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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옌스 포엘
  • 17,100원 (10%950)
  • 2025-09-24
  • : 1,350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낭만적 착각이다. ‘사실은 없다. 다만, 해석이 있을 뿐.’이라는 니체의 말 한마디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 단순히 맥락에 따른 상황 논리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수학적 공리와 자연 현상처럼 명백해 보이는 사실fact에 대한 의심은 가능한가. 하물며 진리truth 탐구에 도전이라니. 인류의 역사는 허망한 기대와 실현 불가능한 꿈에 도전했던 지난한 고통의 기록이 아닐까.

일상생활에서 사실과 의견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표명되며 현실에 영향을 줄까. 레거시 미디어가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뉴미디어 시대의 명암은 진영 논리에 따라 달라질까. 가짜 뉴스를 ‘대안적 사실’이라 명명한 트럼프 진영의 신박한 작명법에 진심으로 감탄한 적이 있다. 어차피 인간은 상상의 질서가 창조한 세계를 살아간다는 유발 하라리의 통찰이 아니라도 매일매일 벌어지는 숱한 개인적, 사회적 프로파간다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린다. 때로는 부모와 연인의 가스라이팅, 사회 경제적 전망에 대한 신뢰, 통계와 자료 분석에 기반한 확신, 정치 종교적 도그마로 인한 믿음 등 한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소음들.

사실이 의견일 리 없고, 의견이 사실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독일의 신경심리학자 옌스 포엘이 ‘과학적으로 합의된 사실’과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의견’를 구별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혹은 그러한 판단력을 갖추기 위한 비법 16가지를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 텍스트 너머의 진실, ‘행간을 건너뛰는 두 개의 콤마’에 방점을 둔 읽기 단계로 진입한 자들을 위한 전복적 제목이 오히려 사실과 진실에 대한 냉소적 진실을 드러내는 듯하다.

가짜와 진짜는 누가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그 모호한 경계를 이용하며 끊임없이 이익을 챙기는 자들은 누구일까.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사회는 끊임없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끊임없는 투쟁이다. 지식과 정보 과잉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은 가짜와 진짜, 아니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경계를 지우고 전복을 시도한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 하는 놈은 절대 깨우지 못한다.

살펴보고(1부) 검증하고(2부) 해석한(3부) 다음 친구에게 말을 걸면(4부) 우리는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사실은 의견일 뿐이라는 말의 역설적 진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문장은 사실일까, 의견일까. 오해가 디폴트 값이라면 인간 언어의 한계가 전제 조건이라면 이해와 공감, 소통과 협력에 관한 내포된 위험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까. ‘앎이 곧 삶’이 되던 시대의 낭만은 모두 사라졌다. 오래 전부터 예언해 왔던 ‘인간 운전 금지 법안’은 시행까지 얼마나 걸릴까. 운전대에 손댈 수 없는 시대는 ‘소유의 종말’을 예고했던 제러미 리프킨의 말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탄생의 이유이자 번식 기계로서 소명을 다해야 했던 ‘인간의 종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오늘도 무얼 보고 듣고 살피며 하루를 살았을까.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걸었을까. 물신 시대의 꿈이 사라지고 허무의 시대가 찾아온다면 사람들은 어떤 사실에 대해 또 어떤 의견을 내놓으며 목소리를 높일까. 그 또한 알 수 없으니 계속 책장이나 넘길 수밖에 없을까.

많은 사람은 자기들의 생각이 변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걸 싫어해. 그건 본인이 과거에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는 걸 받아들이는 꼴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생각의 변화는 ‘틀림에서 옳음으로의 과정’이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언제나 ‘틀린’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어.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 - 영화 《사회학자와 곰돌이》에서 사회학자 이렌 테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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