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왜이렇게 재미있는걸까.
음, 어쩌면 재미있는 건 언어가 아니라 언어에 대한 말과 글인걸까. 언어에 대한 연구인걸까.
이 책을 읽는 일이 정말 짜릿했다. 이런 구절을 보자.
어쨌거나 해당 환경에 사는 민족이 특정한 종류의 냄새를 한 번도 접하지 않는다면 그 냄새를 일컫는 낱말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낱말은 의사소통 면에서 쓸모없을 것이다. -p.174
언어들이 번역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떤 단어들은 없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러나 번역 가능하지 않은가,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한 번도 접하지 않았던 냄새'에 대한 언어가, 그 지역에 있을 리가 없지, 하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정말 재미있는거다. 왜냐하면, '한 번도 접하지 않았던 냄새'를 가진 그 지역에서 계속 쭉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존재하지 않은 냄새에 대해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고, 그리고 그 언어에 대해서도 알게 될 확률이 적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단어에 대해 모른다는 것 자체도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계속 그곳에서 살아간다면 의사소통 면에서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까. 그게 그곳의 삶이니까! 그러나 다른 지역의 사람을 만나 그 언어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되면,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이지?' 하게될테고, 그렇다면 그 냄새를 한 번 맡아보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면 그 냄새를 찾아갈 것이고, 그 냄새를 맡으면, 아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다, 그것을 가리키는 언어는 이것이다, 하게될 것이다. 그동안 몰랐던 것의 냄새와 언어를 모두 습득하게 되는거다. 이게 순서는 바뀌어도 상관없다. 만약 다른 지역에 가서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냄새를 맡아보게 된다면, '이게 뭐야?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야?' 하게 될테고, 이 때 다른 사람은 그 사람에게 이건 무슨 냄새야, 라면서 그 단어를 말해주지 않겠는가. 그렇게 언어와 세계가 동시에 확장되는데, 언어의 확장은 세계의 확장을 불러오고 세계의 확장은 언어의 확장을 불러온다는 사실이 진짜 너무나 재미있지 않은가 말이다.
요가에는 '아르다 찬드라 아사나' 라는게 있다. '아사나'는 영어의 pose 로 우리말로는 '자세'라고 한다. '아르다'는 '절반'의 뜻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아르다 찬드라 아사나'는 'half moon pose' 이며 '반달자세'이다. 이 단어를 한 번 듣고 기억하고 나면, 그 후에 나오는 아사나들에서 일단 '아사나'를 알것이고, '아르다'가 나오면 아, 반이라는 뜻이구나 하고 응용이 가능해질것이다. 아니,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언어가 재미있는건가? 언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재미있는것인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지구상에 누군가는 언어에 대해 연구한다는 사실이 무척 좋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들을 연구하고 그것을 글로 써내는 일을 누군가가 해서, 내가 지금 이곳에서 글로 읽고 있다는 사실, 그러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 이런 일이 몹시 즐겁다.
