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마지막 키스















나는 중년의 싱글 여성이고 앞으로도 아마 싱글로 나이들어 노년을 맞이하게 될것이므로,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이 많다. 살고 싶은 모습도 자주 그려본다. 제일 먼저 그려보는 건 혼자 사는 집에 큰 서재를 마련하는 거다. 현재는 거실에 마련하고 싶은데, 막상 혼자 거주하게 될 때 어디에 서재를 갖출 지 모르겠다. 그래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책들이 나를 맞이해주었으면 좋겠다. 혹여라도 다른 사람들이 방문한다면, 그 때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보는 것이 나의 책들이길 바란다. 나는 가끔 가족들에게도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말했다.


"내 책과 나만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


라고 말이다. 


그렇게 될 날이 오겠지만, 과연 언제가 될지.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한편, 노동을 빼놓을 수 없다. 나를 먹여 살릴 사람은 나 뿐이기 때문에, 나에겐 노동이, 노동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필요하다. 내가 주식 투자를 잘 하는 사람이라서 주식으로 큰 돈을 벌게 된다면 노동을 할 '필요'는 없게 되겠지만, 주식에는 영 재능이 없을 뿐더러, 설사 재능이 있다해도 나에겐 약간의 노동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라비 알라메딘'의 책, [불필요한 여자] 의 주인공 '일리야' 처럼, 일흔두 살이 되었을 때, 그 때는 육체적 노동은 좀 힘들테니, 정신적 노동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싶다. 일리야는 서점에서 일하면서 취미로 번역을 한다. 그러나 일리야의 번역은 돈을 벌어들이는 번역이 아니다. 그녀는 혼자 묵묵히 번역을 하고, 그리고 다 된 종이들을 한 권으로 묵지도 않은 채 박스에 넣어 가정부 화장실에 쌓아둔다. 


노동에 앞서 운동은 더 필요할 것이다. 건강한 몸이 있어야 설사 정신 노동을 한다고 해도 체력이 버텨줄테니까. 지금 달리기에 예전처럼 열정을 가지지 않았어도, 그래도 가끔이라도 나가서 조금이라도 달리는 건, 나중에 달리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다. 달리는 감각을 잊지 말아야지, 그래야 예순에도 달리고 일흔에도 달리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흔이 되어 갑자기 달리는 것은 시도도 못하는 것이 될까봐, 지금부터 계속 달리는 것을 몸에 쌓아두려는 거다. 나는 혼자일테니, 건강해야 한다. 내가 나를 돌보아야 할테니, 내가 노동을 해야 할테니, 나는 건강해야 한다. 일리야처럼 일흔이 넘은 시점에서도 걷고, 산책하고, 달리고 싶다. 요가도 계속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책이 가득한 내 집으로 가끔은 다정한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 커다란 식탁에 함께 모여 앉아서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나는 술을 마시는게 좋고, 나이 들어서도 계속 술을 마시고 싶다. 그래서 더더욱이 건강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술을, 나중에도 계속 마시고 싶다. 그 때가 되면 많이 마시는건 아니더라도, 즐겁게 깔깔 웃을 수 있을만큼 마시고 싶다. 


이 책의 '일리야'는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 거의 그대로를 살고 있었다. 서점에 다니면서 몇 푼 안되지만 돈을 벌고, 그리고 취미로 번역을 한다. 번역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영어나 프랑스어로 된 책을 아랍어로 번역하는데, 그녀가 3개국어를 하는만큼, 찾아보니 레바논이 거의 이렇게 삼개국어를 쓴다고 한다. 한 문장안에 아랍어, 영어, 프랑스어를 다 넣고 코드 스위칭을 하는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일리야는 레바논의 시대적 배경이 그러했던만큼 열여섯살에 결혼을 한다. 아니지, 시집 보내진다. 그러나 남편과 이혼을 하고 혼자 지내게 되는데, 학교도 다니다 말았던 그녀가 음반에 취미가 생겨서 월급으로 음반을 사고 또 점점 좋은 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 것을 보는 일은 정말 뿌듯했다. 무언가 시도를 하고, 좋아하게 되고, 거기에 능력이 생기는 건 진짜, 너무 짜릿한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이런 식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글을 익힌다든가 음악에 취미가 생긴다든가 하면서 그것에 대한 실력을 높여가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음반 구매가 내 거의 유일한 지출이었지만 유일한 사치는 아니었다. 내가 가진 음반보다 책이 훨씬, 훨씬 더 많았지만, 대부분은 산 것이 아니다. 너무 비난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아주 적은 급여로 생활해야 했다. 나의 서점 영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없었다. 주인이 서점 문을 닫지 않은 것은 베이루트의 가짜 지식인들과 문학계 대사제들 사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책, 사도 읽지 않을 책을 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서점의 명성을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이 문학 애호가들이 책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항공기 승객이 항로가 지나는 지역에 대해 아는 정도였다. 패션지를 읽듯, 소설에 대해서는 하이라이트만 읽고 논했다. 나는 책 주문을 넣고 아무도 사지 않으면 집으로 가져갔다. 때로는 책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두 권씩 주문을 넣은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사실, 세 권씩 넣은 적도 있다.

