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2박 3일의 일정으로 홍콩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여동생과 함께였고 나는 우리 둘다 쾌적하게 잠자리에 들자며 투베드룸 객실을 예약해두었더랬다. 가격은 비싸지만, 너 나 코고는 거 너무나 시끄러워 하잖아, 하면서. 그렇게 이틀에 70만원인 큰 객실을 예약해두고는 너무 바빠 여행에 대해 다른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출발 전날에야 부랴부랴 호텔 근처에 달리기 좋을 만한 곳이 있는지, 공항에서 시내는 어떻게 가는지, 대중교통은 일반 신용카드로 결제되는지 찾아보았고, 오랜만에 가는 것인만큼(아마도 8년만?) 입국신고서도 작성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공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구룡역에서 내려 우버를 잡아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내가 생각한것보다 더 낡고 작았다. 흠.. 70만원.. 그 객실만 좋은건가, 하고 체크인을 하는데, 아니 직원이 룸을 업그레이드 해줬다는 게 아닌가! 오오, 가뜩이나 좋은 룸을 업그레이드 해줬다니, 그러면 얼마나 더 좋다는거야? 하고 부푼 마음을 안고 카드키를 대고 객실에 들어갔는데, 어?
싱글 베드 두개가 초라하게 놓인 작은 방이 아닌가! 이게.. 뭐여? 나는 혹시 다른 문이 있고 연결된 룸이 있는건가 싶어 살펴봤지만, 아니었다. 작은 객실이었다. 나는 내가 생각한 룸과 달라서 일단 직원에게 따지기 전에 내 예약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분명 침실 두 개 큰 룸이었는데, 자, 예약 확인을 해보자.
그렇게 아고다를 들어가 내 예약을 확인해보니, 맨 위에 홍콩 예약이 잡혀있고 그걸 클릭하니 내가 지금 체크인한 호텔이 있고, 그걸 눌러보니 작은 수페리어 룸에 싱글베드 두 개로 되어있는거다. 뭐야? 이 객실이 맞네? 나 귀신에 홀린건가? 왜 계속 베드룸 두 개라고 생각했지? 하다가,
아!
벼락같은 깨달음!
나는 이 벼락같은 깨달음에 주저앉았다. 하...
나는 역대급 실수를 저질렀다. 여행인생 몇년차인데, 그 숱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미친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니까,
나는 호텔 두 개를 예약해 두었더랬다.
여동생은 호텔에 굳이 돈 쓰지 말자는 사람이고, 나는 쾌적하고 넓은 데서 자자는 사람이라서 일단 호텔 두 개를 예약한 뒤에, 그 뒤에 여동생을 설득한거다. 큰 데서 자자, 물론 돈은 더 쓰지만 너 나 코고는 소리 시끄러워서 잠 잘 못자잖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바보같이, 등신 머저리같이, 그렇게 동생의 허락을 받아두고서, 이 쪼꼬만 호텔을 취소를 안한 것이었고, 이 쪼꼬만 호텔이 내 아고다 예약 화면의 젤 위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오는 장소는 여기로 했던거다. 하..
나는 제발 아니기를 바라면서 간절한 마음응로 스크롤을 내렸다. 제발 내가 실수로 큰 호텔을 취소한 것이기를 바랐다. 스크롤 내리면서 그 짧은 순간, 나는 내가 취소한 기억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아니나다를까, 큰 호텔은 나의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취소 불가한 체크인 당일이었다! 하-
나는 여동생에게 말하고 일단 짐을 풀기 전 로비로 내려가 지금 체크인한 호텔에 우리가 취소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미 체크인한 뒤라 당연히 안된다는 답이 돌아왔고, 나는 하는수없이 아고다에 전화를 했다. 아고다 전화번호를 챗지피티에 물어보고 음성 안내를 기다리는데, 이 빌어먹을 음성 안내가 예약번호를 누르라고 해서 그건 눌렀는데 예약한 카드 뒷자리 네자리를 누르라는게 아닌가. 나는 또 그 카드를 안가져왔어. 그 카드가 한국에 있어. 나는 전화를 끊고 카드앱으로 들어가 내 카드 번호를 확인한뒤 다시 아고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힘들게 드디어 상담원이 연결되었을 때, 내 사정을 말했다. 내 실수다, 이건 내가 실수한 거 맞는데, 혹시라도 체크인 하기 전의 호텔을 취소할 순 없느냐, 부탁좀 하겠다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체크인하지 못한 큰 호텔은 체크인 당일 취소하면 50프로를 돌려준다고 했다. 그렇게 나에게 35만원을 환불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체크인한 호텔은 이미 체크인을 해서 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얼른 선택해야 했다. 나는 큰 객실에서 여동생과 각자 다른 방에 묵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 객실에 체크인을 하게 된다면,
1. 일단 택시를 타고 다시 이동해야 했고
2. 지금 이곳의 숙박비 48만원을 버려야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 호텔에 그대로 숙박한다면
1. 그냥 여기에 짐을 풀고
2. 35만원을 버려야 했다.
나는 여동생과 급하게 의논해서 결국 큰 호텔을 취소하고 35만원을 버리는 걸 택했다. 하..각자의 침실로 돌아가 잠들고 싶었는데, 호텔 안에서 움직이고 싶었는데, 나는 35만원이란 돈도 날리고, 코딱지 만한 방에서 여동생과 함께 잠들어야 했으며, 여동생은 하는 수없이 잠을 포기해야 했다. 나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 미안해..
하.. 어떻게 이런 실수를.
내 35만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나를 자책하기에 바빴다.
