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즐거움..
epist 2002/08/3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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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무척이나 자주 가던 곳에서도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때가 있다. 그것들이 새로 생긴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거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구나 발견한 그 무엇이 우리를 기분좋게 해 주었다면 그건 분명 작은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소소한 즐거움일 수도, 또 때로는 인생을 바꿀 그 무엇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우연이라 하더라도.....
하지만 우리들은 살아나가면서 자신이 계획하지 않은 것들을 만나게 되면 그것을 그리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거나, 배척하기 일쑤이다. 지키지 못하는 약속시간-어떻게 정확히 시간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일찍 도착하거나 늦게 도착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배신하고 떠나는 연인, 늦게 도착하기만 하는 열차, 마음먹은 대로 끝나지 않는 일들, 절약하고 절약해도 목표대로 모이지 않는 돈.....
어쩌면 가장 계획하기 힘든게 우리의 삶일텐데도 우리들은 한사코 스스로의 계획표 속에 모든 것을 구겨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우연히 얻어지는 즐거움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한채 말이다.
이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같다.
가스파르, 멜쉬오르, 발타자르, 타오르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아니면 보다 나은 것을 찾기위해, 아니면 막연하게 각자의 목표와 필연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우연들을 만나기 위한 것. 주인공들은 각자 갖가지 일을 겪고 우연히 한자리에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연하고도 필연적(!)으로 헤로데 대왕(헤롯 왕)을 만나서 동일한 목표와 필연을 부여받게 된다.(예수의 탄생 보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주인공들이 여행을 끝낸 자리에서 우연이 없는 획일적인 것들을 얻게 되지는 않는다. 각자에게 가장 골몰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얻게는 되지만, 그건 목표를 해결한데서 오는 성취감이 아니라, 목표를 생각하는 가치의 전도 그 자체에서 오는 해방감에 다름 아니다.
투르니에가 소설을 통해 가장 주제에 가까운 인물로 내세운 것으로 보이는 타오르는, 가장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시작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 목표는 어떻게 보면 가장 확실하나, 가장 보잘것 없는 목표이다. 목표라는 것이 '피스타치오를 넣은 라아트루쿰'이라는 과자 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한 것이 기에....
그걸 얻어내려고 출발한 여행에서 타오르는 야스미나라는 가장 아끼는 코끼리, 가장 아끼던 충신까지 포기하거나 잃게 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타오르는 이미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게 된다. 더 크고 본질적인 것을, 우연히 얻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여행은, 삶은 우연을 얻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계획하에 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미 정전Canon이랄 수 있는 성경이나, 로빈슨 크루소 같은 작품에서 그 틈을 찾아내어 새롭게 재해석-창조해내는 투르니에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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