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도넛 사고 남은 돈으로 만든 서재

예닐곱살 때부터 요리책을 끼고 뒹굴대며 놀았다.
따라서 국내 요리책 유행을 상당히 예전부터 꿰뚫고 있다고 자부한다.
몇년전부터 흥미를 잃고 있다가, 다시금 요리책을 뒤적거리며 부엌에 서게 한 책이 이것이다.
선물해준 사촌언니 말에 의하면 "절대 2000원은 아니고(재료비 더 든다는 뜻),볼만해".
1년 365일 1095끼중, 집에서 스스로 해먹는 밥이 10끼도 되지 않는 일중독자인 언니 말이기에 더 확 왔다. 받은 그날부터 뒤적뒤적.
사실 온세계 요리책을 다 보아온지라 이 책은 소박하다 못해 촌스럽기까지 하다.
사진도 그렇고 글자체도 그렇고 편집도 그렇고.
그러나 요리책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커다란 미덕을 갖추었다.

바로, "음...나도 이 정도면 해볼 수 있겠는걸!" 하면서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뭔가 해먹고 싶어서 조리법을 검색하거나 요리책을 보다가, 듣도보도 못한 재료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냥 덮어버리게 되지 않는가. 한 두개 정도라면 그냥 빼고 하지 뭐, 싶지만 그 이상이면 좀..
심지어 개인적으로는 '당장 냉장고에 없는' 재료들이 섞여 있으면 요리책에 화풀이를 하고는 한다.
그런 일이 몇번 되풀이 되면 그 책은 더이상 요리책이 아니다. 그림책으로 전락해 책꽂이에 얌전히 자리잡게 된다.

하여튼 내가 지닌 요리책중에 유일하게 너덜너덜(요리의 잔재물이 튀어서)해진 책이다.
결과물의 맛 역시 소박하다. 깊고 자연의 맛이 담뿍 나는 정통 요리의 맛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만든게 맛있네'하는 뿌듯함은 안겨준다.
왜 그리 잘팔렸었는지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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