그래서 2분 약간 넘기는 영상을 또 찍어보았다. ㅋㅋ 나 이제 구독자 27명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s://youtube.com/shorts/tl11OHx4LtY?si=gv8cd8qTofB9QUPS
10여 년 전 [행동과학과 뇌과학]에 발표된 또 한 편의 저명 논문에서 심리학자 조지프 헨릭Joseph Henrich, 스티븐 하이네Steven Heine, 아라 노렌자안Ara Norenzayan은 인ㄷ간 인지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서 중요한 대목을 꼬집었다. 그것은 교육 수준이 높고 산업화되고 부유하고 민주적인 서구 사회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and democratic. WEIRD(이하 위어드‘) 구성원에 대한 연구가 거의 모든 지식의 토대라는 점이다. 이 사회들은 지금 존재하거나 지금껏 존재한 적 있는 수많은 인간 사회와 비교할 때 정말로 기이하다 weird. 헨릭과 동료들은 "아동을 비롯한 위어드 사회 구성원들은 인류를 일반화하고자 할 때 가장 대표성이 낮은 인구지반에 속한다"라고 주장했다.- P14
어쨌거나 과거, 현재, 미래는 막연한 개념이다. 몸을 둘러싼 물리적 공간을 지각하는 구체적 방식으로는 시간을 지각할 수 없다. 물리적 주변에 있는 물체는 손을 뻗어 만질 수 있지만 과거는 그런 식으로 다시 방문하거나 그 존재를 입증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결코 미래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현재는 포착되지 않는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찰나는 인식하는 그 순간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P30
시제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는 시제가 네 개 이상인 언어가 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아마존 언어인 야과어Yagua로, 시제가 무려 여덟 개다. 다섯 가지 시제가 과거를 촘촘하게 나눈다. ‘먼 과거‘를 가리키는 시제가 있는가 하면, 한 달 전과 한 해 전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 일주일 전과 한 달 전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 일주일 전쯤에 일어난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 어제나 화자가 말하는 그날 일어난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도 있다. 현재 시제도 있는데, 지금 막 일어날 참인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와 더 먼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가 따로 있다.- P37
카리티아나족도 상당수가 이중 언어 구사자로, 포르투갈어에 유창하다. 경제적 헤게모니를 쥔 주변 단일어 집단과 교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런 집단이 모어를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이중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P40
오스트레일리아늬 언어를 연구하는 한 언어학자는 시간을 구별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이 방법은 시간의 이동을 표현할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처럼 사람의 몸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우리의 원래 방법은 ‘자기중심‘ 모형이라고 불린다. 시간 ‘이동‘의 공간 정위spatial orientation(위치와 방향을 파악하는 것-옮긴이)를 해석하는 사람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 진행의 모형이 반드시 자기중심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 중심 모형도 있다. 이것은 자연의 지형지물을 근거로 삼는다. - P45
우리는 끊임없이 시간을 공간적 대상으로 지칭한다. - P49
시간을 이렇게 공강적으로 해석하는 데는 두 가지 주된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시간이 본질적으로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손에 잡히는 것에 빗대어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공간에 놓인 물체는 구체적이고 손에 잡힌다. 그러니 과거 사건과 미래 사건을 우리가 접하는 각각의 물체로 생각하는 게 유리하다. - P50
우리가 뒤로 걸으도 미래의 ‘위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 P51
우리에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많은 것들이 실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지도 모른다.- P65
아동은 언어를 습득하는 동안 상호작용에서 이름표가 어떻게 쓰이는지 깨달으며 그 상호작용으로부터 의미를 구성해낸다. 자라면서 낱말의 핵심 개념이 주변의 산악 지형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는데, 이는 첼탈어 학습자가 ‘ta alan‘과 ‘ta ajk‘ 같은 이름표에 의해 지칭되는 개념을 점차 익혀야 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영어를 구사하는 아동은 자라면서 ‘왼쪽‘, ‘오른쪽‘, ‘산‘을 뜻하는 개념을 익히게 된다. - P99
흥미롭게도 언어들은 문화적으로 두드러지는 개념을 담을 때 서로 다른 체언뿐 아니라 서로 다른 용언을 쓸 수도 있다. 엘레드네어 동사 ‘paa‘는 ‘평평한 표면에서 걷는다‘라는 뜻이다. 이런 동사는 영어를 비롯한 대부분의(어쩌면 모든) 언어에 딱 떨어지는 번역어가 없다. - P102
당신의 언어가 언덕과 산, 또는 ‘왼쪽‘과 ‘오른쪽‘을 번번이 구분하도록 강제한다면 이 대상의 구분은 당신의 머릿속에 새겨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당신의 인지 습관에도 통밯될 것이다. - P106
