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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이라 그랬어
  • 김애란
  • 15,120원 (10%840)
  • 2025-06-20
  • : 255,042

"어떤 진실은 어떤 고통은 반드시 그 사람이 말하고 싶어하는 속도로 말하고 싶어하는 분량만큼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애란이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문학이란 말하는 이에 특화된 것이라며 바로 저렇게 말했다. 소설가이니만큼 문학에 대해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그런데 저 문장이 특히 좋아서 나는 김애란의 책을 부랴부랴 사서 읽었다. 그렇다면 김애란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하는 것도 역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김애란의 작품을 통해서 나를 만났다. 더 정확히는 모순된 나, 내적 갈등에 휩싸이는 나, 를 본 것이다. 그리고 결코 '선하지 않은' 나를 말이다.


선하지 않은 나, 는 나에 대한 것이면서 동시에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기도 할것이다. 정확히는 중산층에 속한 사람들 혹은 중산층 근처에서 맴도는 사람들 말이다. 대표적으로 나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의 경우는 내가 번 돈으로 여행을 갈 수 있고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번 돈으로 강남에 집을 살 수 없고 명품백을 살 수 없으며 일류 호텔에 숙박할 수도 없다. 내 주변엔 대부분 나랑 비슷한 경제적 형편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고만고만한 사정을 가지고 늘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얼마전에 친구를 만난 나는, 그 친구에게  대출 받아 집을 사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껏 살아보니, 전세를 살다가는 삶이 업그레이드 되기 힘들더라, 2년있다 전세보증금으로 다시 전세를 구하려면 집값이 올라 내가 살 집은 다운그레이드가 된다, 대출 싫다고 돈 모아서 집 사려고 하면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집값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팍팍 올라버린다, 그러니 대출을 받아서 일단 대출금을 갚아 나가면, 더이상 계약 기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게다가 운이 좋으면 내가 있는 대출 다 갚은 후에 내 집값은 오를 수도 있지 않냐, 는 것이 내가 말한 취지였다. 친구 역시 요즘 집을 사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대출을 끼고 사는것 말이다. 


주변에는 집을 산 친구도 있고 그리고 집을 산 친구를 시기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니가, 나랑 형편이 비슷한 걸로 생각했는데 어떻게 니가, 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정말 있다. 다른 사람의 기쁜 일에 같이 기뻐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다른 사람들의 슬픈 일에는 진심으로 공감도 해줄 수 있고 위로도 해줄 수 있지만, 좋은 일에 축하는 조금 다른 얘기다. 나랑 비슷한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나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것 같다 싶으면,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든거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돈에 관련된 것이다. 집, 차, 연봉. 



누군가 '잘 산다'는 것의 의미는 대체적으로 돈에 관련된 것이다. 부족함 없이 잘 산다, 여유롭게 잘 산다는 말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 잘 사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거나 그리고 그 잘 사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고 그렇기 때문에 잘 살지 못하는 것을 감추고 싶어한다.


이 책 속의 첫번째 단편 <홈 파티> 가 바로 그 '자랑'과 '감춤'에 대한 얘기다. 비슷한 경제적 형편과 문화적 자본을 가진 자들이 정기적으로 함께 밥을 먹으면서 값비싼 찻잔을 자랑하지만, 그런데 못사는 사람들이 집도 없고 차도 없으면서 왜 명품백을 가지고 있을까, 한심하게 여기며 험담한다. 이때 그 집에 초대받은 가난한 연극 배우는, 그것은 자신의 가난을 감추고 싶어서가 아니겠느냐는 말을 한다. 사실 나는, 명품백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가 감추고 싶어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시선이 신선했다. 그리고 그것이 맞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가지고 다니면서 드러낼 수 있는 소품으로 가방만한 게 어디있을까. 그것은 과시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감춤이 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이 작품 <홈 파티>는, '이디스 워튼'의 <징구>를 생각나게 한다.


<숲속 작은 집>은 내가 가장 안타깝게 그리고 가장 찔리게 읽은 작품이다. 주인공 부부는 동남아의 근사한 숙박업소를 예약해 거기에 한달간 머무르는데, 거기에서 메이드에게 팁을 주는 문제로 신경을 쓴다. 이만큼은 적을까 혹은 많을까, 그렇게 팁을 두고 갔더니 방이 더 깨끗해지는 걸 보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돈 줬다고 더 신경쓰냐, 하는 실망감까지. 신경써줘 고맙다고 신경써달라고 돈을 준거지만, 그런데 돈을 줬다고 신경 쓰다니, 하면서 실망하는 인간이 바로 나 아닌가. 나는 이 작품에서 '모순된 나'를 만났다. 나는 자본주의가 사회악이라고 생각하고, 자본주의만 뿌리 뽑아도 세상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한편, 내가 돈 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본주의에 가장 길들여져 있는게 또 내가 아닌가 말이다. 돈 쓰는 일은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가. 돈 좀 더 쓰고 좋은 비행기 타자, 돈 좀 더 쓰고 좋은 호텔 가자고 내가 나에게 얼마나 많이 말하는가. 그리고 백화점에 가 결제를 할 때 신나거든. 이렇게 돈 쓰는 걸 좋아하는 내가, 그런데 자본주의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나란 인간은 얼마나 모순적이란 말인가. 게다가 이 작품속에서 아내는 호텔 메이드를 '메이드라고 부르지 말자'고 남편에게 제안한다. 그건 어쩐지 좀 아닌 것 같으니, 우리라도 그렇게 부르지 말자는 거다. 남편은 그렇다면 뭐라 부르냐, 묻고,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아내는,


