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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나쁜 유전자
  • 정우현
  • 19,800원 (10%1,100)
  • 2025-09-15
  • : 2,601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환원주의적 방식 중 하나가 ‘유전자’에 대한 관심이다. 삼십 대에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 때문이든, 『종의 기원』이 정유정의 장편 소설로 아는 사람이든 존재론적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만한 나이가 됐으나 포기하지 않고 집착에 가까운 몰입에 성공한 사람들은 정답이 아니라도 자기만의 생각과 주체적 삶의 태도를 갖추게 된다. 모든 게 호르몬 때문이라는 책도, 생존 기계에 불과한 인간의 삶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는 주장도, 결국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랑을 나누는 게 행복의 전부라는 진화심리학자의 말도 읽고 듣는 사람의 ‘태도’와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임승수와 정우현 덕분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연말에 위로가 된다. 임승수는 빨갱이고 정우현은 과학자다.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설명한다. ‘나’를 분석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해서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덜 중요할 수는 없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권의 책은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추천하고 싶다. 과학에 관한 기초 이론과 지식을 전하는 책은 이제 시간을 많이 투자할 필요가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러나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알고 싶다면 정우현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으나 인문학이 바탕이 된 과학자들의 책은 연구 결과나 새로운 이론과 주장을 정갈하게 담은 책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갖추고 있다. 논문이나 학술서가 아니라면 독자의 입장에서 과학이 ‘삶’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나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변화 가능성은 무엇인지, 알고 난 후에 어떻게 선택이 달라지는지 말이다. 그 현실적 유용성이 이제 ‘책’을 선택하는 실제 기준이 되지 않을까. 소설의 재미를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가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진 않다. 나름의 이유로 선택된 매체의 차이일 테니까. 하지만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분야의 논픽션은 인공지능 시대의 생존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의 합종연횡, 통섭과 상상력이 없는 텍스트는 나무에 대한 예의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우현은 예의 바른 저자다. 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익숙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소재들이다. 어쩌면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다만 유전자를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 본성과 양육과 환경에 대한 논쟁이나 인종과 동성애에 관한 편견,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오해 등 과학은 현실이며 삶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철학, 역사, 문학, 심리학, 인류학 등 인간과 세상에 관한 다양한 교양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연결하는 지점이 매력적이다. 뷔페를 싫어하는 사람의 취향도 존중해야 하지만 ‘읽는 인간’들의 욕구와 취향을 저격하는 이런 맛있는 책을 거부하긴 쉽지 않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고 읽기와 쓰기의 시간도 독자와 글쓴이가 갈아 넣는 생의 일부다. 서로 씁쓸하지 않도록, 새해에도 계속 그렇게, 남은 시간을 즐기고 싶은 나뿐이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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