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1.5세대, 우리 세대의 한국 여성인 저자(이민진, Min Jin Lee)이 역시 그와 비슷한 background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다.
미국에 있을때 반즈앤노블의 서가에서 발견하고...한국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이라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뛰어난 두뇌와 매력적인 외모 및 성격을 타고났지만 한편으로 뉴욕의 퀸즈 한인타운 세탁소에서 일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여주인공 Casey Han이.......대학(프린스턴 대학, 경제학 전공을 장학금으로 다님) 문을 나선 이후 몇년 동안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이다.
93년에 시작해서......그로부터 한 4-5년 되는 세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딱 내 세대의 이야기이다. 저자가 68년생인데 주인공이 자기보다 2살 어리다고 했으니....케이시는 70년생.....나보다 한 살 많다.)
호기롭게 제일 잘나가는 투자은행 딱 한곳에 지원했다 떨어져 취직도 못하고, 컬럼비아 로스쿨을 합격했지만 변호사라는 장래희망이 '글자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 입학을 보류하고....졸지에 백수 상태가 된 여주인공은 그를 탐탁지 못해하는 아버지에게 싸가지없는 말로 대들다가 얼굴이 팅팅붓게 얻어맞고 의절당해 쫓겨난다. 그 후....대학내내 사귀었던 백인 남친 집에 갔더니 그가 원나잇스탠드로 만난 여자 둘이랑 그짓을 하고 있는걸 목격하고...
암튼 책의 첫머리에 트리플 악재를 겪고나서...
여주인공 케이시는 우연이 이끄는 대로 이런 저런 사람들과 사건들에 얽히게 된다.
어릴적 교회에서 알던 Ella Shim이라는 친구의 도움으로 그 집에서 기거하고...그녀의 약혼자의 도움으로 월가 투자은행의 보잘것없는 직책(sales assistant -일종의 비서 비슷한..)이나마 돈벌이를 하면서 시간을 죽이다가...월가 쪽에서 승부를 보려고 경영대학원(NYU Stern)에 진학한다. 그 후.....케이시가 학부 졸업하며 지원했다 떨어졌고, 그 후 sales assistant로 일했던 예의 그 투자은행...(소설에서는 Kearn Davis라는 가공의 이름으로 나온다. IB의 독보적 1위라는 설정이니...아마 모건 스탠리? 골드만 삭스? 암튼 학교이름은 다 진짜로 나오는데 회사이름은 가공이어서 처음에 쫌 이상하게 느껴졌다......하지만...하긴 학교는 어느정도 공적인거고 회사는 사적인 거니까 그럴만 하구나...싶었다.) 에 summer intern 으로 들어가 죽자고 일하며...그 세계의 쓴맛 단맛을 보아가다가...결국 나름대로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늘 돈에 고픈, 돈이 모자라 쩔쩔매는 케이시는 대학시절부터 주말이면 럭셔리 백화점의 모자코너에서 판매원으로 알바를 뛰어왔는데...이 백화점을 소유한 한국인 중년 여성인 Sabine가 내내 케이시의 멘터 내지는 후원자를 자청한다. (하지만 케이시는 그녀의 도움도 궁극적으로는 거절한다.)
케이시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이민자의 딸로서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월스트리트라는 돈과 신분상승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 도덕과 아름다움의 불모지대에 뛰어들었지만 그녀가 진짜로 지향하는건..............그 너머의 세계..."미"와 "스타일" 그리고 "여유"와 "개성"과 같은....진정한 상류사회의 "열매"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상징이 바로 "모자"이다. 케이시는 주말에 알바로 모자 판매원으로 일할뿐 아니라 FIT에서 야간으로 모자만들기(millinery)를 배운다.
그게 케이시의 커리어에 관한 측면이라면...
그녀의 연애사는...
대학시절 애인이었던 Jay...엘라의 사촌이자 한국 교포인 Unu...그밖에 스쳐지나가는 남자 Hugh...등이 그녀의 인생에 얽힌다. 섹스도 양념으로 간간하게 등장한다.
그 외에...케이시의 친구인 엘라와 남편인 Ted Kim의 이야기...케이시의 부모...(특히 케이시 엄마의 어처구니없는 affair...ㅡ,.ㅡ 케이시의 부모는 아주 쪼끔 공감가고 안쓰럽지만 대략 답답하고 짜증나는 캐릭터들이다.) 케이시의 여동생 Tina의 결혼 이야기...등등이 곁다리로 엮어진다.
뭐 이렇게 적어놓은 줄거리만을 봐서는 별로 구미에 당길거 같지 않은데..........
막상 책을 읽어...........결말을 보면...더 화가날 지도 모른다.
