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 괴레메 지역에 도착한 것은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고 마을 안 골목길은 멀찌감치 하나씩 가로등이 켜져 있어 겨우 길을 잡아 나갈 수 있었다. 대부분 숙소는 문을 닫았고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에 가로등과 함께 숙소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국적인 풍취와 보슬비가 옷을 적시는 을씬년스러운 분위기는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삐거덕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주인은 퇴근하고 한 여행자가 대신 수속을 해주었다. 늦은 밤 맥주 하나를 시켜 마시며 홀을 돌아보니 이국적인 가파도키아 풍경 사진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양한 색깔의 열기구가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열기구를 배경으로 한 여성이 찍은 사진은 참 멋졌는데 그 뷰포인트가 숙소 바로 뒤 언덕이었다. 게다가 여성은 어딘지 낯익다 싶더니 모델 박둘선이었다.

<아침에 바라본 카파도키아는 지구가 아닌 외계 행성에서 꾸는 꿈 같았다.>
카파도키아를 떠나기 전날 열기구를 타게 되었다. 비용은 20만원부터 80만원에 이르기까지 그 편차가 다양했다. 물론 장기 배낭 여행자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30만원대 초저가 열기구를 신청하였다. 신청한다고 하여 다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변수는 날씨이다. 특히 바람이 센 날은 열기구 운행이 중지된다.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하늘을 온통 수 놓은 열기구의 향연은 하늘이 허락해야지만 가능한 것인데 의외로 그런 날씨는 많지 않다고 한다. 그 날은 약간의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내가 타기로 한 열기구는 운행을 하기로 했는지 봉고차가 이른 새벽 문 앞에 도착했다. 출발지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우리 팀이 열기구 풍선을 채우기 시작했고 뒤이어 다른 팀들의 열기구 풍선도 여기 저기서 하나 둘 한껏 바람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옆으로 누운 풍선이 기지개를 켜듯 천천히 일어서는 장면은 별 것 아님에도 묘한 긴장감과 흥분을 동반하고 있었다. 내가 탄 열기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미명에 떠오른 하늘은 사람을 한껏 흥분시켰고 곧 마주하게 된 하늘에서의 일출은 높아진 눈 높이만큼 더 두근거렸다. 뒤를 이어 기지개를 켠 열기구들이 하나 둘 뒤를 이어 하늘로 떠올랐다. 장관이었다. 녹색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흰 돌산을 배경으로 열기구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다행히 먼저 출발한 우리는 하늘에서 일출을 맞이했다>
어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열기구는 수평 이동만을 하고 있다. 열기구의 바구니가 언덕 위의 나무가지를 스치는 순간 열기구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자신이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그에게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버너의 화력을 높여 상승을 시도하는데 열기구는 영 올라가지 않았다. 비명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어느 순간 눈 앞에 돌산이 나타났다. 하늘 위 빈 공간에서는 크게 속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돌산을 향해 날아가는 열기구는 엄청 빠르게 느껴졌다. 쿵~ 급기야 돌산에 열기구가 부딪히더니 아래로부터 불어 닥친 상승기류에 끼기기~ 기괴한 소음을 내며 위로 빠른 속도로 솟구쳤다. 출렁하며 바구니가 돌산 봉우리를 넘어섰다. 상승 기류로 잠시 솟구치던 열기구는 또 다시 수평 이동만을 하고 있었고 조정사는 당황한 얼굴로 혼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고개를 들어 열기구 안을 바라보니 오~ 풍선 측면이 'ㄱ'자 형태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돌산에 부닺혀 바람에 끌려 올라갈 때 찢어진 모양이었다. 당연히 바구니에 웅성웅성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걱정과는 달리 급격한 추락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찢어져 펄럭이는 모양새 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출력을 최대로 올려 추락을 최대한 늦추며 돌산이 집중된 곳을 벗어나 넓은 목초지가 나오자 불시착을 시도했다. 불시착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지면에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붙어 지면에는 꽤 충격을 받으며 떨어졌다. 추락은 그 이름만으로도 손에 땀이 배었다. 역시 추락하는 것들은 날개가 없었다.

<내가 탄 열기구도 한때는 높이 날았던 적이 있었다. 바람이 불어 운행한 열기구가 많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바구니가 쓰러지지 않은 이유인지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공기가 거의 빠져 옆으로 누워버린 풍선을 보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 두려웠냐는 듯 찢어진 풍선을 배경으로 '치즈'하며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니 공포는 극복하기만 하며 도파민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샴페인 못 따게 하세요" 돌아보니 조정사가 테이블을 설치하고 샴페인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이 달려들어 가벼운 항의와 함께 그의 손에서 샴페인 따개를 빼앗아 버렸다. 샴페인을 따는 것이 열기구 여행의 마지막 행사이며 그럴 경우 환불을 못 받는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티격태격 실랑이가 벌어지고 조정사는 사무실과 연락을 취하더니 내일 다시 공짜로 운행한다는 것이었다. 난 오늘 여기를 떠날 것이므로 환불을 요구했고 관철되었다. 봉고차가 오는 동안 찢어진 풍선이 나부끼는 것을 보며 담배를 피웠는데 연기 속으로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열기구는 한 시간 코스인데 30분 탔으며 됐고, 더 높이 올라가지 못했지만 평생 상상도 못할 추락도 경험해봤다. 거기다, 아싸! 30만원 굳었다. 거봐, 공포는 지나가기만 하면 도파민 뿜뿜!! 이라고...

<님아, 그 샴페인 따지를 마오. 직업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분위기 파악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