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알라딘으로부터 다섯 편의 미스터리를 뽑아달라는 메일을 받았더랬다. 물론 나는 바빠서 하나 쓰고 일 하다가 또 하나 생각하고 하다가 제출하려니 더 이상 안 받는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아쉽게도 열심히 추렸는데 아까워서 내 맘대로 뽑은 미스터리를 정리해봤다.
미스터리라고 하면 어떤 사건이든 현상이든 진실이나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비밀을 풀어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초자연적인 이야기이거나 알 수 없는 사건을 추리로 풀어가는 이야기로 나눌 수 있는데,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있고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뭐 어떠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소설들인 것을.
대략 사회파 미스터리, 역사 미스터리, 오컬트 미스터리 이렇게 나눠 봤는데, 생각보다 좋은 소설들이 많아서 고르기 힘들었다.
1. 사회파 미스터리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가 가진 공동체 의식이 지나치게 배타적인 건 아닌지 고민했고, 같은 상황이라도 약자에게 더 가혹해지는 사회가 슬펐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이슬람 사원도 연구하는 다문화교류연구원 교류자들이고, 오지영 형사는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언론이 자극적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경찰서 내에서는 사내정치로 오지영 형사를 압박하는 와중에 사건은 또 다른 인물을 지목하는데...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잘 보여주면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여 몰입해서 읽었던 소설이다. 오지영 형사의 다음 사건이 기다려지기도 했고. 이번 국제도서전 갔을 때 작가님 신작 쓰고 있다고 하던데 얼른 나오면 좋겠다.
이 책은 대거상 해외부문 수상으로도 유명해졌다. 신선하지만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소재를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잘 버무렸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미래인 듯한 어느 날, 세상은 재난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여행사는 재난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상품을 만들었다. 이 '재난 여행'만을 파는 여행사 정글에서 10년 동안 일한 수석 프로그래머 고요나는 회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재난 지역을 돌아보며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도록 여행을 설계하는 게 일이었던 그녀는 이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사막의 싱크홀 '무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결국은 돈 앞에서 사람의 생명이나 존엄 따위는 다 소모품일 뿐인 상황은 전쟁 같은 극한 상황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800쪽이 넘는 책이지만 엄청난 몰입감으로 읽어낼 수 있는 놀라운 책이다. 과거인지 미래인지 알 수 없는 때, 세상은 소수의 권력자들이 지배하고 있다.
세상은 가장 안전한 구역이자 국가 권력의 핵심들이 거주하는 1구역부터 폭동이 일어나 버려진 9구역까지 나뉘어져 있었고, 거주하는 구역이 곧 신분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어느 구역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졌고 받는 대우가 달라졌다.
가장 높은 곳과 아득히 먼 낮은 곳. 두 곳을 잇는 사람은 루미의 제이 삼촌이다. 프라임 스쿨의 우등생 다윈 영, 프라임 스쿨에서 기득권을 비판하는 아웃사이더 레오, 그리고 야망 없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아버지 조이 헌터를 부끄러워 하는 루미가 함께 살해당한 제이 삼촌의 범인을 찾는다.
살인자를 찾는 추리소설 같지만 그 범인을 찾는 과정에는 개인과 사회의 모순이 점철되어 있다. 지구를 나누는 비합리성, 상위 지구를 차지한 이들의 야합,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어떤 짓도 마다않는 불순한 야심, 그리고 가진 것을 잃지 않겠다는 이기심은 한 개인의 삶도 바꾸지만 사회 전체의 방향도 정해버린다.
제이 삼촌을 죽인 이는 누구이며, 다윈 영의 미씽 링크는 무엇일까, 그리고 다윈의 진화는 어느 방향으로 이루어진 걸까.
이 책에는 네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각 모두 서늘하고 재미있는데 그 중에 가장 미스테리 스릴러라 불릴 만한 이야기는 <오버랩, 오버랩 나이프>이다.
단편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이야기는 신 또는 악마란 존재하는가, 삶은 정해진 것일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엄마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러 온 아버지. 죽음의 순간, 아들은 누군가의 속삭임을 듣고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과거로 간다. 순환되는 운명 속에 괴로움은 쌓여 가고,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누구였을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너무 잔인했다. 폭력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고 벗어나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일들이 결국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2. 역사 미스터리
통일신라 신문왕이 통치하던 시절, 오빠인 자은을 대신하여 자은이 된 미은은 당나라로 유학 갔다 금성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설자은'은 살인사건을 해결하며 조금씩 왕의 눈에 들게 되는데...
배에서 '주운' 망국의 백성인 목인곤과 함께 금성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하기 시작한다. 산아의 아버지 독군 김무헌 사건은 아주 참혹했다. 그리고 죽은 자은과 그 사실을 모르는 산아가 안타까웠다. 사건 하나 하나 재미있었는데, 자은은 언제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활약할 수 있을까. 과거나 지금이나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이란 참 어렵구나 싶다.
왕의 눈에까지 들었으니, 이제 자은은 왕의 일도 해결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깨닫게 될까. 그 여정이 길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세자가 궁을 비운 때,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살인범으로 지목된 이는 정수 의녀. 현 의녀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스승이었다. 현 의녀는 스승이 범인이 아니라고 믿었고, 종사관 어진과 함께 수사를 하게 되었다.
왕의 가정폭력은 국가의 재난이었다. 같은 조건이라도 신분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나 결과가 달라졌다. 심한 압박 속에 사도세자는 미쳐갔고, 미친 짓을 한들 주변에서는 쉬쉬했고, 결국 애꿎은 궁인들만 피해를 입었다. 정말로 세자가 범인일까.