(이건 열린 결말도 아니고 엉뚱한 반전도 아니고........한마디로 김새는 결말.)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재미 있다는 점.
저자가 정말이지 글.재.주.가 있다. 그야말로 문장이 흡입력이 있다.
대화와 인물 성격 묘사도 탁월하고...
군데군데 탁월하다는 생각이 드는 표현들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에 대한 비평을 보면...
NYT Book Review에서도...19세기 소설을 연상시킨다고 했고...
또 다른 서평에서는 Thackeray의 'Vanity Fair'의 메아리...라고 했다.
그러니까...첨예한 계급과 돈 문제를 배경으로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주인공이 로맨스와 야망을 펼쳐나가는 줄거리...사실주의적인 묘사....그런 면에서 그런 소설들과 닮았다는게 아닌지....
나는 쌔커리의 베니티 페어를 책으로는 안읽어봤고 리즈 위더스푼이 나오는 영화로만 봤는데...(아무리 생각해도 위더스푼은 그 역에는 어울리지 않는듯. 귀여운 부잣집 공주님 스탈이지...팜므파탈적 미모와 지략으로 신분을 뛰어넘어 야망을 실현해나가는 여쥔공 역에는 영.....누가 어울릴까...마구 상상해보니...나탈리 포트만?...나름 고전적이고 완벽한 미모에...탁 봐도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똑똑함마저...헝그리 정신도 잘 표현해낼만한 강렬한 인상이고..) 그 책의 여주인공이나 이 책의 케이시나...자신의 능력으로, 때로는 매력을 이용해서....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배경을 뛰쳐나와 신분상승을 시도하지만...궁극적으로 그녀들이 돈(또는 부자들)을 정복한게 아니라 돈(또는 부자들)이 그녀들을 정복하고 남용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그런 의미에서 free food가 바로 Casey???)
한편으로 ....
케이시와 엘라의 대조적인 성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과 멜라니가 떠오르기도 했고...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비, 패션, 섹스에 대한 욕망의 묘사는...'섹스 인 더 시티'가 떠오르기도 했고...
빈털털이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이쁜 옷을 보면 질러버리고...친구들과 만나도 호기롭게 쏘지 않고 못견디는 케이시의 모습은...The Confession of the Shopperholic을 연상시켰다....ㅡ,.ㅡ
또한 케이시 주변의 대조적인 두 부류의 엘리트들....(돈과 계급에 대한 욕망이 끝이 없는 Ted Kim 비롯 월스트릿의 investment bankers vs. 돈도 있고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나 기본적으로 섬세하고 이상주의적인 Ella Shim, David Greene, Unu Shim 등)은...예전에 David Brooks가 Bobos in the Paradise에서 묘사한 두 부류의 엘리트들...Predator vs Nurturer의 구분을 재확인시켜주는 느낌이었다.
한편....그리는 주제나 소재는 확연히 다르지만...아시아계 이민자인 저자가 그가 속한 사회와 삶을 그려냈다는 점에서....에이미 탄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독자들의 요구라는 면에 있어서도 역시 에이미 탄의 소설들과 비슷한 niche를 점할 듯 하고....살짝 현실보다 윤색해서 그려낸 주인공과 그들의 삶...(larger than life 가 아니라 prettier than life?)...우아하고 아름다운 문체...등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Min Jin Lee의 문체가 좀 더 다이내믹하고 현대적이고 재치넘치는 면이 있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이 연상시키는 또 다른 책은...예전에 신문에 연재되었던 덕분에!!! 읽어본....정이현의 '나의 달콤한 도시'이다. 온갖 유혹과 좌절이 듥끓는 대도시에서...젊은 여성이 겪어나가는 모험....다양하고 방종한 연애담....적당히 달꼼쌉싸름하고...적당히 fancy하면서...적당히 고뇌가 묻어있고...적당히 가볍고 또 적당히 무거운....그런 면에서....
(책 한 권을 읽거나, 영화 한 편을 보면 과거의 오만가지 책과 영화가 떠오르는 나의 버릇)
사실 어떤 진중한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학적 완성도 높은 플롯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의 배경이...가난한 이민 가정이라는 고뇌를 포함하고 있고....저자 이력이 월스트릿이나 아이비 리그를 배경으로 그려낼만한 credential을 갖추고 있다는 점(저자는 예일대와 조지타운 로스쿨을 졸업한후 변호사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이 아니면 가볍고 감각적인 Chick lit과 구분하기 어렵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결론적으로...이 책이 별로다...........라는건 아니다.
데뷔작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이민진은 분명히 재능있는 작가라고 생각되고...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있고 흡인력있는 책이다.
그녀의 후속작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