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이별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두고 우산을 놓치 않으려다가 사고로 죽고 마는 인간에 비유한 적이 있댄다.
살면서, 인연의 몫을 가늠해 보는 습관이 생기는 것 같다. 마주하는 인연에 대해 마음을 다하는 것은 참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겠지만.. 그 모양을 예단할 수 없을 인연의 몫은 하늘의 것이 아니었던가..하는 생각이 들어 숨을 고르고 시선을 가다듬어야 했던 기억들.
오늘은 그 기억들이 자꾸 마음을 건드린다. 아주 조금 열린 창가에서 나풀거리는 커튼 자락처럼 딱 견딜만 하게, 그렇게 아른하게. 그래도 인연은 내 마음대로 예단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곁에 있는 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어려서, 타인의 존재에 대해 명민하지 못해서, 사람을 쉽게 떠나보낼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참 많은 사람들이 닿기 어려운 곳으로 떠나갔다. 마음을 다 주고 싶었던 사람 둘이 그렇게 한 해 차이로 떠나갔을 때도 제대로 슬퍼하거나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치긴 했는데 피가 나든지 멍이 들든지 한 생채기를 보고 나서야 사후적으로 더 아프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난 그렇게 몇 해를 지나서야 아프기 시작한 것 같다.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 혹은 특별한 삶의 목적으로 먼 곳에서 젊은 날을 던지고 있는 재회를 약속하기 어려운 인연들. 사람에 대해, 인연에 대해, 마음에 자유로운 바람이 불기까지.. 너무 조급해 하거나, 너무 초연해 하거나 하는 자연스럽지 못한 시간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올해도 그랬던 것 같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에서 열여섯 살 소녀 리즐이 실연으로 괴로워하다 가정교사 마리아에게 이렇게 묻는다. "누군가 날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그러자 그녀가 답하다. "조금 울다가 다시 해 뜨길 기다려야지." 리즐의 얘기는 사실 내가 좋아하는 문화부 기가가 써 놓은 것인데, 나에게 '이별' 에 대해 새로운 tip을 말하는 것 같아 잠깐 머뭇하게 됐다.
지금껏 내가 경험하고 생각해온 이별은 그저 인연이 닿지 않는 것, 내가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아서 내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미가 없어져서 그렇게 이별하게 되는 것, 삶 속에 깊이 관여하고 이미 집착했는데 그/그녀의 삶에서 제외되는 것...
난 아마 그것 역시 인연의 몫이라 말하며 표정을 감추고 혼자 울게될 확률이 높겠지만,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는...내가 놓았던 인연의 자락 뒤엔 또 그렇게 새로운 파도가 밀려 오더라..
영화 <캐스트 어웨이> 에서 오랜 세월 무인도에 표류해 다시 도시로 돌아오기까지 오직 삶의 목적이었던 사랑하는 여인이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 어떤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음을 미친듯이 괴로워하다가.. 마지막 장면, 탐 행크스가 그렇게 명쾌할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와, 무언가와 그렇게 이별할 줄 아는 용기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건 아닌데,. 새로 산 패닉,CD를 걸어놓고 주먹만한 귤을 까먹다 잠도 오지 않는 새벽에 갑자기 말하고 싶어진게지.
4시 53분, 동트면 산에나 다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