만약, 더 위에 있는 호텔이 큰 호텔이었다면, 나는 큰 호텔에 체크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다른 호텔을 취소했다는 사실을 체크인전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큰 호텔이라면 내가 예상한 바로 그것과 맞아떨어졌기에, 나의 취소를 못했다는 사실 조차 잊었을 것이기에 48만원을 나도 모르게 날렸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된게 다행이다 싶으면서, 아니, 왜 여동생에게 큰 호텔에서 묵자고 설득한 그 날, 여동생의 허락을 받은 그 날, 그 날 취소를 하지 않은걸까 몹시 후회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취소했으면 되는데, 대체 왜? 심지어 8월 초까지 무료취소 가능한 호텔이었다고!! ㅠㅠ
나는 바빴다. 정말 바빴다.
8월들어 지금까지 나는 집에서 온전히 쉬어본 적이 단 하루도 없다. 휴가를 다녀왔고, 그 후에는 퇴근후에 언제나 다른 일정이 있었고, 주말에는 내 생일 때문에 역시 계속 일정이 있었다. 나는 정말 정신없고 피곤했다. 정신없고 피곤해서 호텔을 취소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그러나 여동생과 호텔 얘기한 건 7월 말이었고, 그 날 취소했으면 되는데, 그 날...
나는 35만원을 그냥 날렸다. 하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미쳐버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속이 너무 아프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채경이에게도 이 사실을 얘기했는데, 내가 실수한 건 맞고 그렇게 자책할 순 있지만, 앞으로 안그러면 된다고 나를 바보로 생각하는 일을 그만하라고 했다. 하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내 35만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냥 처음부터 여동생에게 맞춰 작은 방 잡았어도 되는데, 이번에 자보니까 뭐 괜찮던데, 굳이 그걸 크게 잡겠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가 싫다 진짜 내가 싫어 ㅠㅠ 하... 나는 좀처럼 나를 싫어하는 일이 없는데, 이번 여행에서 진짜 얼마나 멘붕이 오고 내가 싫었는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 내 돈 35만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나마 달리기 좋은 곳이 주변에 있어서 위안 삼으려고 했는데, 달리기 좋은 장소가 있는건 맞았지만(바닷가 옆이었다!), 달리려고 했던 둘째날 아침 허리가 아파서 달리지 못했다. 그나마 여동생은 즐겁게 8.15km 를 달려 다행이었다. 하...
수시로 35만원 생각에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되었지만, 그래도 어그적 어그적 여동생과 돌아다니며 먹고 마셨다. 내가 혼자라면 먹을 생각 하지 않았을 거위 덮밥도, 여동생 덕분에 먹어보게 되었다. 나는 그냥 그랬는데, 여동생은 홍콩에서 먹은 것중 거위덮밥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어그적 어그적 걸으며(나는 허리가 아팠고 여동생은 달린 후에 오금이 아파서), 우리에게 제일 잘 맞는 여행은 어그적 어그적 여행이구나 했다. 첫날은 코를 별로 안골았다는데 둘째날은 천둥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둘째날은 술을 좀 마시고 자서 그런가보다. 휴.. 아무튼 진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여행이었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야 해. 내 예약에 홍콩이 있고 여수가 있었는데, 그렇게 홍콩을 들어가면 내가 체크인한 호텔이 보이고 밑에 뭐가 더 있었는데, 그걸 눌렀어야 했는데 나름 그냥 뭐 연관된 여행 추천이겠지, 이러고 무시한 나를 매우 친다. 나의 싸다귀를 날리고 싶다. 정신 똑바로 차려 진짜!! 하... 내가 싫었어..... 자꾸만 자꾸만 생각난다. 나의 35만원 ㅠㅠ 너무나 큰 돈 ㅠㅠ 내 실수로 날려버린 돈 ㅠㅠ 내 바보비용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책을 샀다.
책을 읽지도 못하고 있는데(정말 너무나, 너무나 바쁘다 ㅠㅠ) 사는건 계속 하고 있어서 미쳐버려..

위의 두 권은 다정한 알라디너로부터의 생일선물 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내가 장바구니에 넣었던 책인데 쑝- 하고 왔다. [피날레]는 몰랐던 책이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
이 다정한 알라디너는 늘 읽고 싶었던 책을 기막히게 캐치해서 선물해주곤 한다. 감사합니다!
[아녜스 바르다의 말]은 벼르고 있다가 최근에 잠자냥 님 서재에서 아녜스 바르다 관련 글을 읽고 사게 되었다. 살 때는 내가 산 구매내역이 없길래 마음 놓고 샀는데, 막상 받고나니 나 이거 샀나... 싶어져서 다소 불안하긴 하다.
[신성한 제인에어 북클럽]은 단발머리 님 서재에서 보고 사게 되었다. 이것도 검색해보니 내가 사지 않은 책이라 사긴 했는데, 역시나 받고보니 '나 이거 있나?' 하는 의심이 들어버려.. 그러나 굳이 집 책장을 뒤지지는 않기로 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팔레스타인의 대표적 저항문학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샀다. 현재를 살면서 팔레스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닌가. 나는 이렇게 책으로 그들의 말을 들어보겠다 하는 마음이다.
하...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고, 벌써 8월 18일이고, 나에게 아직 읽어야 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5~13권이 남아있고, [비커밍]도 있고... 그런데 퇴근하면 항상 일정이 있고, 주말에는 약속이 있고... 회사에선 늘 바쁘고.... 나의 독서, 이대로 괜찮은가 ㅠㅠ
게다가 지난주부터 몸에 뭐가 뽈록뽈록 올라왔는데, 이게 뭔지 모르겠어. 집에 있는 연고를 바르고 가려움을 가라앉히고 있지만,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