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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kitchen


별로 기억하기 싶지 않은 과거의 어느 시점을 이렇게 아프도록 일깨우는 영화는 정말이지 싫다. 싫으면서도 끌린다. 끌려서 다시 본다. 다시 보니 또 아프다. 아픈데, 이 아픔을 묻어두는 것보다 차라리 마음껏 아파나 보자 싶어 영화에 몇 번이고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DVD를 빌려준 사람에게 이걸 그냥 나한테 주면 안되겠냐고 했다. 그는 선선히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젯밤 이 영화를 또 봤다.

장국영이 맘보를 추는 장면은 진작에 여러번 봤었지만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가 뒤늦게 영화를 보고 푹 빠져버리다니, 나는 뭐든 나무 일러 아무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너무 늦어 조급해하다 정신을 놓아버린다. 영화는 그러나 그렇게라도 가질 수 있지만, 사랑에 있어서 그게 가능할 것인가. 어떤 사랑은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와서 그게 사랑이었구나, 생각하는 데만도 3년이나 걸려버리고 만다. 그제서야 그 사랑을 향해 손을 뻗어 보지만 이미 모든 것이 떠나간 후다.

아비와 수리진이 함께 보낸 1분의 시간 같은, 평생 기억에서 지울 수 없을 하루. 그건 그냥 한 사람을 만나 함께 여행을 했던, 아주 평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인상적이지도 않은 그냥 하루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것을 보니, 이제 내게 그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모양이다. 여자애 셋이 뱉어낸 단내가 꽉 찬 차 안에 갑자기 훅 끼쳐드는 건강한 수컷의 냄새와 함께, 신호대기를 받으면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과속방지 카메라를 만나면 손을 흔들고, 기분 나쁜 일 앞에선 아, 이거 열받네, 라고 하는 지금 내 모든 행동들. 다, 그의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젠장..이제와서 우리는, 이라니. 그와 나는 밤새도록 술을 먹고 새벽에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헤어지곤 했다. 50분밖에 안 걸려, 하던 그의 도시로 그는 출근하고 나는 어른들 몰래 집에 숨죽여 들어가곤 했다. 나는 좀 행복한 것도 같았으나 사실, 모든 게 너무 늦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와 내가 처음 만나 같이 여행을 했던 날, 그는 동행한 친구의 애인자격으로 우리와 함께 했던 거였으니까. 나는 곧 손을 털었다. 안 지 한 달된 사람으로 인해 10년지기를 버릴 순 없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들을 자꾸만 떠나오는 아비는, 자신을 낳고서는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린 친어머니의 존재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이상하게 꼬여버린 그의 마음 가닥을 제대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그래, 바로 거기서 시작해야 할 것이었다. 애초에 그를 버린 바로 그 여자.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젠장) 그러나 그 여자는 아비를 부정하고, 아비는 연적(이랄 수도 사실은 없는)에게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고-나는 그가 수리진을 정말로 사랑한 거라고 생각한다, 버림받은 아픔에서 간신히 회복된 수리진은 이미 떠난 또 한 사랑에게 뒤늦게 손을 내밀고, 루루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비를 찾아 낯선 땅으로 가고...

누군가 한 사람은 아파야 하는 사랑이라면 나는 앞으로도 절대 하고 싶지 않다. 그냥 혼자 이렇게 설렁설렁 살고 말겠다. 혼자, 뒤늦게 찾아와 내 것이 된 영화 <아비정전>이나 보면서..크..근데 양조위는 왜 그렇게 찔끔 등장해 내 애를 태우는고..듣기로 양조위를 주인공으로 아비정전 2를 찍으려다 말았다니..왜 그런 거야, 가위성.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 판 찍어줘. 양조위 더 늙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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