다.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유튜버들도 마찬가지다. 책을 소개하는 영상들을 자꾸만 만들다 보니 결국 책까지 쓰게 되는 경우를 참 많이 봐왔다. 나도 책을 써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모 인터넷 신문으로부터 칼럼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영상들과 알라딘 서재 활동 등이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음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알라딘에서 <이달의 당선작>에 선정된 횟수를 대충 세어보니 누적으로 85회 정도다. 오랫동안 적용되었던 적립금 2만 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70만 원을 보상 받은 셈인데, 3년 반 동안의 유튜브 채널 운영에 따른 수입보다 훨씬 적고, 칼럼 기고를 통해 받은 원고료로 따져도 두 달치에 못 미치는 소액이다. 이러니 양질의 컨텐츠를 거의 무한대로 제공하는 알라디너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열정적인 글쓰기 활동에 스스로 회의감을 품을 수밖에.


21년차 알라디너로서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알라딘이라는 매력적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운영하는 측에서 다른 수많은 플랫폼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문제인 <컨텐츠 제공자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체계>를 좀 더 진지하게 연구해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마냥 좋아서 일편단심으로 알라딘만을 애용하는 사람들도 결코 적지 않다. 최소한도의 보상체계만 갖춰지더라도 감지덕지 하면서 예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할 의향이 있는 독자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알라디너분들께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비록 알라딘 서재 활동으로부터 얻는 경제적인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충성스런 회원으로 넘쳐나는 알라딘 서재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여 <보다 나은 글쓰기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중요한 토대로 삼으라는 것이다.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 환경도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숱한 알라디너들이 떠나가고 새로 들어왔다. 오래 전에는 댓글이 달리면 이메일로 연락이 오던 시절도 있었다. 실로 다양한 새로운 제도들이 생겨났다가 또 없어졌다. 그러나 책 읽기와 글쓰기라는 공통분모만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 두 기둥만큼은 크게 변하지 않을 듯하다. 이곳에서 오랜 세월 풍파를 겪어온 경험에 비춰보면 결론은 결국 하나다. 열심히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배우면서 좋은 글을 계속 쓰라는 것이다. 그게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결국 <보다 나은 글쓰기>로 나아갈 테니. 글을 쓰기 위한 재료들을 모아 두는 창고로는 이곳만큼 아늑한 장소도 찾기 어렵다. 그러니 리뷰든 페이퍼든 서재 태그든 온갖 잡동사니들을 부지런히 모으고 쌓아 놓으라.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날이 기필코 찾아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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