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방 두 칸짜리 이 집에는 허리까지 오는 낮은 책장이 각 방과 거실에 놓여 있다. 천장까지 높게 올라가는 책장은 심리적 거부감 때문에 아무래도 싫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작업방 책장의 책들은 색깔별로 구분해 꽂아두었다. 이렇게 색깔별로 책을 꽂으면 책 장르가 마구 뒤섞여 의외의 조합이 생기는 게 재미있다. 시집 옆에 과학책, 페미니즘 책 옆에 경제학 책. 색별로 정리하면서 내 책 중에는 흰색 표지 책이 가장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른 색에 비해 흰 책이 4~5배 이상 수가 많다. 다 꽂아놓고 보니 발견한 사실인데 그 이유가 뭔지 무척 궁금하다. 누군가 책표지 색에 대해 쓴 논문이 있을 것도 같다. -p73-
책장을 정리해야 할 때가 생긴다. 여유 공간을 두고 정리한 책들의 틈새에 하나 둘 신간이 자리하면서 드디어 더 이상 꽂을 공간이 생기지 않을 때 다시금 배치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마다 책을 분류하고 꽂는 방식은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분류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장르-작가-제목순 등 탐색의 편이성을 염두에 둔 분류법이 일반적일 것이다. 이랑 작가의 책 분류법은 독특하다. 그녀는 책의 겉표지 색깔에 따라 정리한다. 아, 얼마나 기발한 발상인가. 역시 아티스트는 다른가 보다. 나중에 책을 찾을 때의 불편함이야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왠지 책장에서 다양한 색깔의 무지개를 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방 한구석의 책장을 바라본다. 아쉽게도 무지개는 피지 않을 것 같다. 다만 흰색과 검은색, 무채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중간중간 노랗고 파랗고 빨간 꽃들이 듬성듬성 피어나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