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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키스

금요일에는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고사리 삼겹살을 앞에 두고 근황을 전했다. 그러던중 친구1은 내게 요즘 여성주의 책은 어떤걸 읽냐 물었고, 나는 입 안 가득 삼겹살을 넣고서는 주섬주섬 가방안에서 책을 꺼냈다. 요즘엔 이거 읽어요, 라고. 친구1은 책을 살펴보았고 친구1이 살펴본 책은 이제 친구2에 게로 가있었다. 그 책은 당연하게도 이 책이었다.

















책을 가지고 있어서, 그리고 꺼내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지 뭐야?

내가 가진 책에는 플래그가 몇 개 붙여져 있었다. 밑줄긋기로 옮겨두려고 했는데 아직 못하고 있었다.



친구 2는 내 책을 보면서 '어디에 밑줄 그었나 보자' 하고는 플래그 있는 부분들을 살펴 읽었다. 아니, 그런데 이거 왜 부끄러워? ㅋㅋ 내가 어디에 줄을 그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뭔가 나를 들키는 느낌적 느낌? ㅋㅋㅋㅋ 요즘 뭐 읽냐고 묻고 어디에 밑줄 그었는지 살피는 친구들을 보니, 아 역시 책 읽는 친구들은 이렇다니까 하면서 상당히 즐거웠다. 도대체 누가 내가 읽는 책을 궁금해한단 말인가. 책을 읽는 친구들만 가능하다. 친구1도 친구2도 모두 알라딘에서 만난 여자사람 남자사람이어서 내가 읽는 책을 궁금해하고 밑줄 그은 부분들을 살핀다. 아 즐거워. ㅋㅋㅋㅋ 너무 좋아 ㅋㅋㅋㅋㅋㅋ 난 이런거 참 좋아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가 밑줄 그은 부분을 살피는동안 나는 2008년 2월의 일이 떠올랐다.

그 때 나를 만나러 우리 동네로 왔던 그 친구가 생각났다. 의정부가 집이었으니 먼 길이었는데 그는 내게 가도 될까 물었고 나는 화들짝 놀라서는 그래 오렴, 했더랬다. 그리고는 책장 앞으로 가, 가만있자, 그 친구가 오면 책을 한 권 줘야겠다, 하고는 내가 읽었던 책들 중 뭘 줄까 고민하고는 한 권을 가방에 챙겨넣었더랬다. 그 책은 이 책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우리는 까페로 갔다. 아마도 카프리 맥주를 시켜두고 얘기했던 것 같다. 오는 길에 책을 읽었다길래 보여달라고 했더니, 그는 자신의 가방 안에서 책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이었다. 나, 호밀밭의 파수꾼 엄청 좋아하는데! 책을 넘겨보는데,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부분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내가 밑줄 그었던 부분과 겹치는 곳들이 있더라.


"밑줄 누가 그었어요?"

"우리 누나가요."

"아. 나는 나랑 겹치는 부분 있길래 물어봤어요."

"거긴 내가 그었을 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래가지고 빵터졌던 기억이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거짓부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라쟁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저 책이 그 책인줄 모르고 나는 개정판으로 또 사서 읽었더랬다.
