그러지 않고는 책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은퇴 후 괴로울 정도로 한가로울 때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더욱 없었다. 젊을 때부터 채식을 하기 시작한 것도 고기를 살 형편이 안됐기 때문이다. 과일, 채소, 곡물, 쌀을 먹고 살았다. 지금도 그렇다. 이드 알아드하에 양고기를 먹지 않은 지도 수 년이 지났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 다행이었다. 피웠다면 돈이 모자랐을 것이다. -p.146



그동안의 나라면 그건 안되는 일이라고 노여워했을 일인데, 그런데 책 주문을 넣고 아무도 사지 않으면 집으로 가져갔다는게, 왜이렇게 좋은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이걸 단지 소설로만 접하고 있기 때문일까. 때로는 두 권씩 주문을 넣은 적도 있단다. 그냥, 막 이해해주고 싶어진다. 물론 이런 나라도 교보문고 가서 책을 훔쳤다고 하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쩐지, 어쩐지 일리야가, 가난한 일리야가, 다른 사치라고는 모르는 채로 그저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일리야가, 자신이 일하는 서점에서 책을 가져갔다고 하는건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서점의 월급은 충분했을까? 가끔 책 가져가는거, 그거 그냥 직원 베네핏으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나는 책을 사주는 일이, 책을 선물하는 일이 즐겁다.

조카들에게도 '너네 책은 다 내가 사줄게, 책 갖고 싶은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만해!' 라고 말했는데, 예전엔 곧잘 책 사고 싶은거 얘기하던 조카들이, 이제는 통 얘기하지 않는다. 이제는 책을... 읽지 않는다. 조카들아.....


내가 일리야가 일하는 서점의 사장님은 아니지만, 사장님, 근무하는 직원이 책 좀 가져가는 거, 좀 봐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음, 그런데 써놓고보니, 만약 내가 사장이라면... 그냥 줫을까 싶기도 하네? 아마 제한을 뒀을 것 같다. 한 달에 두 권, 이런 식으로... 아 모르겠다. 어쩌면, 막상 사장이 되고 나면, 절대 안돼, 너를 도둑으로 신고하겠어!! 막 이렇게 되려나..... 



그렇게 일리야가 책을 좋아하고 번역을 한다는 것은 내가 관심있어 하는 것과 닿아있다. 내가 노년에 이루고 싶은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나, 일리야는 친구 없이 혼자 지내는 사람이고, 나는 가끔은 친구들 불러 파티하고 싶은 사람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라고 뭐 별 거 아니고, 걍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는거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리야의 사치는 음반과 책인데, 나도 한 때는 음반을 겁나게 샀지만, 지금은 전혀 안사고 있고, 있던 음반도 다 처분해버렸고, 지금 유일한 사치는 책과............ 고기와 술이다. 엥겔지수 매우 높습니다.



인상적인 건, 아랍어를 배우게 되는 어릴 적의 일화이다. 학교에서는 아랍어를 가르치면서 쿠란을 외우게 시켰다고 한다. 일리야는 이렇게 말했다.


쿠란을 강제로 외우게 하는 일, 무엇이든 강제로 외우게 하는 일은 이미 그 자체로 벌이다. -p.21



일리야는 쿠란이 아니라, 시를 접하면서 아랍어를 익히게 됐다. 뭐가 됐든 언어를 익히게 되는 수단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나도 팝송이 아니었다면 영어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무엇이든 강제로 위우게 하는 일은 이미 그 자체로 벌'이라는 일리야의 말에 동의하지만, 그런데, 강제로 외우는 거, 사실 좀 필요하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든다. 


얼마전에 짧은 영상을 봤는데 유퀴즈에 동시통역가 임종령이 출연한 부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하게 되냐는 물음에 임종령은 자신의 외대 학생들에게 입학하면 800페이지 책을 세 번에 나눠서 시험을 보게 하고 외우게 한다는 거다. 그렇게 외우고 반복하면 불가능은 없다...고 하셨다.


네...


물론 외우는 거 고역이지만, 그 자체로 벌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런데 그거 외우고나면 실력은 어마어마하게 향상되어 있지 않을까. 나도 뭔가 하나 외워야 되는데, 이거 찝적대고 저거 찝적대다가, 내가 외운거라고는 단 한 문장, 영화 <The idea of you> 에 나오는 이것이다.


I could be your mother.


제미나이의 직역에 따르면, '내가 네 엄마뻘이야' 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영화 속에서 마흔의 셀렌느와 스물다섯의 ... 이름 뭐더라? 하여간 둘이 처음에 키스한 후에, 셀렌느가 화들짝 놀라면서, 이러면 안된다고, 나는 네 엄마뻘이야, 이러는거다. 이런 문장은 왜... 걍 외워지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강제로 외우게 하는 건 벌인게 맞지만, 그래서 나도 뭔가 외우지 않고 있긴 하지만, 그러나 외우는 것이 가장 빠른 학습의 길이 아닌가, 라고 외우기에는 통 능력이 없는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왜 외우기를 못할까? 



아무튼 미래를 활기차게 맞이하도록 해야겠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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