-그냥 '청소해주시는 분'은 어때? -p.79


라고 말한다. 이내 남편은 풋, 하고 웃어버리는데,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그건 너무 설명적인데다가 비경제적이고 음, 이런 얘기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살짝 기만적인 느낌마저 들어" -p.79


나는 아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지만, 그러나 메이드를 '청소해주시는 분'이라고 부르자는 것에 기만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어떤 호칭은 그리고 어떤 지칭은 멸칭이기도 하지만, 그걸 가리는 것이 때때로 기만이기도 한 것은 사실이지 않나. 남편은 '섹스를 섹스라 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이 떠오른다'(p.80) 고 하는데, 나 역시 그랬다. 메이드라 부르지 말고 '청소해주시는 분'이라고 부르자는 아내의 말은, 내게는 기만적으로 느껴졌고, 좀 더 솔직해지자면, 물론 그 안에 다른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는 하겠으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나'가 있는 것 같은거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나라고 없을까? 사실 내가 누군가를 어떻게 부르고 혹은 어떻게 지칭하는지에 과연, '깨어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없었을까? 나는 순수하게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바꾸거나 금지하려고 한걸까? 



<좋은 이웃> 에서도 역시 나를 만났다. 화자는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한 사람이 자기보다 더 경제적 형편이 낫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기분이 몹시 나빠지는데, 가끔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누군가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졌을 때, 이를테면 더 좋은 집에 산다거나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됐을때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나는 김애란의 이 책을 읽으면서 김애란이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 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소설이고 문학이니 뜻하는 바가 있을테니 말이다. 김애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 책을 읽은 독자인 나로서는, 사람들은 그렇게 선하지 않다, 는 것이었다. 쿨한 사람은 없고 쿨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것처럼, 선한 사람은 없고 선하게 보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거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사람중의 하나이고. 


사실 가장 많이 나에 대해 떠올린 건, SNS 에서 누군가를 보며 그 사람의 경제적 능력에 대해 떠올렸던 나다. 그러니까 러시아였나 폴란드였나, 어디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삼십대 초반의 여성이 도심 한가운데 높은 곳, 거실에서는 통유리로 도시 뷰가 보이는 집에 사는 거다. 그녀는 그 집에서 살면서 피부 관리를 받으러 가거나 늘 여행을 다녔다. 나는 이십년이상 일했지만 저런 집은 감히 꿈도 못꾸는데, 내가 앞으로 이십년이상 더 일해도 저런 집에 살지는 못할텐데, 그런데 도시뷰는 내가 얼마나 꿈꿔오던 곳이던가!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젊은 나이에 저게 가능했을까, 하면서 공간과 돈에 대해 생각했던 내가, 이 책에서 자꾸 보였다. 이것은 이상하다, 부조리하다, 왜 열심히 돈 버는 나는 저런 집에 못살고,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이)는 저 사람은 저런 집에 살까.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얼마나 부조리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나. 그러면서도 자본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그 안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내가 또 있지 않은가. 그런 한편, 전세 기간이 되어 다시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지금 가진 돈으로 같은 수준의 집을 전세로 얻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하던 지인도 생각났다. 왜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데 살 집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나. 역시 자본주의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 라고 생각하다가도 어김없이 그 안에서 즐기고 있는 나를 만나는 거다. 그리고 그런 내가, 김애란의 책에서 보였던 거다. 여기에는 그녀의 과시가, 그리고 그 부(rich)로 인한 다른 어떤 것의 감춤이 있었고, 드러난 부를 보고 부러워하는 (나의)질투가 있다.


오, 신이시여..



나는 모순된 나를 만나는 것이 괴롭다. 몹시 괴롭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모순된 나를 자꾸 보게 된다.

김애란은 문학이 하는 일은 화자가 말하고 싶은 속도로 말하고 싶은 분량만큼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무언가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천천히 세상을 바꾼다, 라고 했다. 김애란이 문학에 대해 하는 말에 동의한다. 그 말은 다 맞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꾸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혹은 '삶'을 읽으면서, 결국은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 문학이 하는 일인 것 같다. 나는 모순된 나를 만나고, 그리고 괴롭다. 김애란이 보여준 어떤 이들의 민낯이, 그런데 가끔 나의 민낯이기도 해서 수치스럽다. 활자로 나의 수치를 들여다보게 하는 일이 문학이 하는 일인 것 같다. 그러니까 문학이 하는 많은 일들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나는 김애란의 이 작품들 속에서 과시하는 이도 그리고 질투하는 이도, 그리고 선한척 하는 이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수치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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