당신이 상상하다시피 브라질 아마존 도시에 사는 원주민의 삶은 난관으로 가득하다. 전 세계 여느 소규모 인구집단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이 속한 포괄적 문화의 일부 사람들로부터 극심한 편견에 시달린다. 카리티아나족은 ‘인디오indios‘(인도 사람)로 불리는데, 이것은 콜럼버스가 자신이 실제로는 신대륙에 상륙했는데도 인도에 상륙한 줄 착각하고서 붙인 이름이다. 이 사람들은 그의 우연한 ‘발견‘에 앞서 2만 년 넘도록 이곳에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 P112
‘자국민‘ 대 ‘외국인‘, ‘pyeso‘ 대 ‘opok‘등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 용어들은 폭넓은 효과를 발휘하며 결코 사소한 이름표가 아니다. 자신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가는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P113
카리티아나족은 브라질 문화와 일상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관광객들에게 공예품을 팔아 소득을 보충하려면 포르투갈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류는 그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아마존을 비롯하여 많은 언어가 절멸 위험을 겪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P113
사람들은 타인을 언어적 관점에서 자기 문화(또는 외모를 근거로 삼았을 때 자신이 속하는 집단)의 구성원으로나 외국인으로 범주화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 언어는 문화들 사이에 존재하는 막강한 사회적 구분을 일관되게 반영하고 강화한다. 우리가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는가는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그 사람들이 음식 범주에 속하는지도 좌우한다. - P115
어쨌거나 해당 환경에 사는 민족이 특정한 종류의 냄새를 한 번도 접하지 않는다면 그 냄새를 일컫는 낱말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낱말은 의사소통 면에서 쓸모없을 것이다.- P174
세리어의 경우 수렵채집인으로서 자란 나이 든 구사자들은 특정 냄새를 묘사하라는 주문에 특정 용어를 쓸 가능성이 크다. 이에 반해 한때 세리족 일상생활에서 접하던 꽃과 식물에 덜 친숙한 젊은 구사자들은 그 냄새 용어들을 쓸 가능성이 낮다. 이 모든 관찰은 생활양식이 사람들의 냄새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경험이 대화에서의 냄새 개념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발상에 부합한다. - P177
일반적으로 낱말은 자주 쓰일수록 짧아진다.- P201
"상관관계는 인과 관계가 아니다"라는 격언은 누구나 잘 알지만 종종 상관관계는 다른 방법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인과적 연관성의 방향을 가리킨다. 그 연관성이 간접적일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익사유른 두 현상의 증가를 유도하는 간접적 관계를 통해 상관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란 더위다.) -- P222
가능한 무작위 행동 변이들 중에서 특정 행동이 선택되는 것은 문화가 특정한 틈새와 난관에 적응하면서 진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결정적으로 선택은 사람들이 왜 자신의 행동이 그런 식으로 진화하는지 깨닫지 못하더라도 일어난다. 내가 이 장과 그 밖의 연구에서 몇몇 현대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주장한 것은 인간 행동에서 적응 과정이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역에 언어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언어의 일부 특징은 인간 행동의 여느 측면처럼 특정 환경에서 조금 더 알맞다는 이유로 확률론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선택될 수 있다. 성공적 적응은 별개지만 서로 연관된 압력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다. 이를테면 특정 유형의 소리는 특정 환경에서 발음하는데 노력이 덜 들 수 있으며 특정 유형의 낱말은 특정 환경에서 소통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P224
언어학자 크리스천 벤츠Christian Bentz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 주제에 대한 논문에서 언어 변화를 어떻게 모델링해야 하는지 논의하다가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언어 다양성을 이해하려면 물리적, 생태적, 사회적 요인이 전 세계 다양한 환경에서 언어 사용자에게 가하는 압력을 모델링해야만 한다." - P225
우리의 언어 지각은 고막을 때린 뒤 달팽이관과 일련의 신경을 거쳐 뇌로 전달되는 소리 주파수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언어 지각은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를 대뇌피질에서 통ㅇ합하는 총체적 과정이다. 이것은 문화를 막론하고 참이며 인류가 아프리카에서만 살던 시절 이우로 언어 지각의 뚜렷한 특징이었다. 어쨌거나 대면 상호 작용은 언어의 기본 형식이므로 인간이 타인의 얼굴에 주목하는 것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5장에서 보았듯 입술이 만들어내는 유형의 소리에 의존하는 정도는 언어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는 일부 언어의 구사자들이 타인의 입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