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챠는 일몰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쟌시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는 늦은 밤 11시 경이었다. 며칠 머물던 오르챠에서 쟌시로 떠난 것은 해가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8시경 이었다. 당시 오르챠는 인도에서 꽤나 오지로 통하던 곳이었고 몇 대 되지 않는 택시는 이미 역으로 떠난 후였다. 오르챠에서 일행이 된 대학생 커플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머물게 되었고 마칠 즈음에는 이미 한 대의 택시도 남아 있지 않았다. 꽤나 난감한 시간을 보내고 식당 주인과 숙소 주인까지 발벗고 나서고서야 젊은 청년이 끄는 지붕이 없는 오토릭샤 한 대를 대절할 수 있었다. 18킬로 정도의 산길로 대략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작은 동네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니 검은 도화지를 하얀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거친 붓으로 몇 번 휙~휙~ 훒어 버린 듯 하늘은 온통 별들의 향연이었고 계곡 사이의 하늘은 붓의 뒷길을 쫓아가는 여정과도 같았다. 흥에 겨워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데, 릭샤 청년이 샛길로 빠져 들어갔다. 친구를 같이 태워가고 싶다길래 흔쾌히 허락하고 다시 콧노래에 빠져들었다. 친구를 태운 릭샤는 다시 길을 에돌아 나와 산길을 달려갔다.
삼십 분 내내 불빛 하나 없는 길을 오직 오토릭샤의 불빛에 의지해 달렸다. 근데 어느 순간 앞자리에 동승한 릭샤 청년과 그의 친구가 자꾸 속닥거리며 어깨 너머로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그 동작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몇 차례에 걸쳐 계속되었고 마음 속에 의심의 덩어리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는 남미와 더불어 최악의 여행 난코스로 여겨졌다. 남자는 강도를 당했고 여자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인도 여행 코스의 특성상 그런 소문들이 삽시간에 퍼졌는데 델리에서 택시 강도를 당한 동양인 여행자와 인도 중부 고어에서 강간 살해된 북유럽 여행자의 소문이 돌고 있던 시기였다. 곧 의심은 눈덩이처럼 커져 확신으로 바뀌었고 다음 소문의 당사자가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온 몸을 감쌌다. 인도인치고 건장한 체격의 두 청년이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사건에 대비해 배낭 속에 몇 단위로 분할해 소지하던 돈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 별다른 상해 없이 최소한의 돈만 지불하고 이 사태가 끝나기를 바라며 몸을 뒤척이던 순간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무언가 묵직한 물건이 느껴졌다.

<매일 일몰을 찾아 마을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건 일명 맥가이버칼로 불리던 스위스 군용 나이프였다. 칼을 발견한 순간 한쪽으로 기울었던 마음의 추가 균형을 맞추려는 듯 급격하게 기지개를 켰다.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모험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 칼날을 펴 꺼내 들었다. 평소 과일이나 깍던 둔탁해 보이던 십 센티 길이의 칼날은 그날 따라 살의라도 품은 듯 하얗게 빛났다. 물론 나의 의도는 상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칼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하여 그 맘을 포기하기를 바란 것이다.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칼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최선인데 왠지 그들도 돌아보지 않았다. 칼의 존재를 모르고 달려들기라도 하면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식으로 칼의 존재를 알릴 것인가. 괜히 먼저 들이밀어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오르챠를 떠나올 때 대학생 커플이 건네준 사과 봉지가 생각났다. 배낭 옆에 들어있던 사과를 꺼내 깍았다. 그리고 잘라낸 사과를 칼과 함께 움켜 쥐고 두 청년의 어깨 사이로 들이밀었다. "eat ." 사과가 얹어진 칼을 본 것일까. 움찔 하는 그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다행히 의도대로 칼의 존재는 알린 듯 했다. 쟌시역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나머지 사과 서너 개를 시간에 맞춰 깍았고 그들에 넘기고 나도 먹었다. 긴장감에 줄창 피워대던 담배 필터에 바짝 마른 입술이 달라붙어 떨어져 나왔고 필터에 찝찌름한 피가 묻어 나왔다. 문득 나의 모습이 아귀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사과가 건네지고 얼마 뒤 드디어 역의 불빛이 보였다. 릭샤가 정지하기 전 뛰어내려 길 건너편으로 달려갔다. 릭샤 청년 둘도 릭샤에서 내려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무니 입술에서 또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안도감에 기이한 웃음이 터졌다. 한참 허리를 구부려 웃음을 뱉어 내었다. 담배를 다 피울 동안 두 청년은 말없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 떠나지 않지? 한참을 서로 응시하다 담배꽁초를 버리고서야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줄까 말까. 괘씸하기는 했지만 놀란 눈으로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잠시 고민하다 심호흡을 하고 길을 건너 두 청년 앞에 섰다. 그리고 백 루피를 꺼내 건넸다. "one fifty, two hundred" 안도감에 따블을 건넨 것이다. 바라나시 역으로 걸어가는 내내 심장은 여전히 두근 반 세근 반 두근거렸다.
난 이 사건을 재치로 위험을 넘긴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고 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에서 다음 구절을 보고 말았다.
"인도에서는 시외에 나갈 때는 택시나 릭샤를 가릴 것 없이 운전석에 반드시 조수를 한 사람 태우고 둘이서 다닌다. 어쩌면 승객이 도둑으로 돌변할지 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도 기행 p89-
그러니까 말이죠, 사건을 릭샤 청년의 입장에서 재구성해보면,
<숙소 아저씨의 호출이 온 것은 어둠이 내린 저녁이었다. 몇 번을 거절했으나 반협박성 요구에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 윗 동네에 사는 크리슈나가 같이 가주겠다기에 돌아오는 길에 여행자라도 태워 돌아올 요량으로 승낙했다. 탑승한 여행자는 한국인으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국인을 처음 보는 크리슈나도 그 모습이 재밌는지 연신 뒤돌아보며 웃었다. 오랫만에 만난 우리도 이런 저런 이야기로 즐거웠다. 시간이 지나니 콧노래가 그쳤다. 그리고 뭔가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뒤를 돌아본 크리슈나가 놀란 얼굴로 칼에 대해 들릴 듯 말 듯 이야기했다. 칼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행객이 뭐가 아쉬워서 강도짓을 한단 말인가. 순간 우리 둘의 어깨 사이로 사과가 들이 밀어졌다. 사과 밑에는 투명하게 반짝이는 칼날이 함께 놓여 있었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수시로 사과와 칼날이 우리 둘의 사이를 파고 들었다. 돌아보니 입술에는 피가 붉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아귀같았다. 드디어 역에 도착하니 건너 편으로 냅다 튀었다. 그리고 한참을 서서 웃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돈을 따블로 주고 헐레벌떡 멀어져 갔다. 저건 미친 놈이 틀림없다. fucking korean!>

<저들의 삶은 이해의 범주를 뛰어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