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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가니 책상

"이슬람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었다. 모든 이교도에 대하여 출입을 불허했다. 아테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다 에게해로 나와 크레타 섬을 지나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그 곳에는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도서관이 있었다. 이교도인 난 밤이 되길 기다려 몰래 잠입하거나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한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저녁이 찾아 들면 고딕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지중해의 붉은 손길이 넘실거렸다 . 붉은 유혹에 책을 덮고 나와 지중해가 바로 바라 보이는 바위에 앉아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던 석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응시하곤 했다." - 잉글랜드 삼등훈작사 조르바 -


일행과 시와 사막에서 헤어졌다. 이집트 남부 아스완의 아부심벨로 떠나는 일행과 헤어져 사막에서 며칠을 더 머문 후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일반적인 여행 코스인 아부심벨을 뒤로 하고 알렉산드리아로 간 이유는 그 곳에 기원전 3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건립된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작성되고 보관되어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이 도서관은 오랜 세월 화재와 침략 등으로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를 인정받아 유니세프의 지원 아래 재건되었다. 이런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이 도시가 내 흥미를 끈 것은 30대 초반 한참 열중하던 온라인 게임 <대항해 시대>의 추억 때문이었다.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온라인 게임에서 잉글랜드 출신 고고학자인 내 케릭터가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애용한 루트 중 하나가 아테네-알렉산드리아 구간이었다. 머릿글에 기록한 내용이 그 당시의 게임 장면이다. 실제 키보드로 화면을 돌려 바라보던 지중해의 풍경은 묘한 동경을 자아냈는데, 그 풍경을 바라보며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게임 속에서 응시하던 지중해의 붉은 석양에 직접 휩싸이게 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맨 왼쪽에 '월'이 새겨져 있다. '워~얼' 하고 테이프 늘어지는 모양새다.>


도서관은 트램이 통과하는 복잡하고 지저분한 길을 배경으로 주변 풍경과는 이질적인 깨끗하고 현대적인 하얀색 건물이었다. 활처럼 약간 휘어진 직사각형의 전면부 넓은 벽면에는 지구상 존재하는 많은 언어가 조각 되어 있었다. 익숙한 몇몇 언어를 제외하면 상형문자라 해도 무방할만큼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한글도 포함되어 있는데 여섯 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가 찾은 건'월','세','름' 세 자 뿐이다. 초,중,종성의 조합이라는 이론에만 충실했는지 초,중,종간 간격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왠지 소리 내어 읽으면 테이프 늘어지는 소리가 날 듯 했다. 자음 크기 하나가 알파벳 크기만 하니 한글 한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이 유독 커 보였다. 누군가는 그 곳에 새겨진 글자 수로 각 언어의 우월함을 자랑하고자 하는데 재건 관련 유니세프에 기부한 기부금 액수에 비례하는 바가 크다고 하니 문화마저 우열과 차별에 이용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책과 도서관이야말로 그런 편견과 차별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이지 않을까. 도서관다운 아이디어가 돋보인 건축물이었다.


< 도서관 이용 여성들은 대부분 히잡을 착용했고 챠도르 이상의 복장은 보기 힘들었다.>


이슬람 문화권을 여행하면서 가장 관심있게 바라본 것 중 하나는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였다.도서관은 가장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장소라 여겨져 특히 눈여겨 지켜보았다. 히잡을 두른 학생들이 모여서 책을 검색하고 열람하고 공부하는 모습은 왠지 이질적이면서도 희망적이었다. 이슬람의 전통 의복은 그 개방성 순으로 나열하자면 히잡-챠도르-니깝-부르카의 순이라 할 수 있는데 히잡이 가장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도서관에도 히잡을 착용한 여성이 가장 많았으며 니깝 이상의 복장을 한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문화가 행동을 규제한다고 한다. 근데 문화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관찰자마저 규제한다. 묘하게도 니깝이나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을 볼 때마다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는 나의 행동 하나 하나를 스스로 규제하게 만드는 자기 검열에 빠지곤 했다. 반나절 정도 도서관에 머물렀다. 주로 문학과 인문학 관련 서가를 돌아다녔는데 문학 관련 한글 서적은 한 권도 찾지 못했고 인문학 쪽에만 세 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 


<아마 지금은 한강의 소설들이 많이 자리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바닷길은 석양이 지중해를 서서히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도시 한 끝을 물들이기 시작한 노을이 굽이 도는 해안길을 돌아 숙소 앞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몰래 내 뒤를 밟아 이 곳까지 침범해 있었다. 오래된 성벽처럼 자리한 방파제 한 끝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면 하늘과 바다 전체가 붉어질 것이었다. 순간 검은 실루엣이 나를 지나치는가 싶더니 석양 속으로 성큼 성큼 걸어갔다. 석양 속으로 낚싯대를 던지는 노인의 뒷모습이 노을 속에 박제 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풍경이 되어 버린 듯했다. 대항해 시대의 어느 촌부와도 같았다. 구태여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백년 만에 도래한 것에 감격하다 웃음이 나왔다. 대항해시대 내가 타고 온 갤리선이 보이는 듯 했다. 노를 저어 다시 아테네로 가야 하나!!! 

<가끔 풍경이 되는 피사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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