현 의녀와 종사관 어진은 범인을 찾고 잡을 수 있을까. 궁 안에서 벌어지는 핏빛 사건들은 잔혹하면서도 애처로웠다.
이 책의 범주는 무엇일까. 역사 미스터리일까, 오컬트 미스터리일까.
누군가의 뇌를 이식하면 그 사람은 누구인가. 원래 몸이었던 사람일까, 이식한 뇌의 주인일까. 달리 말하면 기억의 주인이 그 사람이 되는 걸까.
1969년 어느 브로드웨이 뮤지컬 극장에서 총성이 울려 펴진다. 살해당한 이는 애덤 스펜서. 그를 저격한 바우만은 기자인 크리스틴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귀신나방은 겉모습은 흉측하지만 산란기에는 아름다운 보랏빛으로 탈피하고 산란을 마치면 나뭇등걸에 모여 죽는다. 그리고 유충들은 그곳에서 다시 자라고 알을 낳고 죽는다. 다른 개체이지만 하나의 개체인 것처럼 보이는 이 귀신나방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어쩌면 다 뻥일지도.
히틀러의 뇌가 죽지 않고 계속 몸으로 옮겨 다닌다면, 아니 그보다도 그렇게까지 해서 계속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한데, 너무 끔찍한 일이다. 어쩌면 진시황이 이렇게 계속 살아서 히틀러까지 온 거 아닌가 싶다. 영생을 향한 집념을 보자면 말이다. 어쨌든 그런 일이 가능한가 싶지만.
바우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경악 그 자체이다. 진짜는 누구이고 가짜는 누구일까. 과연 '히틀러'의 '과업'을 저지할 수 있을까, 누가 이길까.
3. 오컬트 미스터리
어느 밤, 자정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책을 펼쳤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한창 귀신들이 움직일 시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소금물? 감기도 안 걸렸는데 소금물로 왜 입을 헹궈 하면서 말이다.
다들 알 것이다. 무슨무슨 행운의 편지. 이 편지를 받으면 언제까지 일곱 명인지 열 명인지에게 보내야 한다는 그 편지 말이다. 영화 <링>에서도 사다코를 피하려면 누군가에게 비디오 테잎을 보여줘야 했다. 이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살려면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링>에서는 어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비디오 테잎을 들고 부모님을 찾아가지만, 이 이야기 <흉담>은 뭔가 좀 더 악의가 더 엿보인다.
흉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묘한 쾌감을 느낀다고나 할까. 목적 자체가 누군가의 비극을 부르는 것이다. 내가 아닌 남의 비극을 자양분 삼아 부를 축적하고 사람의 마음을 좌지우지 하고 잔인하게도 스스로 기뻐한다. 남의 아픔이 즐거운 게다. 그래서 흉하고 흉한 이야기이고.
공포소설가 '나'는 차미조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아버지 차문조 교수의 의문스러운 죽음에 관해서였다. 둘은 민속신앙 덕후인 발람과 함께 '악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안을 도시 괴담을 통해 알게 되고, 예전부터 내려오던 금기를 깨닫는다. 일제시대 뿐 아니라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 전쟁이 남긴 처참함까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다들 소금물로 입을 헹구셨을라나. 잊었더라도 걱정 마시라, 나는 저기 적힌 금기를 다 어겼지만 잘 살아 있으니.
이 책은 진짜 빨리 읽힌다. 사실, 첫 이야기를 읽자마자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누가 빌런이고 끝에 어떻게 될지까지 다 떠올랐다. 하지만 아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 가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이 책을 순위에 넣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소희는 자신에게 고모가 있으며 그 고모가 유산을 남겼다고 무려 변호사에게 들었다. 그리하여 어릴 때나 봤을 기억에 없는 사촌들을 만나고 핏줄이어서 얽히게 된 일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러니까 누가 좋아보이는 거 준다고 하면 의심부터 해야 한다고. 좋은 거는 빚을 내서라도 자기가 가지려고 하지 남을 주겠느냐 말이다.
하지만 엄마도 잃고 홀로 된 어린 소희는 정답게 다가오는 사촌들에게 정이 갔을 것이다. 외로운데다 핏줄이라고 하니까. 그래도 소희에겐 절친도 있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길. 그리고 남에게 떠넘기려고 하면 되려 더 큰 걸 떠안을 수도 있다는 걸 그들이 알길.
드라마 '손 더 게스트'를 재미있게 봤다. 박일도의 정체는 아무리 짐작해도 밝혀질 때까지 계속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
한국형 엑소시즘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악령에 빙의된 인간은 가족을 살해하고 자신의 눈을 찌르고 자살한다. 박일도란 큰 귀신은 작은 귀신을 부려 사람들을 해쳤고 빙의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가족을 해쳤다.
동쪽 바다 깊은 곳에서 와서 사람에게 빙의된다는 큰 귀신, 손은 1998년 화평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화평을 구마하러 왔던 신부들 중 한 명이 일가족 및 형사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 한 가운데 있던 화평, 최윤, 길영은 20년 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큰 손 박일도를 찾아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까.
구마도 다양하게 하고, 민속신앙도 잘 버무려져 있고, 무엇보다 드라마를 봐서인지 책을 읽으면서도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세상이 혼탁하고 사람이 타락하면 그것이 바다 깊은 곳에서 온다는데, 사다함이나 선묘, 아리나발마, 생치새라는 이름이었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다함이나 선묘, 아리나발마가 왜 큰 손이었는지 모르겠다.
이 외에도 너무 많은데 일단 여기까지. 좋은 이야기들이 참 많아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