이 책 사서 읽다가 읭? 이거 읽은것 같은데? 하고 검색했더니 이 책이 저 책이었던 부분.. ㅎ ㅏ -



토요일에는 여동생이 혼자 와서 엄마 아빠와 함께 올림픽공원을 산책하기로 되어있었다. 여동생은 오기 전에 '언니 혹시 토마토스프 해줄 수 있어? 내가 토마토 가져갈게' 하길래, 토마토는 우리 집에도 있으니까 그냥 와 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타미가 토마토스프 좋아하는 건 알지만 여동생이? 지난번에 맛보니 갑자기 생각났다? 아무튼 집에 있는 재료들로 만들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저녁을 외식하기로 했는데 토마토스프는 언제 먹는다는거지? 그렇게 부모님을 모시고 오후에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엄마와 아빠와 나는 좀 일찍 도착했고 여동생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편의점에서 아이스커피를 사서 마시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여동생이 올림픽공원 역에 내렸다고 연락이 왔고, 나는 4번 출구로 나오라고 하며 그 앞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고, 돌아보니 거기에 여동생이 있었다. 반갑게 인사했는데, 여동생이 두리번두리번 거리면서 누구를 찾는거다. 엄마 아빠는 저기서 기다리셔, 하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또 두리번 두리번, 아니 왜 너 여기서 누구라도 만난거야? 했는데 갑자기 내 눈앞에 타미가 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꺅 소리지르며 이 예정에도 없던 만남이 반가워 타미를 안고 방방 뛰었다. 너 뭐야, 너 안온다며, 했더니 서프라이즈 하려고 했다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좋아서 타미의 팔짱을 끼고는 아니 어떻게 왔어, 하고 히죽히죽 하는데, ㅋㅋㅋ 뒤에서 여동생이 크게 내 이름을 부르며, 언니 뭐냐 왜 나는 두고 가냐,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타미는 우리 엄마 아빠의 뒤로 가서는 또 깜짝 놀래켜주었다. 그래서 즐겁게 산책했다.




좌 엄마 우 타미 되시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녁은 여동생이 사준 초밥과 사시미를 듬뿍 먹고 집에 와서는 피자를 시켜서 후식으로 먹었는데(네?) 엄마는 그런 나와 여동생을 보고 '니네 밥 안먹은 사람들 같아 '하셨다 ㅋㅋㅋ 타미는 토마토스프 자기가 먹고 싶었던 거라길래, 어쩐지 ㅋㅋ 하면서 그런데 지금은 배불러서 못먹을텐데? 했더니 내일 아침에 먹겠다는 게 아닌가. 나는 초밥과 소주를 마셨고 또 집에 와 피자에 와인을 마셨지만, 늦은 밤,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재료들을 꺼내어 후딱 토마토스프를 만들었다. 타미는 다음날 아침 식사로 내가 만든 토마토스프를 두 그릇이나 먹었다.


문득, 나라는 사람이 너무 좋아졌다. (네? 갑자기요?)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찾아보니 2014년인데, '김기창'의 [모나코]라는 소설을 읽고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뚝딱 음식을 만들어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글을 썼던 적이 있다. 한 남자 노인이 옆집에 사는 미혼모에게 마음이 있는데 저녁 식사에 그녀를 초대한다.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했지만 그녀는 약속 시간이 많이 늦었고 자신이 만들어둔 음식은 이미 맛이 없어진 상태. 그러나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은 그녀에게 급하게 명란젓 오차즈케를 만들어주는 장면이 나오는거다. 지금 찾아보니 글이 좀 빻아서 링크는 안걸겠다 ㅋㅋㅋㅋㅋㅋㅋ그때만 해도 할 줄 아는 요리도 하나도 없었고 그뒤로 시도해도 뭔가 마음에 드는 것들이 별로 없는 가운데, 수시로 그 사이사이, 이런 나의 바람에 애인들도 그렇고 가족들도 그렇고 '고생하지 말고 사먹자'고 했더랬다. 나 역시 돈 벌어서 그냥 사먹자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것저것 해보다 보니, 이제 타미가 내가 만들어주는 토마토스프를 좋아하게 되지 않았나. 와, 나는 정말, 그렇게 되어야겠다, 마음먹으면 그렇게 되는 사람이구나 싶으면서 스스로 또 내 뽕에 차는 거다. 
















내가 뉴욕에 처음 다녀왔을 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너 그렇게 가고 싶다더니 갔네' 라고 했고, 내가 책을 냈을 때는 '결국은 니가 그렇게 될 줄 알았어'라는 말을 들었었다. 나는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과 하고 싶었던 것도 해냈다. 연락처도 알지 못했던 사람과 그렇게 될 수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사람은 그 길로 가기 위해 작은 선택하나하나 그 방향에 맞게 조절하는 것 같다. 타미는 이제 이모의 토마토스프를 찾고 있다. 내가 해냈다. 만세!! 사실 뭐 대단한 요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금요일에 만난 친구1도 요즘 <눈물의 여왕>을 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어제 눈물의 여왕 본방송을 보았다.

