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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전자책] 불꽃
  • 마타요시 나오키
  • 10,800원 (540)
  • 2024-04-01
  • : 98

내 청춘의 영원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외로움

괴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_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중에서

스무 살 언저리에 읽은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여전히 그 무렵을 떠올리게 하는 마들렌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최승자의 『즐거운 일기』처럼 불안, 괴로움, 불안, 허무, 죽음 같은 단어의 멱살을 움켜쥐고 패대기 치고 싶던 시절이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서른일곱이 된 어느 날 문득, 와타나베가 생각났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이제 인생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과거지향형 인간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노래를 듣고 철 지난 영화를 다시 보곤 한다. 그건 아마도 그리움과 추억, 아쉬움이나 회한 따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기 삶을 투영한 해석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이거나.

아쿠타가와 수상작 역대 판매량 1위였던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제치고 300만부가 팔렸다는 이 소설의 제목도 몰랐다. 10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화두로 일본 소설과 잘 팔리는 소설에 대한 소감들이 오갔으나 300만 명의 속내를 알 수는 없다. 그것도 일본인의 감성과 취향을 추측하는 건 별 의미가 없기도 하다. 출판 문화 산업 진흥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으므로. 압도적 재미도, 정교한 구성도, 기막힌 반전도 없기 때문에 궁금했을 수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매료됐다는 저자는 코미디언이다. 방송에 출연할 만큼 유명했던 마타요시 나오키는 오랜 시간 독서와 글쓰기로 자기 삶을 채운 후에 데뷔작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했고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그가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었을 거라는 짐작은 하기 어렵다. 가미야처럼 그저 삶에 대한 열정과 흐름에 몸을 맡긴 게 아니었을까. 특이한 이력과 소설 외적 요소들로 시작된 이야기는 언제나 그러하듯 자기만의 해석과 타인들의 독법이 버무려진다. 주변의 숱한 가미야들, 순수한 열정이 전부였던 각자의 20대, 리얼리스트가 되버린 오늘의 나와 화해하는 법에 대하여 고민했던 시간을 뒤로 한 채 사람들은 또 어떻게 오늘을 살아낼까.

1인칭 화자 도쿠나가는 스무 살에 네 살 많은 가미야를 만난다. 사제지간으로 관계를 규정한 그들은 20대를 고스란히 공유한다. 야마시타와 오바야시, 카미와 유키 등 주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소설은 오롯이 ‘나’, 그러니까 도쿠나가에 관한 이야기다. 혼란과 방황이 청춘의 전매특허라고 우겨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살 것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로 읽어도 좋다. 현대판 인격 실격의 주인공 같은 가미야든,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든 해석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지만 자기 삶의 ‘하나비’가 아니라 ‘히바나’가 언제였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으면 충분해 보입니다.

스파크가 일어났던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알아채는 일보다 중요한 건 그로 인한 변화와 전환이겠죠. 흐르는 대로 흐르는 무난한 삶을 지향하든, 가미야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든 선택의 결과가 모여 자기 삶이 됩니다. 타고난 재능과 천재성과 피땀 어린 노력과 열정의 비율을 따지기 힘들고 상황과 맥락과 환경과 우연의 요소들을 계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원인을 찾고 이유를 알고 싶어합니다. 심리학에서는 귀인이론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결과는 부분의 합보다 큽니다.

자기 말과 행동을 돌아보지 않는 삶은 어떤가요. 가미야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도쿠나가는 세상과 불화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 타인과 관계 맺기에 성공했을까요. 소설 속 주인공들의 후일담이 궁금한 게 아니라 읽는 행위 그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 그걸 통해 변화와 성장의 기회가 되는 게 가당키나 한 건지 지적 유희와 합리화의 도구일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두렵습니다. 이제 책이 제게 건네는 말들이 때때로 지겹고 버겁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투덜거려도 말없이 그들은 쉼 없이 그래도 괜찮은 거냐고 묻습니다. 이제 빽빽한 책숲에서 벗어날 때가 된 건지 그 끝과 시작을 천천히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도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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