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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 - 추억의 해독제
  • 아무튼, 디지몬
  • 천선란
  • 10,800원 (10%600)
  • 2024-06-10
  • : 6,546

예전에 다락방 님이 <아무튼, 피트니스>의 한 구절을 적어주신 뒤로 아무튼 시리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아무튼들이 있을까 살펴보던 중 제일 먼저 읽은 건 <아무튼, 야구>였고, 그 다음이 <아무튼, 피트니스>였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아무튼, 디지몬>이다.


디지몬 어드벤처.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애니메이션이다. 나는 만화 영화를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본방 사수를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는 사람이었는데, 진짜 중학교 때는 '웨딩피치' 보려고 학교 끝나자 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왔던 게 기억 난다. 물론 만화 영화 본다고 인생 다 망한 거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웨딩 피치>, <세일러 문>, <태양의 기사 피코>, <마법기사 슬레이어스>, <포켓몬스터> 등등 수많은 만화 영화들이 있었다. 그리고 <디지몬 어드벤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갑자기 디지털 세계로 소환된 아이들이 자신의 디지몬을 만나고 성장하고 헤어지기까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밀레니엄 버그를 극복한 인류가 아직 디지털 세상을 빛나는 청사진으로 볼 때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게 놀라웠다. 디지바이스를 통해 디지털 세상으로 넘어가고 디지털 세상에 0과 1로 존재하는 어떤 프로그램을 백신으로 진화시키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세계를 정상화한다는 게 말이다. 빛나기만 한 미래란 존재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이 느낀 불안을 이렇게 표현했는데, 이는 자유를 누리던 홍콩이 반환되면서 느낀 존재론적 불안을 떠올리게 했다. 다만 그들에겐 희망보다는 절망의 틈새에서 배어져 나오는 절박함이 주로 느껴졌다면, 여기서는 결국은 이겨낼 거란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 <디지몬 어드벤처>가 나왔을 때 <포켓몬스터> 따라 한 거 아니냐는 말도 있었더랬다. 하지만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는데, 가장 좋았던 점은 디지몬이 진화했다가 다시 진화 전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피카츄가 이야기가 끝나가는 데도 라이츄로 진화하지 못했던 건 피카츄가 계속 진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마스코트가 되어버린 피카츄를 진화시키기엔 부담이 컸을 테다. 그렇게 피카츄는 지우와 함께 모험을 하면서 성장했다. 친구들을 만나고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가며 이별과 고통도 겪고 만남과 기쁨을 겪었다. 


디지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그리고 나는) 디지몬과 함께 디지털 세계를 구하며 수많은 좌절과 이별을 겪으면서도 희망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포켓몬스터>의 악당 로켓단보다 더 무서운 검은색 톱니바퀴에 오염된 데블몬이나 아포카리몬을 상대하면서 많은 상실을 겪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성장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디지털 세계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은 천선란 작가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만난 <디지몬 어드벤처> 덕분에 다른 세상을 꿈꾸며 현실의 시련을 감당했더랬다. 뇌출혈로 쓰러진 엄마를 돌보는 일은 갓 스물된 작가의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꿈 꿀 때 죄책감이 정말 심해진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아빠와 언니가 있음에도 작가는 그런 죄책감과 불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 때 디지몬 세상은 작가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자신의 어린 디지몬이 된 엄마를 돌보는 작가는 그렇게 엄마와 세상을 탐험하며 성장한다.


디지몬 친구들! 렛츠 고 렛츠 고! 세상을 구하자! 렛츠 고 렛츠 고! 승리는 언제나 우리의 것!!! 13년이나 지난 만화 영화의 주제곡이 아직도 기억나는 건 이 디지털 세계로 가는 문이 언제고 다시 열릴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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