나는 보면서 '윤은성'이란 캐릭터가 정말이지 너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윤은성(박성훈)은 홍해인(김지원)을 좋아한다. 김지원의 마음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구애한다. 자신의 옆에 홍해인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좋아한 아주 오래된 감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지원은 자신의 전남편인 백현우(김수현)를 좋아하고, 자신의 회사를 빼앗기까지 한 윤은성을 좋아한 적도 없지만 더욱이 좋아할 수 없게 되기도 했다. 자신에게 백화점 사장 자리를 다시 주겠다는 윤은성에게 홍해인은 '너는 나를 구해주는 것 같지만 그런 상황에 나를 몰아넣고 곤경에 처하게 한 게 너야' 라고 말한다. 이건 대단히 정확한 지적인데, [여자는 인질이다]가 생각나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윤은성이 백화점을 빼앗지 않았다면, 홍해인에게 백화점 사장 자리를 '다시' 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여자는 남자가 보호해준다는 데에 감격해서 애초에 보호가 필요한 이유가 남자의 폭력 때문이라는 점을 잊는다. -[여자는 인질이다], 디 그레이엄, p.190









아, 내가 이해가 안되는 지점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사람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옆에 있기를 요구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백현우랑 늘 같이 저녁을 먹는 그것, 자신은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거라면서 홍해인을 초대해 집안의 가사도우미들을 부려 근사한 스테이크를 차려내고 또 좋은 와인도 준비한다. 입맛도 없고 너랑 밥 먹을 기분도 아니고 게다가 이자리까지 강제적으로 오게된 홍해인은 이 저녁 자리가 마땅치 않다. 안먹겠다는데도 계속해서 먹어달라고 애원하는거다. 자신이 얼마나 홍해인을 좋아했는지, 얼마나 오래전 시작된 사랑인지 얘기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홍해인이 스테이크를 한 조각 먹어줬다한들, 그것이 본인의 의지로 기쁨에 충만해 먹는 자리가 아닌데, 그런데도 괜찮단 말인가? 자신을 피해 가려는 사람을 억지로 자기 옆에 데려다 놓으면, 그러면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진건가? 상대의 마음은 다른데에 있는데 단지 옆에 앉혀놓으면 되는거야? 그것을 자존심이 허락하는가? 왜 휘성 노래 가사에도 있지 않나. 


안되나요 나를 사랑하면 
조금 내 마음을 알아주면 안되요 
아니면 그 사람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되요 
내 곁에만 있어 준다면 



아니, 이게 괜찮아? 다른 사람 사랑하면서 내 옆에 있기만 하면... 그러면 돼? 그건 내가 나한테 너무 불친절한 거 아니냐? 내가 나한테 좀 너무하지 않아? 마음으로 다른 사람 사랑하면서 그런데 나랑 같이 밥 먹고 나랑 같이 자면, 그러면 되는 부분?? 너무 간절하게 상대를 좋아해서 저런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거라 생각이 들지만, 그런데 그게 정말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나는 정말이지 할 수가 없다. 싫다잖아. 내 옆에 있기 싫다잖아. 다른 사람 좋아한다잖아. 그런데 대체 왜그러냐고, 대체 왜 내 옆에만 있어 달라고 하는거냐고. 그렇게 옆에 있는게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의미가 있는 거냐고. 나는 이게 정말이지 너무 이해가 안된다. 그게, 정말 괜찮아????




아무튼 월요일이고 책탑 사진 올려야 하지만 지난 주에 책 한 권도 안샀지롱~ 메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이 너무 바쁘면 쇼핑을 못합니다.

내가 토마토스프 하니까 치아바타도 만들고 싶었지만 강력분 똑 떨어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리미리 사두는 나지만 내가 요즘 쇼핑을 못한다. 하아- 인생.....



그럼 이만 빨빨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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