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9:30)로 가족들과 아바타를 보고 왔다.
과연.............시각적, 운동감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놀라운 수준의 컴퓨터 그래픽, 우화와 같이 단순하고 얼핏 유치한 설정이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스토리, 공감가는 캐릭터들........만족스러운 영화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처럼...
영화의 이런저런 설정들, 요소들은 인간 문화(역사와 문학, 영화 등등)의 다른 곳에서 빌려오고 패러디하고 짜깁기했다
나비족 vs. 지구인들은....18~19세기 서구의 침략자들과 아메리카 및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구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무슨무슨늄이라는 값비싼 금속을 캐내기 위해 나비족의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지구인들...
그것은 마치 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금과 은을 캐간 스페인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전체 팀의 보스이자 구체적으로는 "회사"를 대표하는, 오직 이익만을 생각하는 비지니스맨, 증오와 호전성으로 똘똘 뭉친 무슨므슨 대령과 그가 지휘하는 군인들, 그리고 이들과 한 배를 타고 있지만 지적 호기심을 동기로 삼고 있으며 외계인과의 외교적 해결책을 꿈꾸는 과학자들...........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며 서구 문명의 발달을 이끌어온 상징적인 세 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나비인들은 서구인들이 꿈꾸어온 이.상.적.인. 미개인 집단을 상징한다. 겸손하게 자연의 일부로서 주변 환경, 동식물들과 교감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인간........사냥감을 죽이고 그 영혼에 사죄하는 주문을 외우고 땅과 공기와 식물 속을 흐르는 에너지(기)를 느끼고 조상의 영혼과 어머니 대자연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판도라 행성의 자연은...마치 쥐라기의 지구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무성하고 풍부하고 생명력 넘치는 곳이다. 거대 식물들이 울창하고 무성한 숲, 철갑을 두른 듯 한 거대한 괴물같은 동물들...(척추동물의 신체구조를 갖고 동시에 외골격(exoskeleton)인 동물이 진화한다는게 가능한가...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디스토피아와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자연과 미개인들의 삶을 동경하는 테마는......
헉슬리의 "위대한 신세계" 이래로 계속해서 되풀이된 다소 진부한 이야기이다.
잠시...........내가 얼마 전에 번역한 <넌제로>라는 책의 주제가 떠올랐다. 로버트 라이트는 그런 미개인들을 미화하는 인류학자들이 위선자였고 심지어 지적 사기꾼이었음을 지적했다(그는 인류 역사가 발달하면서 도덕과 선이 진보해왔다고 주장하는 편이니만큼).
나 개인적으로는....미개한 문명의 사람들이 발달된 문명의 사람들보다 더 선한지 악한지는 비교하기 어려운 질문이고....다만 역사적으로 발달된 문명이 덜 발달된 문명을 늘 짓밟고 못할짓 하고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고.......악에 대한 잠재력이야 어느 인간 집단이나 비슷할 지언정, 그들이 행한 악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것이 사실이니만큼..........악어의 눈물처럼이나마...반성하고 사죄하는 모습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미개부족의 모든 것을 미화하고...지금 현재 지구의 온갖 문제 덩어리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너무 안일하고 유치한 퇴행이 아닐까..............생각한다.
예컨대....."나는 과학자야. 그래서 동화를 믿지 않아"라고 말했던 그녀, 그레이스 박사가 나비족의 샤머니즘 의식 속에서 그들의 여신을 대면하면서 신비주의로 빠져버린 것이라든지....
안그래도...올 겨울 코펜하겐 COP15로 새삼 부각된 지구온난화 문제를 비롯해서....
과학기술의 발달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 현대 문명의 이기심과 탐욕, 끊임없는 전쟁과 갈등에 대한 진절머리...
이런 것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자연과의 탯줄이 끊어지지 않은 야만상태에 대한 향수와 동경이 유난히 호소력을 갖는게 아닌가.............싶다.
영화에서...........식물들이 마치 인간의 신경망처럼 정보와 에너지의 흐름을 관장하는 network 역할을 한다는 것...그리하여 간접적으로 나비인들의 소원을 들어주고...마지막 순간 판도라 행성의 모든 동물이 동원되어 총공세에 나선다는 이야기...
나름 독창성이 빛나는(어린이 만화영화수준의 독창성이긴 하지만^^) 설정이었다.
아바타 프로젝트 자체나 또 군인들이 타고다니는 로봇을 조종하는 방식 등등은...요즘 과학계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는 (SF계에서야 이미 진부하달 수 있는) telekinetics 기술을 보여준다. 뇌에 전극을 연결해 뇌파를 통해 멀리 떨어진 기계를 움직이는 기술....이미 몇년 전에 미국의 두 대학에서 한 곳에서 원숭이의 뇌파에 전극을 연결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컴퓨터 장치의 bar를 움직이는 것을 보여준 일이 기억난다. 한편 미국 국방부 연구기관(DARPA)에서는 사람의 근육의 움직임을 극대화해서(amplify)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입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에서 들은 일이 있다.
그런데..............지구인들의 무기(전투함, 헬기, 로봇, 군인들 행색 등등)는 광속에 가까운 우주비행을 하는 미래시대와 어울리지 않게........냉전시대를 연상시키는 재래식 삘이 났다. (솔직히...생물의 공격에 무참히 깨지고 박살나는 무기들의 성능 역시 재래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
그건 그냥......감독의 의도적 설정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군인"에 대한 stereotype을 (호전적이고 사악한 지휘부, 단순무식한 장병들)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나비족이 그대로 지구상의 미개인들의 문화를 모델로 하듯, 지구인 군대 역시 근현대사 속의 "미군"들을 그대로 따온 듯.........
역시 감독은 SF적 미래를 배경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우리의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확인시켜주는 부분이었다.
(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와 상상,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서 골고루 필요한 것을 그러모아붙인 모자이크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아무튼간에~~~ 즐겁고 멋진 시간이었다.
표가 모두 매진되어 보통 영화로 봤지만..............3D로 다시 한번 보고픈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